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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을 홍보할 때 ‘화려하고 웅장한 무대’를 강조하는 경우가 많지요. 실제로 무대는 공연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전체 제작비 중에 상당히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항목입니다. 오페라의
경우 보통 무대에 드는 비용이 전체 제작비의 10-20퍼센트 정도 차지합니다. 억대가 되는 경우가 많지요. 이렇게 큰 돈을 들인 무대세트는, 그 공연이 끝나면 어떻게 될까요?
저는 지난주 국립오페라단이 임대 사용하고 있는 경기도 용인의 한 창고에 다녀왔습니다. 이
날 국립오페라단은 이 창고에 보관하고 있던 작품 4편의 무대세트를 폐기했습니다. 오페라 ‘파우스트’와
‘시몬 보카네그라’, ‘어린이와 마법’, 그리고 오페라 갈라콘서트의 무대세트였죠. 폐기물업체가 동원돼 덩치
큰 무대세트들을 부수고, 대형 트럭에 실어 소각장으로 보내는 작업이 하루 종일 계속됐습니다. 폐기하는 데에만 천 만원 이상이 듭니다.
이 날 폐기한 무대세트는 24톤짜리 대형트럭 15대 분에 해당하는 분량이었습니다. 제작하는 데 5억 이상이 들었던 무대세트입니다. 국립오페라단 무대 담당 직원들은
착잡한 표정이었습니다. 공들여 만든 무대세트들이 눈 앞에서 부서지고 버려지는 걸 보면서 눈가가 빨개지는
직원도 있었습니다.
왜 멀쩡한 무대세트를 버렸을까요? 보관할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국립오페라단은 이 창고와 함께 경기도 여주의 무대미술센터 창고를 임대 사용하고 있습니다. 무대미술센터는 정부 지원으로 건립해 한국문예회관연합회가 운영하는 곳입니다. 국립오페라단을
비롯해 국립발레단, 서울예술단 등 7곳의 예술단체가 공동으로
임대해 무대세트와 의상, 소품 등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무대미술센터가
생기기 전, 후원 기업의 창고를 임시로 빌려 쓰거나, 창고
찾아 전국을 전전하며 다닐 때보다는 안정적인 환경이 마련된 셈이지만, 임대 비용은 부담해야 하고, 공간도 이걸로는 모자랍니다.
특히 국립오페라단은 무대세트가 많고 부피가 큰 편이어서 앞에 쓴 것처럼 따로 경기도 용인에 창고를 하나 더 임대해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두 곳을 합쳐봐야 최대 10편 정도밖에 보유할 수 없습니다. 예전에 쓰던 무대세트를 버리지 않으면 신작의 무대세트를 보관할 곳이 없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무대세트를 내다
버리는 겁니다.
그나마 창고가 있는 국립오페라단은 사정이 나은 편입니다. 남산에 있는 국립극장은 따로 창고가
없습니다. 극장 내부 곳곳에 무대세트를 나눠 쌓아둔 것도 모자라, 극장
바깥에도 쌓아놓았습니다. 한편은 차가 지나다니는 통로이고, 한편은
남산 기슭인 곳에 간이 칸막이를 치고 무대세트를 쌓아놓은 모습이 처량했습니다. 마침 비까지 내려서 더
그랬습니다.
위쪽에 칸막이가 있기는 하지만, 옆으로 들이치는 비바람과 먼지는 막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곳에 보관한 무대세트의 수명이 길 리 없습니다. 금방 훼손돼서
다시 사용하려면 반드시 보수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나마 이 곳에 들어가지 않는 무대세트들은 노천에 그대로
뒀다가 버리기 일쑵니다. 국립극장 주기홍 무대기술팀장은 ‘국립극장이라는
타이틀이 창피하다’며 한탄했습니다.
저는 사실 보관할 곳이 없어서 무대세트를 내다 버린다는 얘길 듣고 처음엔 ‘그럼 창고를 새로 짓거나 더 빌리면 되지 왜 멀쩡한 걸 버리느냐’고
의아해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예산 문제가 있었습니다. 예산이
빠듯한 상황에서, 언제 다시 공연될지 모르는 기존 작품의 무대세트를 마냥 창고 임대료를 내가며 보관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내다 버리는 게 낫다는 판단을 하게 되는 겁니다.
국립오페라단은 올 가을에 바그너 탄생 200주년 기념 공연인 ‘파르지팔’을 한국 초연 무대에 올릴 예정입니다. 대작인 이 작품은 이번에 공연되고 나면, 언제 다시 올라갈지 기약이
없습니다. 그래서 해외 유명 무대미술가가 디자인하고 제작비가 억대 이상 될 것으로 보이는 무대세트를
어떻게 해야 할지 벌써부터 고민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창고에 보관해도 다시 올라갈 가능성이 낮다면 괜히
운반비 보관비 들이지 말고 끝나자마자 폐기하는 게 낫지 않느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SBS뉴스 웹사이트 취재파일로도 송고했습니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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