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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밍시 남동부에 위치한 석림은 '쿤밍여행'으로 검색하면 엄청나게 많이 나오는, 유명한 관광지다. 석림과 구향동굴을 묶어서 하루 코스로 다녀오는 게 일반적이다. 석림과 구향동굴은 중국인 단체 관광팀에 합류해서 구경다니게 되었다. 우리 가족까지 두 팀 외에는 모두 중국인 관광객들이었다. 상하이, 션전, 광쩌우, 중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석림은 수많은 석주들이 기기묘묘한 모양으로 우뚝우뚝 솟아있는 지대다. 원래 바다속에 있던 석주들인데 지면이 상승하면서 돌숲 모양으로 형성되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자연유산이기도 하다.

중국 관광지는 대개 입구에서 입장료를 한 번만 내고 끝나는 게 아니라 버스를 타고 들어가서 또 다른 이동수단으로 갈아타는 경우가 많아서 한꺼번에 표를 여러 장 사야 한다. 표 값은 만만치 않다. 한 사람 앞에 우리 돈 몇 만원이 보통이다. 석림과 구향동굴 두 곳에서 낸 돈이 1인당 320위안, 우리 돈 5~6만원쯤 된다. 게다가 이동수단을 갈아탈 때마다 지루하게 줄 서고 기다리는 일이 반복된다. 이렇게 비싸고, 줄 많이 서도, 중국 유명 관광지는 항상 미어터진다. 여름휴가 성수기라 더욱 그랬다. (석림은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도 많이 가는 곳이라는데, 내가 간 날은 한국인 단체 관광팀이 거의 없었다.)

 

사진으로 많이 봤지만, 직접 보니 과연 멋진 풍경이었다. 처음엔 신나서 사진을 찍어댔지만, 들어갈수록 더 멋지고 기기묘묘한 풍경이 나오다 보니 나중에는 사진 찍는 것도 심드렁해질 지경이었다. 돌 많고, 사람 많고, 햇살은 뜨거웠다. 윈난성 유명관광지에서는 다채로운 색상의 소수민족 복장을 한 소녀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 복장 빌려입고 사진 찍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중국인 가이드가 주요 지점마다 설명을 한 뒤(물론 다 알아들을 수도 없지만서도), '사진 찍고 10분 후에 돌아오라'고 시간을 주는 식으로 관광이 진행됐다. 구경하는 게 주 목적인지, 사진 촬영이 주 목적인지 잘 모르겠다. 이렇게 사진만 찍고 있기는 싫지만, 오랫동안 두고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사진으로라도 남기는 게 남는 장사인 것 같아 일단 찍고 본다. 그러고 보니 아날로그 필름 카메라 시절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어쨌든 반복하지만, 석림은 문자 그대로 '기기묘묘' 맞다.  

 

 

 

 

 

오전 내내 석림을 둘러보고 이동해 점심을 먹고 구향 동굴로 향했다. 사실 나는 동굴 구경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폐쇄 공포증까지는 아니지만 땅밑 깊숙히 들어가는 건 그리 달갑지 않다. 지난해 계림 여행 갔을 때도 동굴을 두 곳 구경했는데, 보다 보니 거기가 거기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동굴 안에서 배를 타고 다녔으니 스케일 하나는 끝내줬다. 구향 동굴 역시 일단 스케일로 보는 사람을 압도했다. 사진으로는 잘 실감 나지 않지만,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려간 동굴 입구부터 세찬 물소리가 귓전을 때릴 정도로 동굴 속 물길의 기세가 대단했다. 

 

 

 

웬만한 지상 폭포는 저리 가라 할 위용을 자랑한다. 동굴 속은 기기묘묘한 형상의 종유석들로 가득 찼다. 신기한 형상의 종유석에 이런 저런 이름을 붙이고 조명을 설치해 사람들의 주의를 끌고 있었는데, 사진이 잘 안 나올 것 같아 별로 많이 찍지 않았지만, 이 테라스 폭포 형상은 그냥 지나쳐버리기 어려웠다.  

 

 

구향동굴은 석림과는 달리 가이드가 따라오지 않고, 마음대로 둘러보고 나오라고 세 시간을 줬다. 처음에는 시간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동굴 속 깊숙히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려 하니 오르막길 등산하는 것과 비슷했다. 어쩐지 오르막길 시작되는 곳에서 들것에 여행객을 태워주는 사람들이 호객을 하고 있었다. '힘들어, 힘들어' 하면서. 

동굴을 빠져나왔는데도, 아직도 협곡 속에 있는 셈이라 집합 장소인 관광지 입구 주차장까지 가려면 산을 더 올라가야 했다. 걸어가거나 리프트를 타야 하는데, 우리는 리프트 표까지 미리 사고 들어와서 리프트 타는 곳에 줄을 섰다. 그리 사람이 많아보이지 않았는데도 줄이 꼬불꼬불 몇 번을 구부러졌는지, 기다리는 데 거의 30분이 걸렸다. 

