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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이야기

보보경심 삼매경

soohyun 2016. 8. 27. 13:05


중국 범죄드라마 '위쭈이(余罪)' 24편을 다 보고 나서, '부부징신(步步惊心. 보보경심)'으로 들어갔다. 한국에서도 리메이크한다 해서 원작이 궁금해서 보기 시작한 건데, '위쭈이' 볼 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35편을 사흘만에 완주했다.

부부징신은 소설을 원작으로 2011년 후난위성에서 방송돼 중국에 超越剧(초월극. 타임슬립 드라마) 선풍을 일으킨 드라마다. 교통사고를 당한 여주인공의 영혼이 '타임 슬립'으로 청나라 강희제 시대 소녀 루오씨의 몸에 들어간다. 루오씨의 언니는 강희제 8번째 황자의 측실이라, 루오씨는 여러 황자들과 교류하면서 자라고, 이후 강희제의 차 시중을 드는 궁녀가 된다.

일대의 성군으로 평가받는 강희제는 아들들의 권력 다툼은 제대로 제어하지 못했고, 4번째 아들인 옹정제가 권력다툼에서 승리해 즉위한 뒤, 형제들을 포함한 반대파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한다. 역사가 어떻게 흘러갈지 이미 알고 있는 루오씨는 황실의 권력다툼에 관여하지 않으려 애를 쓰지만, 황자들과의 인연이 어지럽게 얽히면서 오히려 소용돌이 한가운데 휘말려든다. '부부징신'은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놀란다는 뜻이다. 영어 제목도 startling by each step. 그만큼 황실의 삶이 조심스럽고 어렵다는 의미.

누군가 이 드라마를 두고 '역 하렘'이라는 말을 썼던데, 이는 황자들이 너도나도 루오씨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일부는 실제로 루오씨와 '썸'을 타기도 하고, 짝사랑하며 지켜주기도 하고, 평생의 지기로 우정을 나누기도 한다. 드라마는 초반의 밝고 명랑한 분위기와는 달리, 황자들의 권력다툼이 치열해지면서 서서히 비극으로 치달아간다. 마지막 몇 편은 루오씨의 눈물바람이 그칠 날이 없고, 덩달아 나도 훌쩍훌쩍. 딸들이 엄마 혼자서 궁상이냐며 놀려댔다.

기본적으로 루오씨와 황자간 사랑 이야기지만, 실제 역사와 잘 엮어놓았다. 보고 나니 이 시대의 역사가 더 궁금해졌다. 재미있는 것은 현대인 루오씨가 이 시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도 드라마를 봤기 때문인 것으로 나온다는 점이다. 루오씨가 드라마에서 봤던 가상 인물을 실제 인물로 착각해 얘기하니 상대방이 그런 사람은 모르겠다고 하는 장면도 나온다.


이 드라마에 출연했던 류스스와 우치룽(위 포스터 왼쪽 남자배우)은 속편까지 함께 찍으면서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속편은 현대에 환생한 주인공들의 얘기인데, 기대하고 봤다가는 실망한다는 얘기가 있어 보기가 망설여진다. 부부징신을 끝내고 다른 중국 드라마를 찾아볼까 하다가, 그냥 부부징신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부부징신은 한국판으로 리메이크돼 다음 주부터 SBS 월화 드라마로 방영될 예정이다. 고려시대가 배경이라 '보보경심:려'라는 제목을 달았다. 어떻게 바뀌었을지 궁금해서 보게 되지 않을까 싶다. 딸도 '꽃미남 드라마(!)'라며 기대하고 있다. 부부징신을 처음 볼 때는 중국어 자막에 의존해 줄거리 따라가기에 급급했다. 이제 줄거리는 다 알고 있으니 대사를 좀 더 구체적으로 파악해보려고 하고 있다. 당연하지만,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아 사전을 찾지 않을 수 없다. 사극이라 고사성어, 한시도 많이 나온다. 처음 볼 때는 대충 지나갔는데, 다시 보니 아 이게 이런 의미였구나, 하는 장면들이 꽤 있다.

'위쭈이'를 추천해줬던 중국어 선생님이 내가 '위쭈이'에 이어 '부부징신'까지 다 봤다고 하자, '你真是个电视剧迷!'(너 정말 드라마광이구나) 하고 웃었다. 한국에서 채널 돌리다 가끔 중국 드라마 하는 걸 보기는 했지만 아무런 관심도 없었고, 중국말은 나에게 아무 의미없는 '소음'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나도 내가 이럴 줄 몰랐다. 변발한 청나라 남자가 멋져 보이고, 중국말이 아름답게 들리고, 내가 중국 드라마 주제가를 흥얼거리게 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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