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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중국 공연장에서 본 관람문화에 대해 블로그에 글을 쓴 적이 있다. 국립극장에서 발행하는 월간지에 중국 공연 관람문화에 대해 써달라는 요청을 받고 다시 고쳐썼다. 월간 '미르' 1월호에 실렸다.
중국의 주요 도시에는 ‘대극원’이라 불리는 공연장이 있다. 대개 콘서트홀과 오페라 극장, 다목적 극장을 갖췄으니 마치 한국의 ‘예술의전당’과 같은, 번듯한 복합 문화공간이다. 최근에 문을 연 경우는 외관부터 감탄을 자아내는 최첨단 공연장들이 많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칭다오에도 칭다오 대극원이 있다. 나는 칭다오 대극원 콘서트홀에서 열린 칭다오 심포니의 음악회를 보러 가서 중국의 공연관람 문화를 처음으로 접할 수 있었다.
칭다오 심포니의 연주는 아무래도 썩 높은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날 공연의 가장 큰 문제는 연주의 질이 아니라 객석 분위기였다. 공연하기 전에 핸드폰 사용을 자제해 달라는 안내 방송이 있기는 했으나, 아무도 상관하지 않았다 공연 도중에도 전화벨 소리가 종종 울렸고, 많은 사람들이 휴대폰 카메라로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었다.
객석에는 자녀를 데리고 온 가족들이 많았는데, 공연 보면서 계속 얘기를 한다거나, 부모가 자녀의 공연 보는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촬영하는 건 애교에 속했다. 내 뒤쪽에 앉은 아이는 계속 발로 앞 좌석을 쿵쿵 차댔는데, 뒤를 돌아보면서 불편하다는 신호를 보내면 그 때만 잠시 잠잠해질 뿐이었다.
공연 도중 뒤편에서 갑자기 공이 날아와 내 옆으로 떨어진 일도 있었다. 뒤편에 앉았던 또 다른 아이가 공놀이를 하다가 공을 놓친 것이었다. 객석에서 공이 날아다니다니,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이 아이의 엄마인 듯한 사람이 전혀 미안한 기색 없이 내 어깨를 툭툭 치면서 공을 돌려달라는 손짓을 하는 건 더 놀라웠다. 어이없고 화가 났지만 공연 중인데 싸우기도 곤란하고, 그저 인상이나 좀 쓰고 공을 돌려줄 수밖에.
공연 보고 나오는데 무슨 극한체험을 한 기분이었다. 그 날 공연의 감상을 딱 세 문장으로 요약했다. “중국 관객은 절대 휴대폰을 끄지 않는다. 아이들은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서울시향이 그립다.” 그 후에도 몇 차례 칭다오 대극원에 공연을 보러 갔는데,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객석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공연을 보려면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칭다오 대극원만 가봤다면 중국의 공연관람 문화는 한 마디로 ‘엉망’이라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상하이나 베이징 같은 중국의 다른 대도시를 가니 또 상황이 달랐다. 중국과 영국 두 나라 국립극장이 함께 제작한 연극 ‘워 호스’를 보러 상하이의 대표적 뮤지컬 극장인 상하이 문화광장에 갔을 때였다. 처음에는 칭다오에서 봤던 것처럼 객석 분위기가 어수선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의 준비’를 하고 들어갔다. 그런데 공연이 시작되고 보니 예상과 달랐다. 굉장히 정숙한 분위기라 마음 놓고 무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공연 시작 20분쯤 지났을까, 내 앞쪽 객석에 갑자기 붉은 빛 광선이 나타나 아래 위로 흔들렸다. 깜짝 놀라서 무슨 일인가 보니, 관객 중 누군가가 휴대폰을 꺼내 들었고, 공연장 직원이 이를 저지하기 위해 뒤에서 레이저 포인터로 광선을 ‘발사’한 것이었다. 휴대폰을 사용하려던 관객은 레이저 광선 세례를 받고 휴대폰을 도로 집어넣었다. 관람 태도가 안 좋은 관객에게 레이저로 망신을 준 셈이다. 이후에도 몇 차례 레이저 광선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했다.
