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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유명 관광지에 단체 여행을 가는 경우, 대개 그 곳에서 열리는 공연도 보게 된다. 나 역시 몇 년 전 첫 중국여행에서 항저우(杭州)에 들러 송성가무쇼라는 공연을 보았다. 라스베가스의 오쇼(O show), 파리의 물랑루즈쇼와 함께 세계 3대 쇼로 불린다는 선전문구는 출처를 알 수 없었지만, 공연은 볼거리가 많았다. 항저우의 역사와 전설을 소재로, 무대에서 폭포가 쏟아지는 등 화려한 무대장치와 특수효과에, 출연진이 400명에 이르는 대규모 공연이었다. 3천명 이상을 수용한다는 극장에 빈 자리가 거의 없었다.


중국에서 음악회나 연극, 무용 등 일반적 개념의 극장 공연산업은 사실 그리 성숙했다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중국에 살다 보니 웬만한 관광지마다 여유연출(‘旅游演出)’, 즉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볼거리 위주의 공연들은 무척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송성가무쇼는 이 중에서 비교적 초창기인 1997년에 나온 공연이다. 흔히 송성가무쇼알려져 있지만, 원 공연명은 송청 천고정(宋城 千古情)’이다. 송나라 시대의 문물을 재현해놓은 항저우의 테마파크 송청 전용극장에서 공연되는데 워낙 인기가 좋아 3,200 규모의 1 극장에 이어 4,700 규모의 2 극장도 건립되었다.


입장료가 240~310위안(1위안은 한국 돈으로 170원 정도)이니 한화로 4, 5만원쯤 된다. 성수기에는 하루 9차례까지도 공연해 연간 공연 횟수가 1,300회에 이르고 지금까지 누적 관람객은 6천만 이상이다. 늦은 시각 공연은 늦게까지 관광객들을 붙잡아두는 효과가 커서 야간 쇼핑과 숙박업이 활성화되는 지역 관광의 패턴을 바꿔놓았다. ‘송청 천고정제작사인 송청 연예 2012 12, 공연계 최초로 중국 증시에 상장했으며, ‘산야(山亚) 천고정’, ‘리장(丽江) 천고정’, ‘타이산(泰山) 천고정 중국 전국의 유명 관광지에서 천고정브랜드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관광지 공연 가운데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것이 장이머우(张艺谋) 감독의 인상(印象)시리즈다. 유명 관광지인 구이린(桂林)에서 2003년 개막한 인상 류산지에(印象 刘三姐)’를 시작으로 인상 리장(印象 丽江), 인상 시후(印象 西湖),인상 우룽(印象 武隆)’, ‘인상 따홍파오(印象 大红袍)’, ‘인상 하이난다오(印象 海南岛) 여러 곳에서 열리고 있다. 인상 시리즈는 대개 산수실경연출(山水实景演出)’, 즉 야외에서 대자연을 무대로 펼쳐지는 공연이며, 지역의 역사나 전설, 문화를 소재로 하며, 현지 주민을 배우로 기용한다.   


나는 지난해 윈난
(云南)의 리장(丽江) 여행을 갔다가 인상 리장을 보고 제목 그대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 지역은 차와 말을 거래하던 고대의 무역로 차마고도가 시작되는 곳이다. ‘인상 리장은 차마고도를 오가며 이 지역을 생활터전으로 삼아온 소수민족의 삶과 애환을 보여준다. 공연을 위한 야외 무대는 만년설이 쌓인 해발 5596미터 위룽쉐산(玉龍雪山) 중턱, 해발 3,100미터 지점에 자리잡았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서 펼쳐지는 공연인 셈이다. 눈 덮인 봉우리들이 그대로 배경이 되고, 무대 세트는 험준한 차마고도 산길을 표현했다. 나시(纳西)족을 비롯해 이 지역의 10개 소수민족 농민들이 2년 넘게 연습한 끝에 배우가 되었다. 출연진이 500여 명에 이르고, 말 탄 배우들이 무대 위를 호쾌하게 종횡무진한다. 야간 공연이 없어 다른 공연과는 달리 화려한 조명이나 특수 효과를 사용하지 않지만, 눈 덮인 산맥, 구름과 바람, 태양, 공기까지, 자연을 무대로 활용한 호방한 스케일과 상상력이 좋았다.

   

인상 리장은 아침부터 첫 회를 시작해 하루에도 두 세 차례 공연하는데, 나는 평일 오전 공연이었는데도 객석이 거의 다 찬 것을 보고 놀랐다. 입장료는 190~260위안. 2006년 첫 공연을 시작한 이후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2011년에 관객석을 당초의 1,200석에서 두 배 이상인 2890석으로 늘렸다 한다. ‘인상 리장공연 관람이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가 되면서 관광 수입이 늘어난 것은 물론이고, 현지 주민들의 출연으로 일자리 창출 효과까지 얻으면서 지역 경제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인상 시리즈는 장이머우 감독 외에도 왕차오거(王潮歌), 판위에() 등 다른 연출가 두 명이 함께 참여하고 있어서, ‘철의 삼각창작집단이 만드는 공연으로 불린다. 이 세 사람이 주축이 되어 설립한 인상예술발전유한공사는 인상 시리즈에 이어 우견 핑야오(又见 平遥)’, ‘우견 둔황(又见 敦煌)’ 등의 우견시리즈도 내놓고 있다. ‘우견다시 만나다’, ‘다시 보다라는 뜻으로 해외에 홍보하는 공연명은 앙코르(Encore)’로 쓰는데, 실내 극장에서 펼쳐지는 이른바 정경체험극(情景体验)이다. 일반적인 극장 공연과는 달리, 마치 테마 파크나 박물관처럼 관객들이 극장 안에서 이동하면서 관람하는데, 때로는 관객들이 공연에 직접 참여해 극중 등장인물이 되기도 한다.  


