既来之则安之。 드라마 '보보경심'에서 4황자가 루오씨에게 해준 말. 21세기 아가씨가 웬일인지 청나라로 타임 슬립한다. 루오씨는 청나라에서 살기 어려우니 어떻게 해서든 현대로 돌아가려고 자꾸 남들 눈에는 '자살 기도'로 비치는 행동을 한다. 그 때마다 무슨 인연인지 4황자와 마주치고. 4황자는 '도대체 젊은 사람이 무엇 때문에 죽으려고 하느냐'고 추궁하는데, 루오씨는 '죽으려는 게 아니'라고 해명하며 이렇게 묻는다. "꿈속에 있는데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어떻게 하면 될까요?" 4황자의 대답. “'六个字. 既来之则安之!(한자 6글자-기왕 왔으니 적응해서 잘 지내라는 뜻)" 루오씨에게 해주는 4황자의 충고가 나한테 해주는 말처럼 들렸다. 중국에 온지 딱 1년이 됐을 때였다. 이왕 중국에 왔으니 적..
중국에 온지 얼마 안 됐을 때 몇년 전 중국내 반일감정이 한창 고조되면서 우리 동네 일본계 쇼핑센터 유리창이 다 깨지고 일본산 승용차 창이 깨지거나 타이어에 펑크 나는 일이 다반사였다는 얘기를 듣고 으스스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 중국 거주 일본인들은 몸조심하느라 외출도 삼갔다 한다. 그 일본계 쇼핑센터는 지금은 잘 운영되고 있지만 일본을 연상하게 하는 이름은 다른 걸로 바뀌었다. 중국의 사드 보복조치가 연일 강경해지고 중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반감도 커지는 것 같다. 몇년 전 일본인들이 겪었던 일을 우리도 겪을지 모르겠다. 요즘 중국내 보도를 보면 연일 사드 관련기사가 헤드라인이다. 잠깐만 훑어봐도 객관적이고 냉정한 분석이 아니라 상당히 자극적이다. 평소에 중국인들과 얘기하다가 지나치게 국가주의적인 성향이..
중국의 유명 관광지에 단체 여행을 가는 경우, 대개 그 곳에서 열리는 공연도 보게 된다. 나 역시 몇 년 전 첫 중국여행에서 항저우(杭州)에 들러 ‘송성가무쇼’라는 공연을 보았다. 라스베가스의 오쇼(O show), 파리의 물랑루즈쇼와 함께 세계 3대 쇼로 불린다는 선전문구는 출처를 알 수 없었지만, 공연은 볼거리가 많았다. 항저우의 역사와 전설을 소재로, 무대에서 폭포가 쏟아지는 등 화려한 무대장치와 특수효과에, 출연진이 400명에 이르는 대규모 공연이었다. 3천명 이상을 수용한다는 극장에 빈 자리가 거의 없었다. 중국에서 음악회나 연극, 무용 등 일반적 개념의 극장 공연산업은 사실 그리 성숙했다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중국에 살다 보니 웬만한 관광지마다 ‘여유연출(‘旅游演出)’, 즉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수경 언니. 피아노 선생님인 이모의 수제자. 나 어릴 때 이모가 우리 집에서 레슨을 했기 때문에 나는 수경 언니의 피아노 연주를 몇년간 지속적으로 들었다. 이모한테 혼날 때도, 칭찬 받을 때도 있었지만, 나에겐 언제나 피아노 잘 치는 멋진 언니였다. 쇼팽 스케르초 2번, 베토벤 소나타 23번 열정, 모두 어릴 때 언니의 연주로 수없이 들어서 무슨 곡인지도 모르면서 멜로디만 달달 외워버린 곡들이었다. 좀더 나이가 들어서야 무슨 곡인지 알게 되었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 다시 피아노를 배울 때 내 주제도 모르고 이 곡들을 쳐보겠다며 집어든 데에는 분명히 언니의 영향이 있었을 거다. 공부도 빼어나게 잘했던 언니는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피아노를 놓지 않았고, 엄청난 고민 끝에 음악이 아닌 다른 진로를 선택해 의..