정숙한 분위기 조성하는 데 레이저 포인터가 효과적인 건 확실해 보였지만, 어두운 객석에 붉은 빛 광선이 점멸하니 주의가 분산되고 신경이 쓰였다. 뒤편이나 측면에서 광선을 발사하니 그럴 우려는 적지만, 혹시라도 눈에 직접 닿으면 문제가 될 소지도 있다. 상하이 문화광장 공연기획 책임자를 만날 기회가 있어 레이저 포인터 사용에 대해 물었더니, 효과가 좋아서 중국의 다른 공연장에서도 많이 쓰이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상하이 대극원, 베이징에 있는 국가 대극원에서도 레이저 포인터가 사용되는 걸 볼 수 있었다.
나만 레이저 포인터가 신기했던 건 아니었는지 지난해 뉴욕 타임스에서도 중국 공연장의 레이저 포인터에 대한 기사를 쓴 적이 있다. 이 기사에 따르면 맨 처음 레이저 포인터를 사용하기 시작한 공연장은 국가 대극원이다. 국가 대극원은 2007년 베이징 시내 중심가에 문을 연 중국의 대표적인 공연장이지만, 개관 초기, 관객들이 공연 내내 사진을 찍고 통화를 하는 바람에 큰 고민에 빠졌다. 공연장 안내원들이 객석에 가서 휴대폰 사용을 제지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다른 관객들에게도 방해가 되었고, 문제의 관객이 객석 열 중간에 있을 때에는 사실상 접근이 불가능했다. 대극원 측은 그래서 레이저 포인터를 도입하기로 하고, 2008년부터 안내원들에게 사용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클래식 음악회나 연극, 뮤지컬, 오페라 등 서구에서 발전한 공연예술이 중국에서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고, 공연 관객은 젊은 층이 많다. 관객들이 공연관람 예절에 익숙하지 않고, 교육받을 기회도 별로 없었다. 좋은 곳에 가면 휴대폰 카메라로 사진 찍고, 메신저나 전화를 이용해 남들에게도 알리는 게 많은 중국 젊은이들의 일상이다. 그러니 공연장 가서도 마찬가지다.
친분이 있는 한국인 공연 기획자로부터 중국에서의 경험을 들은 기억이 있다. 유명 연주자의 중국 연주에 동행했던 그는 연주 도중에도 관객들이 거리낌없이 사진과 동영상을 찍는 걸 보고 처음엔 무척 놀랐다 한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몇 차례 겪고 나서는 사진 찍으려고 휴대폰을 쳐든 손이 많으면 많을수록 관객 반응이 좋은 것으로 해석할 정도로 중국 공연장의 ‘촬영 문화’에 익숙해졌다며 웃었다. 아는 중국인 교수가 공연을 보고 왔다며 자기 SNS 계정에 사진을 올려놓은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 사진 역시 공연 도중 찍은 것이었다. 사진 촬영이 문제라는 의식이 별로 없는 것 같았다.
피아니스트 랑랑처럼 대중적 인기가 높은 음악가가 공연할 때는 하도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이 많아서, 이를 저지하려는 안내원들의 레이저 발사도 더 잦아진다. 랑랑 공연 때는 과장 조금 섞어서 마치 레이저 쇼를 보는 듯한 광경이 연출된다고 한다. 전화벨소리나 휴대폰 카메라보다 레이저 광선이 더 공연에 방해된다며 싫어하는 예술가들도 있다. 영국의 로열 세익스피어 컴퍼니는 그래서 중국 공연 때 극장측에 레이저 포인터 사용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중국 공연계는 레이저 포인터를 이용하는 게 현재로서는 자국 관객들의 관람 습관에 대응하는 최선의 방책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 같다. 다른 나라에서는 레이저 포인터를 이런 용도로 사용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중국에만 있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상하이나 베이징 같은 대도시에서 관람 문화가 비교적 앞선 것으로 느껴진 데에는 레이저 포인터 덕도 있었던 것이다. 상하이 문화광장 공연기획 책임자는 중국에 공연관람 문화가 정착되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특히 초대권 관객이나 단체 관객이 많은 날은 객석 분위기가 어수선한 경향이 있다고 했는데, 이 점은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은 많은 분야에서 발전이 빠른 나라이니 공연관람 문화가 좀 더 성숙해져 레이저 포인터 없이도 정숙한 객석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는 날이 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역별 편차도 클 것이다. 한국에서도 공연이 많은 서울과 다른 지역 간에 차이가 있는데, 중국은 워낙 큰 나라이니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내가 살고 있는 칭다오는 대도시이지만 문화적으로는 변두리인 셈이니, ‘마음의 준비’ 없이도 공연을 볼 수 있으려면 좀 더 오래 기다려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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