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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 여름 휴가로 윈난(운남)성 여행을 다녀왔다. 중국 남부의 윈난성은 인구가 약 4600만명에 달하며 미얀마, 베트남, 라오스와 경계를 맞대고 있다. 소수민족이 전체 인구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한다. 중국 남부 아열대 기후 지역에 속하지만 고산지대라 여름에도 비교적 날씨가 서늘하다. 남편의 휴가가 급작스럽게 결정되는 바람에 급하게 비행기표 사고 현지 여행사 예약하고, 번갯불에 콩 볶듯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일정은 4박 5일. 일단 칭다오에서 비행기를 타고 윈난성의 성도인 쿤밍(곤명)에 갔다. 관광 일정 일부와 숙박, 장거리 교통편을 예약해주는 여행상품을 택했기 때문에, 첫날은 쿤밍 시내 호텔에 짐을 푼 뒤 우리끼리 구경 다녔다. 도착하고 보니 점심 때라서 밥을 해결해야 했다. 시내 중심가에서 쌀국수인 '미씨엔(米线)'전문식당을 찾았다. 미리 카운터에서 주문하고 돈을 낸 후 음식을 직접 받아서 먹는 시스템이었는데, 메뉴를 보고 '매운 미씨엔'을 시켰더니 없다고 한다.   

 그럼 뭘 시켜야 할까 망설이는데, 점원은 중국어가 서투른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고 다음 사람, 또 다음 사람 주문을 받았다. 결국은 한 열 명 정도 주문이 끝난 뒤에야 우리가 먹을 음식을 주문할 수 있었다. 주문 받는 종업원이 너무나 불친절하고 귀찮아하는 느낌이라 짜증스러웠지만 어쨌든 닭육수 미씨엔과 자장 미씨엔을 시켰다. 맛은 뭐 그저 그랬다. 종업원이 친절했다면 좀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중국 음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남편은 미씨엔을 거의 먹지 못하고 남겼다. 결국은 미씨엔 옆집의 맥도날드(중국에선 '마이당라오')에서(!) 다시 배를 채우는 상황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쿤밍 시내중심지인 진마(금마) 광장에서부터 걸어다니면서 구경을 했다. 크게 목적지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지도를 보고 걸어다니다가 '오래된 거리'라는 뜻의 '라오지에(老街)' 지역에 닿게 되었다. 서울 삼청동이나 인사동 같은 느낌이 드는 동네였다. 옛 건물들보다는 새로 지은 듯한 전통 양식의 건물들이 모여있었는데, 차문화 박물관이 있어서 구경하러 들어가봤다. 그러고 보니 윈난은 푸얼차(보이차)로 유명한 지역이다. 전시품을 설명하던 박물관 직원은 '푸얼'은 윈난성의 지명인데 윈난성에서 나는 차를 대표하는 이름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박물관 한켠에 차를 파는 곳도 마련돼 있었다. 푸얼차는 가짜도 많고 가격도 천차만별이라 믿을 수 없다는 얘기를 듣기는 했다. 차문화박물관에서 파는 것이라면 그래도 엉터리는 아니겠지 싶었고, 직원이 열심히 설명하는 것을 보니 하나 사고 싶어졌다. 구입하고 나서야 차 맛이 궁금해져서 혹시 시음할 수 없느냐고 물었더니 전시장 안쪽에서 시음할 수 있다며 조금만 기다리라 한다. 조금 앉아있었더니 직원이 끓인 물을 갖고 돌아왔다. 

차에 대해서 별로 아는 것은 없지만, 중국 전통식으로 꾸며진 방에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자니 제법 차 마시는 즐거움을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따라주는 대로 몇 잔을 마시고 나가려는데 갑자기 천둥 소리 같은 게 들리더니 세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직원은 물을 더 끓여오겠다며 더 앉아있다가 비 그치면 가란다. 어차피 우산도 없고, 어디 급하게 갈 곳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주저앉았다. 빗소리를 들으며, 계속해서 차를 몇 잔 더 마셨다. 직원에게 평소 집에서도 이렇게 마시냐 했더니 이렇게 갖춰서 마시려면 번거로워 그냥 간단하게 차 거름망 있는 그릇에 부어서 마신다고 한다. 이렇게 오래 있어도 괜찮으냐 했더니 어차피 자기들은 저녁 7시까지 문을 여니까 얼마든지 더 있다 가도 된다고 했다. 



한 시간 이상 앉아있었던 것 같다. 세차게 비가 오더니 어느새 그치고 날이 개었다. 뜻하지 않게 '신선놀음'을 한 기분이었다. 나오면서 구입한 차는 어떻게 보관하느냐 물었더니 냉장고도 안 되고 부엌에 둬도 안 된다 한다. 다른 맛이나 냄새가 끼어들어가면 안된다는 이유다. 차 보관에 가장 좋은 장소는 서재라는데, 서재가 없으면 부엌보다는 그냥 거실에 두는 게 차라리 낫다 했다.  

라오지에 주변 새로 지은 듯한 쇼핑몰에 들어갔더니 음식점이 많다. 음식점 평가 어플인 '따종디앤핑(大从点评)'을 검색해 가장 평이 좋은 맛집에 들어갔다. '중국식 샤브샤브'인 '훠궈'집인데, 가물치(중국어로는 黑鱼)가 주재료다. 주문하면 즉석에서 수족관 가물치를 잡아 탕에 넣어 끓여준다. 여기에 보통 훠궈집처럼 각종 재료를 원하는 대로 추가해 먹을 수 있다. 탕은 맑은 국물과 매운 국물 중에 선택한다. 매운 국물로 시켜서 먹었더니 매운 느낌이 한국과 좀 다르긴 한데, 딱 가물치 매운탕이다. 가물치를 먼저 건져먹고 나서 추가로 시킨 버섯과 야채류를 더 끓여서 먹었다. 가물치 뼈를 발라내는 게 좀 귀찮기는 했지만 맛있었다. 뜻하지 않게 보양식을 먹은 셈이다.  