*지난해 중국 공연장에서 본 관람문화에 대해 블로그에 글을 쓴 적이 있다. 국립극장에서 발행하는 월간지에 중국 공연 관람문화에 대해 써달라는 요청을 받고 다시 고쳐썼다. 월간 '미르' 1월호에 실렸다. 중국의 주요 도시에는 ‘대극원’이라 불리는 공연장이 있다. 대개 콘서트홀과 오페라 극장, 다목적 극장을 갖췄으니 마치 한국의 ‘예술의전당’과 같은, 번듯한 복합 문화공간이다. 최근에 문을 연 경우는 외관부터 감탄을 자아내는 최첨단 공연장들이 많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칭다오에도 칭다오 대극원이 있다. 나는 칭다오 대극원 콘서트홀에서 열린 칭다오 심포니의 음악회를 보러 가서 중국의 공연관람 문화를 처음으로 접할 수 있었다. 칭다오 심포니의 연주는 아무래도 썩 높은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날 공연의 가..
지난해 초, 영국언론 '가디언'의 전 편집장 러스브리저의 책 'Play it again'에 한 동안 빠져있었다. 러스브리저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언론인이다. 그의 재임 기간 가디언은 '디지털 퍼스트' 혁신을 선도했고, 세계적인 특종을 여럿 일궈냈다. 그런데 그 가디언 편집장이 피아노를 친다고? 그 바쁜 와중에 쇼팽 발라드 1번에 도전했다고? 사실 쇼팽 발라드 1번은 나도 정말 치고 싶어서 건드려놓기만 하고 몇 년째 지지부진한 상태로 있었던 곡이다. 언론계 대선배이기도 한 러스브리저는 이렇게 도전했고, 해냈다는 거다. 피아노 얘기와 함께 나오는 세계적인 특종의 뒷얘기도 정말 흥미진진해서 며칠 잠도 안 자고 읽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고백하자면, 책 정말 잘 읽었다고, 나도 발라드 1번 치려 하는데 용기를 얻었..
중국은 음식점이나 카페에서 회원 등록하고 충전카드를 만들라고 권유하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는 내키지 않아 그때그때 돈을 지불했는데, 이 곳 생활에 좀 익숙해지면서 충전카드가 한 장 한 장 늘어나고 있다. 단골 빵집은 500위안 충전하면 80위안과 음료권을 추가로 제공하는데 벌써 세 번째 충전해서 쓰고 있다. 어제는 커피가 이 근처에서 제일 맛있어서 종종 가는 카페에서 회원카드를 만들었다. 1000위안을 충전하면 288위안을 더 준단다. 회원등록할 때 이름과 전화번호를 달라 해서 내 이름을 한자로 써주면서 '진쇼우씨앤'이라고 얘기했다. 金受贤이라고. 그런데 카페 직원이 이 이름을 보더니 고개를 갸우뚱한다. 직원이 글자를 잘 못 알아보나 싶어서 다시 크게 써 줄까 하고 있는데 이 직원, 내가 쓴 受 자 위에..
해외여행이나 출장 갔다가 차량 공유 서비스 ‘우버’ 써보신 분들 있으시죠? 저는 중국에 살면서 우버를 이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아는 중국인 친구들도 우버가 택시보다 훨씬 편하고 싸다고 했습니다. 우버는 중국의 택시 예약 앱인 ‘디디추싱’과 치열한 경쟁을 벌였습니다. 중국 토종 서비스인 ‘디디추싱’은 택시 예약 앱이면서 우버처럼 택시 아닌 일반 차량을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도 제공합니다. 디디추싱이 중국 차량 예약 서비스 시장의 80퍼센트 이상을 차지했고, 2위인 우버는 10퍼센트 미만의 시장을 점유하고 있었는데, 두 회사의 경쟁은 굉장히 치열했습니다. 양사 모두 출혈경쟁으로 1년 적자폭이 1조원을 훌쩍 넘었다 하니까요. 처음 디디추싱과 우버 양쪽을 사용해 보니, 우버가 좀 더 낫더라고요. 디디추싱보다..