지난해 말, 장이머우 감독이 후난(湖南)성 정부와 합의해 마오쩌둥(毛泽东)의 고향인 사오산(韶山)에서 새로운 공연을 만들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사오산은 홍색 성지’, 즉 중국 공산당의 정신적 근거지로 불리는 곳이다. 후난성은 이 곳을 홍색 관광(중국의 애국주의 문화유산 관광.  중국 혁명가들의 근거지를 둘러보는 것)’의 중심지로 개발하고 있는데, 이 공연을 중요 관광자원으로 삼으려는 것이다. 2018 12 26일 마오쩌둥 탄생 125주년 기념일에 처음 선보일 이 공연에 무려 50억 위안이 투자될 예정이다. 공연 제목은 가장 그리운 사오산(最忆韶山)’. 지난해 항저우 G20 정상회담 기념공연이 가장 그리운 것은 항저우(最忆是杭州)’였으니 가장 그리운(最忆)’ 시리즈가 되는 셈이다.  


 
역사 깊은 도시 시안(西安)에서 본 장한가(长恨歌)’, 시리즈 공연은 아니지만 대표적인 대형 실경공연으로 꼽힌다. 당대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시 장한가를 모티브 삼아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그려낸 이 공연은 양귀비가 목욕했다는 유적지 화칭치(华请池)야외 무대에서 매일 밤 열린다. 무대는 물이 넘실대는 호수가 되어 연인을 태운 배가 미끄러지듯 들어오다가, 어느덧 화려한 궁정으로 바뀌고, 다음 순간 뜨거운 화염을 내뿜는 전쟁터가 되기도 한다. 무대 후면의 산 전체에 조명을 달아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연출하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초대형 LED 스크린에 레이저 쇼, 대형 폭포까지. 눈이 아플 정도로 화려한 조명에 특수 효과가 과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스케일 큰 볼거리라는 점은 확실했다.   


 이런 공연들의 성공사례는 중국 관광업계의 호황을 빼놓고 설명할 수가 없다. 중국 국가여유국 발표에 따르면 2015년 중국 국내 관광객이 연인원 40억 명에 이르고, 관광 수입은 3 4천억 위안으로 중국 GDP 4.9퍼센트를 차지했다. 한화 570조원 정도 되는 엄청난 금액이다. (같은 해 한국정부의 연간 총예산이 386조원 정도였다.) 관광객과 수입 모두 전년 대비 10퍼센트 이상 성장한 숫자다. 외래 관광객은 1 3,400만 명, 관광 수입은 1136억 미국 달러를 기록하며 각각 전년 대비 4.1퍼센트, 7.8퍼센트 성장했다. 국가여유국은 관광산업이 매년 10퍼센트 이상 성장해 2020년에는 한화 1,200조원 규모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관광 공연 시장의 성장세는 더욱 가파르다. 관광 공연 수입은 35억 위안, 관람객은 4,713만명으로 모두 전년 대비 30퍼센트 이상 성장했다. 1980~1990년대에 처음 싹튼 중국의 관광 공연 산업이 이렇게 번창하자, 여기저기서 새 공연들이 우후죽순 무대에 오르고 있다. 나는 구이린 여행 갔을 때도 유명 공연의 아류작인 듯한 공연을 한 편 본 적 있는데, 단체 관광객들을 버스로 실어나르고 있었다. 내가 지금 사는 곳 근처의 리조트에도 공연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관련 중국 보도를 보니 현재 상황을 두고 물고기와 용이 한데 섞여있다(鱼龙混杂)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처음엔 이 많은 대형 공연들이 1년 내내 돌아간다는 게 참 신기했는데, 지금 보니 중국인 관광객들만 해도 충분히 객석이 찰 것 같다. 중국 여행 다녀보면 입장료 부담이 꽤 크다. 문화유산이든 자연유산이든 관광지마다 입구 매표소에서 입장료 내고 케이블카, 리프트, 전기버스 등 이동수단에도 따로 돈을 낸다. 이러다 보면 1인당 300, 한화 5만원을 훌쩍 넘어가기도 한다. 그러니 비싼 공연도 관광지 입장료 내듯 돈 내고 본다. 평소에는 집 근처 공연장 한 번 안 가던 사람도 관광이니까 본다. 정해진 일정 따라가는 단체 관광객이 많으니 공연은 더욱 더 필수 코스가 된다. 공연이 유명해지니 공연 보겠다고 오는 사람도 생기고, 해외 관람객도 늘어나는 중이다.  


몇 년 전 한국의 지방자치단체마다 관광객 유치를 위해 이런 공연 하나 만들어보겠다며 중국에 공연 시찰단을 보내는 게 유행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한국에서도 난타점프같은 넌버벌 퍼포먼스들이 서울을 중심으로 중요한 관광 상품으로 자리잡고 있고, 이벤트성의 야외 공연이 종종 열리고는 있지만, 중국처럼 관광지에서 1년 내내 공연하는 대형 공연의 성공 사례는 전무하다. 그런데 중국 여행을 다니며 입이 떡 벌어지는 대형 공연들을 실제로 보고 나니 시장 규모 자체가 달라서 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이 얼마나 큰 나라이고, 중국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국립극장 발행 월간 '미르' 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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