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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학교 가려고 집을 나섰다가 버스 정류장까지 도착했을 때 지갑을 집에 두고 왔다는 걸 알았다. 발길을 돌려 다시 집으로 향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집으로 가려면 큰 길을 건너야 하는데 지하도밖에 없다. 지하도 또 건너기 싫은데, 할수없지. 투덜투덜하며 집에 가서 지갑을 가지고 나왔다. 다시 버스 정류장에 와서 지갑을 열어보니 버스 카드가 없다. 칭다오 시내버스 요금은 1위안인데, 1위안짜리 잔돈도 없다. 5위안짜리 10위안짜리만 있다. 어떻게 할까. 택시를 타고 갈까. 그런데 이 시간엔 택시도 잘 잡히지 않는다.
다시 큰 길을 건넜다. 큰 길 건너편 집 가는 방향으로 조금만 가면 편의점이 있다. 내가 버스 카드를 충전하는 곳이다. 여기서 버스 카드를 새로 살 생각이었다. 편의점에 가서 ‘자오통카(交通卡. 교통카드)’달라고 했더니 없다고 한다. 혹시 내 발음이 후져서 그런가 싶어 다시 공공치처카(公共汽车卡. 버스카드) 달라고 했더니 역시나 없다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버스카드 충전은 편의점에서 가능하지만 버스카드 자체는 정해진 판매처에서만 살 수 있는 거였다). 헛수고를 했다. 다시 발길을 돌려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고 나서야 편의점에 간 김에 음료수라도 한 병 사서 잔돈을 만들었으면 되는 건데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아이고, 이 바보. 다시 편의점으로 갈까? 아 귀찮다. 그냥 택시 타고 가야지. 그런데 택시가 진짜 안 온다. 택시 호출앱을 사용할까 하다가 그냥 좀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호출앱으로 택시 예약해서 기다리고 있으면 꼭 빈 택시가 여러 대 지나가는 경험을 최근 잇따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짜 택시가 안 잡힌다. 어쩌지. 역시 호출앱을 써야 하나……
그 동안에도 학교 가는 버스가 여러 대 버스 정류장을 지나갔다. 이번에도 또 한 대. 어, 그런데 이 버스는 타도 될 것 같다. 이 번호 버스는 전에 탔을 때 차장이 있었던 기억이 났다. 차장이 있는 경우에는 거스름돈을 준다. 버스를 냉큼 올라탔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 차장이 없다! 운전사 옆자리 요금통에 현금을 넣거나 교통카드를 인식시켜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어쩌지. 5위안짜리밖에 없는데. 5위안 그냥 낼까. 기사한테 거슬러달라고 할까.
“你好, 我没有一块钱, 只有5块钱, 怎么办?(니하오, 저 1위안 없고, 5위안짜리만 있는데, 어쩌죠?)”
기사가 날 보고 뭐라고 하는데, 그냥 내지 말라는 얘기를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정말 그런지 100퍼센트 확신은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여차하면 5위안짜리를 낼 기세로 지폐를 손에 든 채로 계속 기사 뒤편에 서 있었다. 이후 학교 앞 버스 정류장에 도착할 때까지 기사가 승객들한테 뭐라고 할 때마다 나는 엄청 긴장했다. 대부분 승객들한테 버스 안쪽으로 들어가달라, 뒷문으로 내려라, 이런 얘기를 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기사가 뒤쪽을 돌아볼 때마다 움찔했다.
학교 앞에 도착해서 내렸다. 결국 공짜로 버스를 타고 왔다. 왔다갔다 하고 택시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서 이미 한참 지각이다. 지금 들어가봤자 1교시는 얼마 안 남은 시간이라 그냥 쉬는 시간에 들어가야겠다 생각하고 강의실 앞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나 말고도 이탈리아 학생 한 명이 나처럼 많이 늦었다. 둘이 같이 쉬는 시간에 들어가자 하고 기다렸다. 그런데 이상하다. 시간이 흘러 다른 강의실 학생들은 밖으로 나왔는데도 우리 강의실만 아직 수업을 계속하는 듯 조용하다. 수업이 아직 안 끝났나? 좀 더 기다려야 하나?
결국은 더 기다릴 수가 없어 문을 살짝 열고 들여다봤다. 모든 학생들이 다 조용히 앉아있다. 교실 안이 좀 어둡다. 둘러보니 영화를 보고 있는 거였다. 2시간 연강 수업에 영화를 보는 것이라, 쉬는 시간에도 끊지 않고 쭉 보고 있었던 것이다. 맥이 빠졌다. 그럼 괜히 밖에서 1교시 끝나기만을 기다린 거잖아. 발걸음을 죽이며 둘이 같이 강의실에 들어가 앉았다. 장이모 감독의 ‘산사나무 아래에서’라는 영화였다.
영화는 보는 둥 마는 둥 상황을 쭉 되돌아보니 쓴웃음이 나왔다. 지갑 놓고 온 건 그렇다 치고, 결국은 5위안이 아까워서 이렇게 된 거잖아. 그냥 처음부터 버스 타고 그냥 5위안 내버렸으면 되는 걸. 버스카드 산다고 왔다 갔다 하며 괜히 시간 보내고 1교시를 날려버렸잖아. 또 뭐하러 구차하게 기사한테 1위안짜리 없다고 얘기했니. 버스는 공짜로 탔으니 돈을 아끼긴 아낀 거라고? 5위안은 우리 돈 1000원이 채 안 되잖아. 나 왜 이런 거니. 아침부터 왜 삽질했니. 혼자 시트콤 한 편 찍은 것 같다. 근데 시트콤이 별 재미도 없다고? 털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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