(사진 중국 국가화극원 제공) 외국에서 한국 예술가들의 공연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영국 연수 시절,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공연을 보기 위해 기차 타고 런던으로 ‘상경’했던 추억이 있다. 한국에서 공연 볼 때보다 훨씬 반갑고 좋았다. 중국에 와서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말 중국 국가화극원 극장에서 열렸던 한국 국립극단의 연극 ‘조씨 고아, 복수의 씨앗(중국 공연명은 赵氏孤儿)’을 보러 베이징으로 ‘상경’했다. ‘조씨 고아’는 제목 그대로 조씨 성을 가진 고아의 이야기다. 원나라 때의 작가 기군상이 쓴 희곡이 원작으로, 중국 진나라를 배경으로 삼은 복수극이다.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다 안다고 할 만한 고전이라 중국 영화로, 드라마로, 연극으로, 여러 차례 만들어졌다. 유럽에서 가장 먼저 공연된 중국..
‘상하이 문화광장(상하이 컬쳐스퀘어)’는 상하이의 대표적인 뮤지컬 극장이다. 지난 겨울 상하이 방문 때 중국 국립극단-영국 극립극단 합작 연극 ‘워 호스(War Horse)’를 보러 갔다가 이 극장을 처음 알게 되었다. ('워 호스’ 중국 버전 감상기도 이 블로그에 올렸다 http://curtaincall.tistory.com/264) 극장 외관이 인상적이었을 뿐 아니라 내부 시설도 훌륭했다. 10월 13일 상하이에서 열린 한국 창작 뮤지컬 쇼케이스를 보러 갔다가 상하이 문화광장의 부총경리로 프로그램을 책임지고 있는 리차드 페이(중국 이름 페이위앤홍 费元洪)를 소개받았다. 안 그래도 이 극장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았던 터라 인터뷰를 요청했다. 며칠 후 상하이 문화광장으로 갔다. ‘블루맨 그룹’이 공연되고 ..
오랜만에 SBS인터넷 뉴스에 취재파일을 썼다. 2013년 취재부서가 아닌 브랜드전략팀으로 옮겼고 이후에는 중국으로 떠나오면서 취재파일 쓰기를 중단했었는데, 3년여만에 '컴백'한 셈이다. 앞으로는 종종 써볼까 한다. 첫번째는 역시나 보보경심 관련 글이다. ------------------------------------------------------------------------------------------------------- 안녕하세요. SBS 기자 김수현입니다. 오랫동안 문화부에 근무하면서 관련 보도를 많이 했었는데, 혹시 기억하시나요? 한 때는 매주 SBS모닝와이드에 출연해 ‘김수현의 커튼콜’이라는 타이틀로 공연 소식 전해드리기도 했고요. 지금은 중국에 와 있습니다. 남편의 중국 주재원 발..
중국 범죄드라마 '위쭈이(余罪)' 24편을 다 보고 나서, '부부징신(步步惊心. 보보경심)'으로 들어갔다. 한국에서도 리메이크한다 해서 원작이 궁금해서 보기 시작한 건데, '위쭈이' 볼 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35편을 사흘만에 완주했다. 부부징신은 소설을 원작으로 2011년 후난위성에서 방송돼 중국에 超越剧(초월극. 타임슬립 드라마) 선풍을 일으킨 드라마다. 교통사고를 당한 여주인공의 영혼이 '타임 슬립'으로 청나라 강희제 시대 소녀 루오씨의 몸에 들어간다. 루오씨의 언니는 강희제 8번째 황자의 측실이라, 루오씨는 여러 황자들과 교류하면서 자라고, 이후 강희제의 차 시중을 드는 궁녀가 된다. 일대의 성군으로 평가받는 강희제는 아들들의 권력 다툼은 제대로 제어하지 못했고, 4번째 아들인 옹정제가 권력다..
쿤밍시 남동부에 위치한 석림은 '쿤밍여행'으로 검색하면 엄청나게 많이 나오는, 유명한 관광지다. 석림과 구향동굴을 묶어서 하루 코스로 다녀오는 게 일반적이다. 석림과 구향동굴은 중국인 단체 관광팀에 합류해서 구경다니게 되었다. 우리 가족까지 두 팀 외에는 모두 중국인 관광객들이었다. 상하이, 션전, 광쩌우, 중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석림은 수많은 석주들이 기기묘묘한 모양으로 우뚝우뚝 솟아있는 지대다. 원래 바다속에 있던 석주들인데 지면이 상승하면서 돌숲 모양으로 형성되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자연유산이기도 하다. 중국 관광지는 대개 입구에서 입장료를 한 번만 내고 끝나는 게 아니라 버스를 타고 들어가서 또 다른 이동수단으로 갈아타는 경우가 많아서 한꺼번에 표를 여러 장 사야 한다. 표 값은 만..