 


 

저녁을 배불리 먹고 나왔는데도 아직 날이 환했다. 쇼핑몰 꼭대기에서는 라오지에의 전경이 잘 보였다. 쇼핑몰 옥상층을 어슬렁거리며 구경하다가 쿤밍 시민들이 즐겨 찾는다는 취후(翠湖)공원으로 향했다. 1년 내내 봄 같은 기후로 '춘성'이라 불린다더니, 쿤밍은 과연 날씨가 좋다. 여름은 우기라지만 비가 오더라도 오래 내리지 않고 잠깐 내렸다 그친다. 기온이 많이 높지도 않고 여행 다니기에도 좋은 것 같다. 시내 중심가 일부 지역만 본 거지만, 도시의 느낌이 괜찮았다. 쿤밍이 중국에서 살기 좋은 도시로 꼽힌다더니, 왜 그런지 알 것 같았다. 

 취후공원에 도착했을 때에는 마침 해질녘이었다. 우리 같은 관광객들보다는 쿤밍 시민들이 훨씬 많았다. 저녁 산책을 나온 연인, 가족, 친구...... 호수와 어우러진 석양 풍경이 아름다워 많은 사람들이 셔터를 눌러댔다. 나도 후진 카메라폰으로 여러 장 찍었지만, 역시 풍경은 눈으로 보는 게 최고다. 사진은 내가 실제로 본 풍경의 느낌을 반의 반의 반도 담아내지 못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좋은 풍경을 보면 사진부터 찍고 본다. 어떻게든 이 순간을 고스란히 담아두고 싶어서.



취후공원에서 날이 컴컴해질 때까지 걷다가 공원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그러고 보니 하루종일 꽤 많이 걸었다. 쿤밍 오기 전, 쿤밍 시내에선 뭘 보면 되느냐고 여행사 사장님에게 여쭤봤더니 '중국에 처음 와 보는 사람이 아니라면 특별할 게 없는 도시'라는 대답을 들었었다. 쿤밍에서 손꼽히는 관광지는 대부분 상당히 먼 교외에 있고 시내에는 그리 유명한 관광지가 없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쿤밍이라는 도시의 분위기 자체가 마음에 들었다. 뭔가 온화하고 여유롭다는 느낌이랄까. 

호텔에서 시내 나올 때, 그리고 다시 호텔로 들어갈 때 모두 우버를 이용했다. 우버 어플을 깐 지는 꽤 오래 되었는데, 그동안 결제카드 등록이 잘 안돼서 이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행 떠나오기 며칠 전에야 다른 결제수단을 등록하는 데 성공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중국에선 외국계 은행 발행 카드 사용에 제약이 많다. 지푸바오(알리페이)를 제외한 다른 중국 모바일 결제 서비스는 대개 외국계 은행 발행 카드를 결제수단으로 등록할 수 없다. 그래서 나도 이전에 쓰던 한국계 은행 카드 외에 중국은행 카드를 하나 더 만들어 쓰기 시작했다.)

쿤밍에도 우버 차주가 꽤 많아서 이용하는 데 큰 불편이 없었다. 미리 요금이 책정되어 기사와 흥정을 할 필요도 없고, 목적지에 도달하면 미리 등록해놓은 결제수단에서 자동으로 돈이 빠져나가는 시스템. 
우버를 몇 번 이용해 봤지만 할 때마다 새삼 신통하다. 호텔에 돌아올 때는 우리가 있는 지점을 설명하기 어려워 카페 사장님한테 위치를 얘기해 달라고 부탁했다. 도착한 우버 운전자는 여성이었는데, 굉장히 친절하고 차도 깨끗했다. 호텔까지 15분 정도 거리였는데 요금은 9.6위안. 이거 받아서 뭐 남는 게 있으려나 싶었다. 

호텔로 돌아와서 뉴스를 틀었더니 공교롭게도 우버 얘기가 나온다. 내가 우버 이전에 주로 이용하던 디디추씽(滴滴出行)과 우버 차이나가 합병했다는 소식이다. 디디추씽은 중국판 카카오택시로 중국 최대의 차량 공유서비스 업체다. 그동안 디디추씽과 우버 차이나는 손해를 보면서까지 경쟁을 해왔다고 한다. 어쩐지 안 그래도 저렴한 요금에 이러저러한 명목으로 할인이 많더라. 

우버가 그동안 중국에 수십억달러의 보조금을 쏟아부으며 중국 시장에 안착하려 해왔지만, 이제 홀로 서기를 포기하고 중국 토종 디디추씽의 품에 안긴 셈이라 한다. 디디추씽은 일찌감치 애플로부터 10억 달러를 투자받는 등 막대한 자본을 유치하며 엄청난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다니, 중국 기업의 힘이 세기는 센 듯. 어쨌거나 출혈 경쟁을 했던 두 기업이 합병했으니 이제 할인 혜택은 줄어들겠군. 요금이 오를 수도 있겠다. 


처음에는 리장에서 봤던 공연 얘기를 쓰려고 컴퓨터를 켰는데, 쓰다 보니 그냥 윈난 여행 첫날 일정에 우버와 디디추씽 합병 소식으로 빠져버렸다. 이왕 이렇게 됐으니 이런 식으로 계속 이어가보려 한다. 이틀째는 쿤밍의 대표 관광지로 꼽히는 석림과 구향 동굴을 보고 리장으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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