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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있을 때 전화벨 소리, 기침 소리 등등 공연을 방해하는 객석의
소음과 관련해 기사를 몇 차례 쓴 적이 있다. 그런데 중국서 살며 공연장 가보니 한국 공연장의 객석 분위기 정도면 아주 양호한 편이다. 중국에 살면서 처음으로 공연을 본 게 지난해 12월초였다. 칭다오 대극원 콘서트홀에서 열린 칭다오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보러 갔다. 지난해 여름 중국에 도착한 이후 한 번도 제대로 된 ‘문화생활’을 하지 못해 공연에 굶주려 있던 때였다.
<칭다오 대극원. 오페라극장, 콘서트홀, 다목적 홀을 갖춘 최신식 공연장이다.
사진 출처 홈페이지 http://www.qingdaograndtheatre.com/>
칭다오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칭다오 대극원에서 종종 공연을 여는데, 이 날은 영화음악을 테마로 한 공연이었다. 공연 제목이 ‘실내악폐막음악회’였다. 이 공연 자체는 실내악 공연이 아니었지만, 아마 이전부터 열렸던 실내악 공연 축제의 마지막 공연이었던 것 같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 ‘타이타닉’ ‘미션’ 같은 헐리웃 영화뿐 아니라 중국 영화의 주제음악들도 연주했다.
칭다오 심포니의 연주는 눈에 띄게 틀린다거나 하는 부분은 별로 없었지만, 섬세한 앙상블은 기대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 주제음악을 그렇게 무미건조하게 연주하다니, 공연 초반부터 ‘혹시나’가 ‘역시나’인 것으로 결론 내렸다. 한국에서 봤던 음악회들이 그리워졌다.
그런데 이 날 큰 문제는 연주의 질이 아니라 객석 분위기였다. 공연하기 전에 핸드폰 사용을 자제해 달라는 안내가 있기는 했으나,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 것 같았다. 전화를 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공연 도중에도 전화 벨 소리가 종종 울렸다. 특히 휴대폰 카메라로 사진이나 동영상을 촬영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내가 다니는 학교 교수가 공연장에 다녀왔다며 자기 SNS 계정에 사진을 올려놓은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 사진 역시 공연 도중 찍은 것이었다.
(아래. 칭다오 대극원 콘서트홀. 공연 시작 전에 찍었다.)
객석 곳곳에 자녀를 데리고 온 가족들이 많았는데, 공연 보면서 계속 얘기를 한다거나, 부모가 자녀의 공연 보는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찍어주는 건 애교에 속했다. 우리 가족 뒷줄에 앉은 한 아이는 계속 발로 앞 좌석을
쿵쿵 차댔다. 돌아보면서 불편하다는 신호를 보내면 그때만 잠시 잠잠해질 뿐이었다.
또 한 아이는 객석에서 공을 갖고 놀다가 놓쳐서 공이 앞줄로
날아왔는데, 하필이면 내 옆자리 에 앉은 남편 무릎 위에 떨어졌다. 그
아이 엄마가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공 돌려달라는 손짓을 한다. 어이없고 화가 났지만 공연 도중 싸울
수도 없고, 인상만 좀 쓰고 공을 돌려주고 말았다. 그 아이와
가족들은 이후에도 계속 성가시게 하다가 공연이 끝나기 전 나가버렸다. 공연을 보고 나오는데 입맛이 썼다. 무슨 극한체험을 하고 나온 기분이었다. 이 날의 감상을 이렇게 요약했다.
1. 중국 객석의 휴대폰은 절대 꺼지지 않는다.
2. 아이들이 참 활발하다
3. 서울시향이 그립다.