지난주 여름 휴가로 윈난(운남)성 여행을 다녀왔다. 중국 남부의 윈난성은 인구가 약 4600만명에 달하며 미얀마, 베트남, 라오스와 경계를 맞대고 있다. 소수민족이 전체 인구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한다. 중국 남부 아열대 기후 지역에 속하지만 고산지대라 여름에도 비교적 날씨가 서늘하다. 남편의 휴가가 급작스럽게 결정되는 바람에 급하게 비행기표 사고 현지 여행사 예약하고, 번갯불에 콩 볶듯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일정은 4박 5일. 일단 칭다오에서 비행기를 타고 윈난성의 성도인 쿤밍(곤명)에 갔다. 관광 일정 일부와 숙박, 장거리 교통편을 예약해주는 여행상품을 택했기 때문에, 첫날은 쿤밍 시내 호텔에 짐을 푼 뒤 우리끼리 구경 다녔다. 도착하고 보니 점심 때라서 밥을 해결해야 했다. 시내 중심가에서 쌀국..
지난해 7월 27일, 이 곳 칭다오에 가족들과 함께 왔다. 이제 딱 1년이 지났다. 1년 동안 난 뭘 했나. 돌이켜보니 중국 와서 한동안은 시행착오와 실패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중국어 까막눈으로 온 데다, 학교를 다니면서 실망과 분노, 어이없음과 달관의 경지를 계속 오갔던 게 주된 원인이었다. 몇 달간의 시행 착오 끝에 원래 계획했던 전공 공부보다 중국어 학습에 집중하기로 하면서 많은 것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휴직까지 하고 왔는데, 여기서 헛되이 시간을 보내면 안된다는 생각이 강했던 것도 좌절감의 원인이었다. 중국어 공부를 하고는 있지만 빨리 늘지는 않고, 이렇게 중국어 해봤자 나중에 구체적으로 무슨 소용이 있을지 잘 모르겠고, 한국을 떠나 있는 동안 내가 뒤쳐지는 게 아닌가, 문득문득 걱정이 되곤 했..
블로그와 페이스북, 모두 방치하다시피 해 놓은지 꽤 되었다. 중국에서 인터넷 사용하는 데 제한이 있는 게 주요 원인이기도 하고, 내가 예전과는 다른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회사 다닐 때에는 컴퓨터를 하루종일 켜놓다시피 했다. 회사에선 당연하고, 집에 와서도 그랬다. 그런데 요즘은 컴퓨터를 켤 일이 별로 없다. 중국학 수업을 주로 들었던 지난 학기에는 컴퓨터를 종종 사용했었지만, 중국어 수업에 집중하기 시작한 뒤로는 그저 휴대폰 사전이나 검색하고 만다. 내 컴퓨터는 그래서 어느새 아이들의 동영상 감상용으로 주로 쓰이게 되었다. 지난 주 한국에 일이 있어 며칠 다녀왔다. 영국 연수 시절 지도교수님 서울서 열린 국제컨퍼런스 참석차 오셨다는 소식에 행사장을 들렀다. 올리버 베넷 교수님과 오랜만에 재..
아침에 학교 가려고 집을 나섰다가 버스 정류장까지 도착했을 때 지갑을 집에 두고 왔다는 걸 알았다. 발길을 돌려 다시 집으로 향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집으로 가려면 큰 길을 건너야 하는데 지하도밖에 없다. 지하도 또 건너기 싫은데, 할수없지. 투덜투덜하며 집에 가서 지갑을 가지고 나왔다. 다시 버스 정류장에 와서 지갑을 열어보니 버스 카드가 없다. 칭다오 시내버스 요금은 1위안인데, 1위안짜리 잔돈도 없다. 5위안짜리 10위안짜리만 있다. 어떻게 할까. 택시를 타고 갈까. 그런데 이 시간엔 택시도 잘 잡히지 않는다. 다시 큰 길을 건넜다. 큰 길 건너편 집 가는 방향으로 조금만 가면 편의점이 있다. 내가 버스 카드를 충전하는 곳이다. 여기서 버스 카드를 새로 살 생각이었다. 편의점에 가서 ‘자오통카(交通..