중국에서 줄 서기는 대개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줄에 조금만 틈이 생기면 어김없이 누군가 끼어드는 일이 다반사라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이번에도 젊은 중국 여성 둘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우리 줄 앞에 끼어들고는 조심성 없이 양산을 펴는 바람에 양산 살에 찔릴 뻔했다. 따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중국어로 뭐라 해야 하나 머리를 굴리다가 참고 말았다.

그런데 더 심한 광경을 목격했다. 우리 뒤편 줄 중간에서 어린 사내아이가 포함된 한 가족이 한꺼번에 새치기를 했는데, 이를 마침 리프트카 운영회사 직원이 보고 새치기 하지 말라고 소리를 쳤다. 이 직원은 좀 전에도 새치기한 사람을 줄 맨 끝으로 보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번 가족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아이 엄마가 줄 맨 끝으로 가라는 직원에 맞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새치기한 것에 대한 미안함은 전혀 보이지 않고, 도리어 이 직원을 마구 몰아붙였다. 

한동안 두 사람 사이에 고성이 오가더니, 7-8세쯤 되어보이는 아이도 엄마 편을 들어 이 직원에게 마구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이게 웬일이야, 놀라서 쳐다보고 있는데,더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갑
자기 이 엄마가 직원을 향해 침을 뱉은 것이다. 이럴 수가! 직원이 잔뜩 화가 나서 '네가 침을 뱉어? 왜 뱉어? 왜 뱉어?" 하는데 이 엄마는 전혀 위축되는 기색 없이 계속 소리를 질러댄다. 직원은 '침 또 뱉어봐! 또 뱉어봐!' 하고 소리를 지르다가, 이 가족이 그래도 꿈쩍 않으니 별 방법이 없는지 저쪽으로 가버렸다. 주변 사람들도 질렸는지 아무 얘기 않고, 결국 이 가족은 공식적으로 새치기한 자리를 차지한 셈이 되어버렸다.

석림 뿐 아니라 구향동굴도 경치가 정말 좋았지만, 새치기 가족들이 버럭버럭 소리 지르고 침 뱉는 광경을 보고 나니, 이 날 가장 인상에 남는 기억은 새치기 가족들의 적반하장 행태가 되었다.  나중에 공공화장실 가는 길에 이 가족을 다시 마주쳤는데 얼른 피했다. 이거야 원 입맛이 쓰다 할 수밖에. 이런 걸 보고 자라는 아이는 도대체 뭘 배울까.   

 

 

어쨌든 리프트 카를 타고 올라가서 주차장 입구에서 가이드 접선. 다시 버스를 타고 쿤밍 시내로 들어갔다. 이날 밤 리장(丽江)으로 떠나는 열차를 예약해놨기 때문에 쿤밍 역으로 간다. 역시 밤에 열차를 타야 한다는 우리 관광팀의 중국인 아줌마가 친절하게 안내해 줬다. 쿤밍 역의 보안검색 과정은 비행기 타는 것 뺨치게 까다롭다. 결국 전날 차문화박물관에서 차와 함께 샀던 작은 차도(차뭉치에서 차를 조금씩 떼어내는 데 쓰는 칼. 칼이라지만 그리 날카롭지 않고 과도보다 훨씬 작다)를 빼앗기고는 기분이 좀 상했다.

밤 9시 20분 출발. 중국서 처음 타보는 침대열차에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올라탔다. '루안워(软卧)'로 불리는 침대칸을 예약했다. '잉워(硬卧)'로 불리는 딱딱한 침대칸보다 루안워가 더 비싸고 좋은 거라고 중국어 수업에서 배웠다. 둘째가 이모 집에 가 있는 중이라 우리 일행은 3명, 3인1실인 VIP실로 예약했다.

 


 

 

VIP실은 이렇게 생겼다. 중국은 보통 3인 가족이니 이게 '가족실'인 셈이다. 위 침대에 한 사람, 아래 침대에 두 사람이 잔다. 가격이 669위안이니 12만원쯤 되는 건가. VIP실이 아닌 '루안워'는 보통 한 방에 네 사람이 잔다. 양쪽으로 2층 침대가 배열된 형태다. '루안워' 세 장을 각각 사는 것보다 VIP실 한 칸을 예약하는 게 조금 더 비싸다.

중국 침대열차는 예상했던 것보다는 깨끗하고 괜찮았지만, 아무래도 달리는 기차에서 깊은 잠을 자기는 힘들었다. 그래도 쿤밍에서 리장까지는 밤 시간 침대열차로 이동하는 게 경제적이고 시간 절약도 된다. 쿤밍이 윈난의 성도라 윈난여행을 쿤밍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은 리장이 윈난의 대표적인 여행지로 꼽힌다. 역시 중국어 교재에 나오는 '리장'을 드디어 가보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리장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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