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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중국은행(Bank of China)'에 계좌를 개설하러 다녀왔다. 여기 온 후로 한국계 은행의 현지법인 은행에서 계좌를 만들어 직불카드를 사용하고 있었는데(중국의 딴 곳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칭다오에서는 신용 카드가 통하는 곳이 거의 없다. 카드가 된다고 하는 곳은 다 직불카드 얘기다), 알리페이 가입을 하려 하니 한국계 은행 계좌는 제휴가 안 돼 있어 중국은행에 계좌를 하나 터야겠다 하던 참이었다.
처음이라 약간 긴장하고 갔는데, 안내 직원에게 开户(카이후. 계좌 개설)라고 얘기하고 나니 '신분증 있냐'고 물어왔고, 신분증 가져왔다고 했더니 그 다음부터는 크게 어려움 없이 진행됐다. 내가 간 지점이 시내 한 복판이라 그런지 입력기가 있어서 신청서를 손으로 쓸 필요도 없었다. 안내 직원을 따라 입력기 앞으로 가서 계좌개설을 위한 서류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외국인이라 그런지 친절하게도 안내 직원이 옆에서 입력을 도와줬다.
이름, 주소, 신분증 번호(외국인은 여권이 필요하다), 직업, 전화번호 등등을 쳐넣었다. '직업'을 학생이라고 했더니 직원이 뭐라뭐라 물어보는데, 잘 안 들리지만 학비는 부모님이 내는 거냐고 묻는 것 같아서 남편이 여기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맨 마지막에 월수입을 적는 난이 있었는데, 내가 얼마라고 써야 하나 망설이니까 안내 직원이 알아서 월수입 난에 '2000위앤(한국 돈 40만원 정도)'를 적어넣어 줬다. 내가 여기서 학교 다니면서 쓰는 돈이 그 정도 되려나? (버스요금이 하루 3~4위앤, 학생 식당 식사가 한 끼에 5~10위앤 정도이니 순수하게 학교 다니면서 쓰는 돈은 얼마 안 될 것 같기는 하다.)
그런데 신청서류를 다 작성하고 출력해서 창구에 갔더니, 창구 직원이 '학생인데 왜 월수입이 있느냐'고 물어본다. '남편이 여기서 일하고 있다'고 했더니 '그래도 학생이면 월수입이 없는 게 맞다'고 한다. 월수입이 내가 밖에서 일해서 벌어들이는 돈을 이르는 거라면, 난 휴직 중이니 수입이 없다고 보는 게 맞기는 하다. 창구 직원이 '2000'이라는 숫자에 줄을 좍 긋고 '0'이라고 고쳐쓰고는 나한테 수정 사항 확인했다는 표시로 사인을 하라고 서류를 다시 줬다.
월수입 0이라고 쓰인 난에 사인을 하는데, 웬지 내키지 않았다. 별 것 아닌 일인데도 자꾸 신경이 쓰였다. 월수입 0이라니. 창구 직원이야 그냥 원칙대로 일을 처리한 거지만, 나는 부당하게 '경제적 무능력자'로 취급 받은 느낌이 들어 뭔가 항변을 하고 싶어졌다. 난 '그냥 학생'이 아니라고 얘기해 주고 싶었다. 나 한국에선 20년 넘게 일했던 사람이라고. 한번도 월수입 0이었던 적이 없었다고. 지금은 그저 잠시 공부하러 온 거라고.
한국서 매달 꼬박꼬박 월급 받던 시절이 그리워졌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여기 와서도 일종의 월급을 받고 있기는 하다. 한국에서는 남편이 월급을 가져다 준 적이 없었고, 각자 관리비와 기타 생활비는 남편이, 교육비는 내가 부담하는 식으로 지출을 나누고 알아서 썼었다. 그런데 중국 와서는 남편 통장과 카드를 내가 받아서 쓰고 있다. 그러고 보니 문득 한 가지 궁금해졌다. 내가 직업을 그냥 '주부'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남편 수입을 적어넣으라고 했으려나.
어쨌든 계좌 개설하면서 카드 발급받고, 인터넷 뱅킹 신청까지 마치고, 모바일 뱅킹은 또 별도로 신청해야 한다고 해서 다시 신청서 쓰고 모바일 뱅킹까지 등록 마치는 데 2시간 가까이 걸렸다. 이제 알리페이 가입만 남았다. 좀 있으면 중국에서 모바일 쇼핑의 신세계를 경험할 수 있게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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