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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토요일, 둘째 학교에서 Key Assignment 발표회가 있었다. 둘째가 그동안 해온 그룹 프로젝트 'Create your own country'의 결과를 반 친구들과 학부모들 앞에서 발표해야 했다. 둘째는 엄청나게 수줍음을 탄다. 전학생이라고 아이들 앞에서 인사해야 하는 게 싫어서 전학을 안 가겠다고 했던 아이다. 한국에서 학교 다닐 때 뭔가 남들 앞에서 발표해야 할 때, 못하겠다고 울어버린 적도 몇 번 있다.

국제 학교에 다니고 있으니 당연히 발표는 영어로 해야 한다. 혼자 발표하는 게 아니라, 그룹에 있는 세 명이 번갈아서 발표해야 하는 것이었다. 혼자라면 혼자 못하고 끝나면 되지만, 셋이 하는 데서 빠지면 그룹의 발표가 완성되지 않는다. 둘째는 목요일 밤부터, 발표하기 싫고 학교에 가기 싫다며 울었다. "엄마는 몰라. 내가 얼마나 힘든지!"
금요일 아침에는 학교 가기 싫다는 아이를 달래고 어르고 하다가, 결국 스쿨버스를 놓쳐 아이를 학교까지 택시로 바래다 줘야 했다. 일단 학교에 가겠다고 나서긴 했으니 최악의 상황은 지나간 셈이었다. 아이는 약간 진정이 되어 택시 안에서 발표 대본을 꺼내들고 읽다 잠이 들었다.

울어서 눈이 퉁퉁 부은 아이를 학교 앞에 내려주는데 걱정이 밀려왔다. 오늘 리허설 때도 못하겠다고 울면 어쩌나. 나는 강의 들으면서도 하루종일 아이 걱정을 했다. 금요일 저녁, 집에 돌아갔더니 아이가 리허설을 무사히 끝마쳤다고 했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이는 금요일 밤에도 계속 연습하다 잠이 들었다. .

토요일, 둘째는 무사히 발표를 마쳤다. 비록 목소리가 작고 긴장한 기색이었지만, 큰 문제 없이 발표했다. 아이가 속한 그룹에서 만든 국가는 'Chicarea'라고 불렸다. 하와이 근처에 있는 가상의 섬나라였다. 그룹 멤버들과 관계 있는 China와 Korea, Canada를 섞어 만든 이름이다.

Chicarea는 화산 폭발로 만들어졌고, 산이 많고, 바다가 아름답고, 1년 내내 날씨가 좋고, 중산층이 많다. 화폐는 '리안'이라고 불리며, 관광업이 발달했고, 세금은 복지 증진에 쓰는 나라다. 다른 그룹의 발표를 보니, 예외 없이 모든 나라들이 화산 폭발로 만들어졌다고 하는 게 재미있었다. 다들 중산층이 많고, 계층 이동이 자유롭고, 여유롭게 산다. 아이들의 희망사항이 반영된 나라들이다.

발표회가 끝난 후 아이는 "다리가 후들거려서 똑바로 서 있기 힘들었다"고 했다. 아이가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걸 아는 선생님은 '은형이가 오늘 큰 일을 해내서 자랑스럽다'고 했다. '은형이의 수줍음은 조금씩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고도 했다.

아이는 출장 가서 발표회에 참석 못 한 아빠에게, 오늘 촬영한 걸 꼭 보여주라 했다. 할머니와 국제전화 하면서도 발표한 얘기를 했다. 앞으로도 아이는 발표하는 걸 두려워하겠지만, 이전만큼은 아닐 것이다. '나는 할 수 없다'는 생각도 예전보다는 덜 할 것이다. 이렇게 아이의 '발표 공포증'도 조금씩 조금씩 사라지겠지. 이것만으로도 의미있는 성취다. 며칠 동안 나도 같이 힘들었지만, 뿌듯해졌다. 그만큼 아이도, 나도, 조금은 더 성장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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