이곳 칭다오대극원에서 '난타'를 공연한다. 공연 소개를 보니 한국의 무언음악희극 '乱打神厨‘(난타신주. 중국어로는 루안따션추. '션추'는 '신기한 주방' 정도의 뜻일 것 같다)라고 쓰여 있다. '난타' 초창기, 내가 문화부에 가기도 전에 처음 이 공연을 봤고, 이후 문화부에서 취재를 하면서 관련 기사를 쓰기 위해 또 여러 차례 이 공연을 봤다. 족히 10번은 될 것 같은데, 칭다오대극원에서 3월 17일 열리는 공연을 보기 위해 방금 예매를 마쳤다. 입장료가 80위안에서 480위안까지다. 80위안짜리 가장 저렴한 표는 거의 다 팔려나갔다. 칭다오대극원은 이번에도 역시 나이가 아니라 키로 어린이 입장 제한을 한다. 공연 보는 데 신체 발육 상태보다는 연령이 중요한 거 아닌지. 여기가 무슨 롯데월드 놀이동산도..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는 각 동마다 1층 출입문을 여는 열쇠가 있어야 한다. 낮 시간에는 1층 출입문을 열어두기도 하지만, 아침 일찍이나 밤 시간에는 보통 닫아둔다. 밖에 나갔다가 열쇠가 없으면 낭패다. 열쇠를 가진 누군가가 올 때까지, 혹은 건물 안에서 누군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1층 출입문 안쪽에 자리잡은 경비원이 열어주는 경우도 간혹 있기는 하다.) 지난해 말부터 아파트 단지의 출입문도 이 열쇠로 드나들 수 있도록 하는 공사가 시작됐다. 그러더니 모든 입주자는 12월말까지 기존의 열쇠를 관리사무소에 내야 한다는 공지가 붙었다. 기존의 열쇠로는 아파트 단지 출입문까지 열 수가 없기 때문에 모두 수거하고 새 열쇠로 바꿔준다는 거다. 처음엔 공지를 잘 보지 않고 다니다가 12월 31일에야 알고 ..
지난해 말 상하이에 여행 갔다가 영국 국립극장의 연극 ‘워 호스’가 상하이컬쳐스퀘어에서 공연된다는 걸 알게 되어 급하게 표를 샀다. 중국 국립극장과 영국 국립극장의 공동 프로덕션으로 중국 배우들이 출연하고, 영어 자막을 제공한다 했다. 보고 싶었던 공연이지만 표를 사면서 좀 불안하기는 했다. 칭다오 공연장에서 겪었던 일을 여기서도 또 겪으면 어쩌지?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공연장에 갔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객석 분위기는 괜찮았다. 상하이는 아무래도 칭다오보다는 공연이 많이 열리는 대도시라서 관람 문화가 좀 더 나은 것 같았다. 게다가 내가 생각지 못했던 ‘비결’도 하나 있었다. 공연이 시작되고 얼마나 지났을까, 어두운 관객석 앞쪽에 갑자기 붉은 색깔 빛이 나타나 마구 흔들렸다. 저게 뭐지? 나는 ..
한국에 있을 때 전화벨 소리, 기침 소리 등등 공연을 방해하는 객석의 소음과 관련해 기사를 몇 차례 쓴 적이 있다. 그런데 중국서 살며 공연장 가보니 한국 공연장의 객석 분위기 정도면 아주 양호한 편이다. 중국에 살면서 처음으로 공연을 본 게 지난해 12월초였다. 칭다오 대극원 콘서트홀에서 열린 칭다오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보러 갔다. 지난해 여름 중국에 도착한 이후 한 번도 제대로 된 ‘문화생활’을 하지 못해 공연에 굶주려 있던 때였다. 칭다오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칭다오 대극원에서 종종 공연을 여는데, 이 날은 영화음악을 테마로 한 공연이었다. 공연 제목이 ‘실내악폐막음악회’였다. 이 공연 자체는 실내악 공연이 아니었지만, 아마 이전부터 열렸던 실내악 공연 축제의 마지막 공연이었던 것 같다. ‘아..
