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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중국 칭다오에서 연수 중이다. 그 유명한 ‘양꼬치엔 칭다오’의 도시다. 남편이 이 곳에서 근무하게 되어, 나도 회사 일을 잠시 접고 중국 공부 좀 해보려고 아이들까지 데리고 왔다. 이렇게 중국에 살게 되리라고는 몇 달 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다. 삶은 이렇게 가끔 생각지도 않았던 방향으로 흘러가곤 한다.
중국에 도착한 지 한 달 남짓 지나니 어느 정도 적응은 된 것 같다. 중국어는 완전 초보이고 영어도 잘 통하지 않지만, 한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 집을 얻으니 생활하는 데 큰 불편은 없다. 아이들은 이 곳 국제학교에 보내고 나는 대학원에 등록했다. 처음엔 낯선 곳에서 하루하루 보내는 것 자체가 숙제였는데, 어느 정도 해결이 되니까 슬슬 다른 욕구가 생긴다. 그 중 가장 큰 게 ‘문화 생활’의 욕구다.
칭다오는
인구 900만 정도 되는 대도시이지만, 중국 내에서 베이징이나
상하이 같은 주요도시에는 끼지 못한다. 그래서 그런지 문화 인프라의 수준이 아무래도 아쉽다. ‘칭다오 대극원’이라는, 오페라극장과
음악당을 갖춘 번듯한 공연장이 있기는 하나, 공연이 많지 않다. ‘칭다오
심포니 오케스트라’라는 오케스트라도 활동 중이지만, 공연
일정을 인터넷에서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중국에서 열리는 대표적인 국제 콩쿠르인 ‘칭다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가 있다 해서 귀가 번쩍 뜨였는데, 가장 최근 개최된 게 지난해였다. 3년에 한 번 열리니 다음 콩쿠르는 2017년이다. 내가 있는 동안 보기는 글렀다.
중국의 수도인
베이징은 다르다. 재미있어 보이는 것들은 죄다 베이징에 있다. 셰익스피어
글로브 시어터가 중국에서 ‘햄릿’을 공연하는가 하면, 베이징 ‘국가 대극원’에서는
정명훈이 지휘하고 플라시도 도밍고 등이 출연한 오페라 ‘시몬 보카네그라’가 무대에 올랐다. 화제의 연극 ‘워
호스’는 영-중 합작으로 공연된다. 반 파시즘을 주제로 러시아 미술 작품들을 대거 선보이는 전시회도 흥미롭다.
8월말에 개막한 베이징 국제 도서전도 가보고 싶어졌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중국 작가
‘류츠신’이 ‘Three
Body Problem’이라는 작품으로 사이언스픽션 최고권위상인 휴고상을 아시아 작가로는 처음 수상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문화부에서 취재할 때 지방 거주자들의 푸념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서울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볼 만한 공연이나 전시가 극히 적어 문화 편중 현상이 심각하다는 얘기였다. 문제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체감하지는 못했는데, 중국에 와서 내가
바로 그 ‘지방 거주자’가 되고 보니 답답한 심정을 이제
확실히 알겠다.
한국에서는 집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영화관이 있었고, 버스로 몇 정류장이면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공연장에 닿았고, 조금 더 멀리 가면 예술의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 국립극장 같은 대형
공연장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한국의 영화관이 그립다는 큰 아이는 집 근처에 한국계 극장체인이
들어왔다는 얘기를 듣고 좋아하더니, 중국 영화만 상영한다는 말에 낙담한 눈치다. 한국서는 별 생각 없이 즐겼던 것들이 여기서는 쉽게 누리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그렇지만 위안이 있다면 아이들이 학교에서 예술 활동을 훨씬 다양하게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밴드 수업이 필수인 둘째는 플루트를 배우기 시작했다. 예전에도 플루트를 연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는데, 외국에
와서야 입문하게 된 셈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악기라 스스로 열심히 해서, 간단한 동요 정도는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연극 역시 모든 학생들이
필수로 이수해야 하는 과목이다. 한국에서 예술고등학교를 다녔던 큰 아이는 중국에서 어떻게 특기를 살려야
하나 고민이었는데, 요즘 수업시간에 뮤지컬 ‘위키드’를 배우고 있다. 선택과목인 설치미술 수업에서는 직접 작품을 기획
제작하는 과정을 경험하고, 특별활동 시간에는 기타를 배운다.
나는 중국에 온지 며칠 만에 디지털 피아노를 샀다. 집에서 가까운 야마하 매장을 검색해 찾아가서, 말도 안 통하면서 질러버렸다. 8년 전 영국 연수 시절엔 피아노 없이 살았지만, 아쉬운 대로 집에서
가까운 학교 연습실에 드나들며 피아노를 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반드시
집에 피아노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중국 연수 준비하는 한동안 손 놓고 지냈지만, 다시 한번 피아노와 친해 보려 한다. 아이들의 플루트나 기타 실력이
늘면 함께 연주해봐야겠다. 그러고 보면 칭다오의 빈약한 문화 인프라를 탓하고만 있을 일은 아닌 것 같다. 내 손으로 음악 하는 즐거움을 새로 배우고 있으니.
<클럽발코니 매거진 가을호에 기고한 글. 지난 8월에 쓴 이 글을 끝으로 일단 클럽발코니 연재를 중단하게 되었다. 중국의 공연이나 문화 관련 글을 계속 쓸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직은 중국에 적응하는 게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10년 이상 클럽발코니 필자였던지라 아쉬운 마음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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