칭다오
대극원에서 두 번째로 본 공연은 지난해 12월 19일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한중일 예술제였다. 한중일 세 나라가 그 해의 ‘동아시아문화도시’를 정하고 함께 여는 공연이다. 2015년 동아시아 문화도시는 한국의 청주와 일본의 니가타, 중국의 칭다오였고, 칭다오가
2015년 한중일 예술제의 개최지가 되었다. 예술제와 함께 한중일 문화장관 회담도 열려서
제법 비중 있는 행사였다. (2016년에는 한국의 제주시에서 한중일 예술제가 열릴 예정이다.)
나는 한국측 제작진과 안면이 있어 리허설부터 지켜볼 수 있었다. 이 공연은 한중일 세 나라가 각각 30분 가량씩을 맡기로 돼 있었다. 한국은 전통과 현대를 섞어 한국 문화를 잘 보여줄 수 있는 구성으로 프로그램을 짰다. 현대무용과 한국무용, 국악을 아우르는 프로그램이었고, 출연진도 탄탄했다. 일본은 일본색이 진하게 묻어나는 현대무용 한
편을 30분 가량으로 구성해 들고 왔다.
중국의 공연은 성격이 확 달랐다. 한중일 예술제의 ‘정체성’에 대해 중국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궁금해졌다. 아마추어 어린이 무용단, 지역에서 선발한 청소년 연주자들, 합창단이 등장해 마치 학예회 같은 느낌을 주더니 중국 가요, 경극, 서커스, 성악 등등, 잡다하게 프로그램을 늘어놓았다. 게다가 중국 제작진이 이런 국제협력 경험이 별로 없는 듯, 리허설 때부터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계속 터졌다. 옆에서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로 한국팀의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국립창극단의 '디바'였던 소리꾼 정은혜 씨의 춘향가 중 '쑥대머리' 리허설.
중국측 요구로 프로그램이 변경돼 안타깝게도 본 공연에서는 선보이지 못했다>
공연 당일. 객석
분위기는 딱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한중일 세 나라 문화장관이 참석한 자리였고, 방송국의 녹화 카메라도 여러 대 설치됐지만, 객석에서 사진 찍고
전화벨 울리는 건 여전했다. 아니, 오히려 사진 촬영은 이전에
봤던 음악회보다 훨씬 심했다. 전석 초대였던 이 공연 객석에는 출연자 가족이나 친구, 친지가 많은 것 같았다. 내 앞자리 관객은 전화벨이 울리자 태연하게
받아서 1분 이상 통화를 이어갔다.
게다가 이번에는 소란한 객석 분위기뿐 아니라 현란한 무대 조명이
관람을 방해했다. 중국 제작진이 꾸민 무대에서 강한 조명 불빛이 번쩍번쩍 뻗어 나왔다. 무대에서 객석을 향해 쏘아대는 광선 때문에 나는 종종 눈을 제대로 뜰 수도 없었다. 음향도 너무 크고 거칠어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이런 식이라면, 공연을 준비하면서 객석의 관객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셈이다. 그러고 보니 중국은 공연이 아니라 처음부터 방송용 쇼 프로그램을 만든 것 같다. (공연 실황은 칭다오 현지 방송사에서 녹화했으니 아마 방송이 됐을 텐데, 보지는 못했다.)
<중국팀 공연 모습>
한 공연 기획자로부터 중국에서의 경험을 들은 적이 있다. 유명 연주자의 중국 연주에 동행했던 그는 연주 도중에도 관객들이 거리낌없이 사진과 동영상을 찍는 걸 보고 처음엔 무척 놀랐다 한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몇 차례 겪고 나서는 사진 찍으려고 휴대폰을 쳐든 손이 많으면 관객 반응이 좋은 것으로 해석할 정도로 중국 공연장의 ‘촬영 문화’에 익숙해졌다 한다. 하지만 전해 듣는 것과 직접 겪는 것은 다른 법. 실제로 겪고 나니 아무리 공연에 굶주렸다 해도 이런 객석에 또다시 앉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그런데 지난해 말 상하이에서 본 ‘워 호스’ 공연장에서는 전혀 상황이 달랐다. (어떻게 달랐는지는 다음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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