중국에 온지 다섯 달 만에 제대로 ‘문화생활’을 했다. 상하이에서 연극 ‘워 호스(War Horse)’를 본 것이다. ‘워 호스’는 영국 작가 마이클 모퍼고의 소설(1982년)이 원작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로도 유명하다. 영국 국립극장이 제작한 연극은 2007년 런던 초연 이후 각종 상을 휩쓸었던 화제작이다. 소년 알버트와 그가 사랑하는 말 조이의 이야기가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알버트는 전쟁에 징발당한 말 조이를 찾기 위해 가족 몰래 군에 입대해 전장에 뛰어든다. 연극 전반부는 알버트가 어린 시절부터 조이를 키우면서 우정을 나누는 이야기, 후반부는 조이와 알버트가 겪는 전쟁 이야기가 중심이 된다. 실제 크기로 만들어진 말 인형의 ‘연기’가 압권이다. 정교한 말 인형은 남아프리카의..
여기서 고등학교 다니는 큰 아이는 연극 수업을 선택해 듣는다. 뮤지컬 '위키드'가 이번 학기의 연극 수업 프로젝트다. 학기말에 모든 학생들이 각자 어떤 역할이든 맡아서 공연을 하게 된다. 한국서 예고 다닐 때만큼 세심한 지도를 해주지는 않지만, 학생들이 함께 공연 한 편을 완성한다는 데 의의를 둔 수업이다. 물론 무대니 의상이니 엄청나게 간소화한 아마추어 공연이다. 큰 아이는 처음부터 앨파바 역을 하고 싶어했었다. 하지만 선생님이 글린다 역을 권유했고, 결국 글린다 역을 맡게 되었다. 은우는 자기가 안 어울리는 역을 맡았다며 걱정이었다. 글린다 역을 함께 맡은 줄리아라는 서양 아이는 평소 성격도 글린다와 비슷한 면이 있어 굉장히 자연스럽게 잘 한다 했다. 학기 중간에 연극 지도 선생님을 만났더니 웃으면서..
중국 고대사 첫 수업 시간에 교수는 중국의 고대왕조에 대해 조사해 오라는 숙제를 내줬다. 교수는 얼리토우(이리두) 유적에서 알 수 있는 'Xia dynasty(夏왕조)'의 특징, 그리고 '리슈에친(이학근)'이라는 중국 사학자의 연구에 대해 조사해 오라고 했다. 그런데 교수가 수업 교재로 쓰는 책 두 권(The Cambridge Illustrated History of China, The Open Empire)을 아무리 읽어봐도 하왕조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그저 얼리토우 유적이 하왕조와 관계 있다고 이야기되는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하왕조에 대해서는 사료가 부족하다, 이 정도였다. 책과 함께 다른 자료를 찾아보니, 하 왕조 이후의 상 왕조는 갑골문의 발견으로 어느 정도 정보를 알 수 있으나,..
며칠 전 '중국은행(Bank of China)'에 계좌를 개설하러 다녀왔다. 여기 온 후로 한국계 은행의 현지법인 은행에서 계좌를 만들어 직불카드를 사용하고 있었는데(중국의 딴 곳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칭다오에서는 신용 카드가 통하는 곳이 거의 없다. 카드가 된다고 하는 곳은 다 직불카드 얘기다), 알리페이 가입을 하려 하니 한국계 은행 계좌는 제휴가 안 돼 있어 중국은행에 계좌를 하나 터야겠다 하던 참이었다. 처음이라 약간 긴장하고 갔는데, 안내 직원에게 开户(카이후. 계좌 개설)라고 얘기하고 나니 '신분증 있냐'고 물어왔고, 신분증 가져왔다고 했더니 그 다음부터는 크게 어려움 없이 진행됐다. 내가 간 지점이 시내 한 복판이라 그런지 입력기가 있어서 신청서를 손으로 쓸 필요도 없었다. 안내 직원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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