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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이야기

고양이 입양하다

soohyun 2015. 9. 6. 00:02

 고양이 입양은 둘째의 소원이었다. 고양이를 키우는 이모 집에 갔다오고 나서는 날마다 노래를 불렀다. 동생 집 고양이를 보니 귀여워서 한 번 키워볼까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둘째는 엄마 때문에 고양이를 못 키운다며 나를 원망하곤 했다. 

 중국에 와서도 둘째는 틈만나면 고양이 타령을 해댔다. 집 근처 광장에서 야시장이 서는데 한 할머니가 아기 고양이 강아지를 데리고 나왔다. 얼마냐고 물어보니 1,500위앤, 우리돈으로 거의 30만원(1위앤은 우리 돈으로 200원 조금 안되는 금액이다)을 불렀다. 둘째는 날마다 그 고양이를 보러 나가자고 했다. 어느 날인가는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며칠째 주인을 찾지 못한 채 남아있는 것을 보고 울먹였다. '주인을 못 찾은 고양이는 키우는 데 돈이 들어서 안락사 시킨대. 쟤도 주인을 못 찾으면 어떻게 해?' 하면서.

 나는 울먹이는 둘째에게, 당장 안락사 시킬 리가 없다, 곧 주인을 찾을 거다, 하고 달랬다. 그리고 당장 고양이를 키울 상황은 아니라는 걸 설득하기 위해 애썼다. 

 "우린 아직 이 곳을 잘 모르고, 중국어도 못하잖아. 너 동물병원이 어디 있는지 알아? 고양이 예방 접종 때도, 아플 때도, 고양이 주인이 말을 못하면 동물병원에 제대로 데려갈 수도 없잖아. 그러니까 당장은 힘들어. 우리부터 적응하고 나서 생각해 보자." 

 
둘째는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 돌아와서는 '동물병원'이나 '예방접종' 같은 말은 중국어로 어떻게 하는지를 열심히 찾아보기 시작했다. 당분간은 조용하겠구나 했다. 그런데 채 며칠 지나기도 전에 고양이 타령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중국에 와서 너무 힘들다는 말로 시작했다.

 "엄마는 내가 얼마나 스트레스 받고 힘들어하는지 모르잖아. 나 여기 학교에서 바보가 된 기분이란 말이야. 난 아직 여기서 친한 친구가 없다고. 외로워. 나도 친구가 필요해. 고양이 친구가."

 안 그래도 아이들이 이 곳 학교에 적응하는데 힘들어하는 것 같아 안쓰럽던 차였는데, 둘째가 이렇게 나오니 더 버틸 재간이 없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하루라도 빨리 고양이를 데려오자 싶어 지난주말 야시장에 나갔다. 그런데 그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오늘만 안 나왔나 싶어 연속해서 며칠을 나가봤는데, 그사이 동물들이 다 주인을 찾았는지 어떻게 됐는지 이 할머니는 계속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수소문해 고양이를 많이 키워 분양한다는 집을 소개받았다. 그런데 연락해보니 이제 고양이들이 늙어서 더이상 분양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시내에 애완동물 가게가 몰려있는 거리가 있으니 그 쪽으로 가보라고 했다. 중국은 한국에서보다 고양이 입양에 돈이 훨씬 많이 든다며, 몇 천 위앤 부르는 집도 있더라고 했다.  

 결국 무작정 펫숍을 찾아가야 하나 하다가, 위챗 그룹채팅에서 알게 된 해양대학교 대학원생 치치에게 도움을 청해봤다. 혹시 고양이 어디서 입양하는지, 돈이 얼마나 드는지 아느냐고. 샨시성 출신의 이 학생은 칭다오 출신 친구에게 물어봐서 알려주겠다고 하더니, 하루만에 아기 고양이 사진들과 함께 '시세'를 보내줬다. 페르시안 고양이가 100위앤 정도고, 다른 고양이는 이보다 적게 든다고 했다. 칭다오 친구가 집 근처 펫숍에서 알아본 것이라고 했다. 

고양이 사진을 보고 흥분한 둘째는 당장 펫숍으로 가자고 헀다. 치치는 자기 친구가 다녀온 펫숍은 내가 사는 곳에서 너무 멀다며, 인터넷을 뒤져 우리 집 근처 펫숍을 알아내 같이 가주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오늘 룸메이트 싱얼과 함께 우리 집 근처로 찾아왔다. 싱얼은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아 한국어도 조금 알 줄 안다고 했다. 두 사람은 중국문학과 언어학 전공으로 석사과정에 새로 입학했다 한다.  

 나와 두 딸, 그리고 치치와 싱얼까지, 다섯 명이 버스를 타고 세 정류장 거리인 펫숍으로 먼저 찾아갔다. 이 숍에는 고양이가 두 마리밖에 없었다. 둘째는 고양이를 보자마자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둘째가 이야기하는 걸 듣더니 주인이 치치에게 우리가 외국인이냐고 물어보는 것 같았다. 입양하는 데 얼마나 드냐고 했더니, 2천위앤(!)을 불렀다. 치치와 싱얼은 놀란 표정으로 '너무 비싸요!'를 외치더니, 다른 곳으로 가자고 했다. 은형이는 왜 가느냐며 미련이 남은 표정이었다. 비싸도 여기서 입양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치치와 셔얼이 단호하게 딴 데로 가자고 했다. 

 가게를 나와 치치와 싱얼이 '대책회의'를 했다. 원래 멀어서 안 가려 했는데 자기 친구가 사진 찍어보내준 그 펫숍으로 가야겠다는 것이다. 시간이 좀 걸려도 괜찮겠느냐고 나에게 물어보더니 전화를 몇 통 해서 그 펫숍의 주소를 알아냈다. 비까지 부슬부슬 내려 우리는 택시를 잡아타고 두 번째 펫숍으로 향했다. 택시 두 대로 나눠타려 했는데, 이 아가씨들이 택시기사와 교섭(!)하더니 5명이 다 한 차에 타도 된다고 했다.

 30분쯤 택시를 타고 칭다오 도심을 벗어나니 애완동물 용품과 관련 가게들이 밀집된 시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사진에서 봤던 그 가게를 찾아갔다. 아까 갔던 펫숍보다는 촌스럽고 어지러워 보이긴 했지만, 과연 아기 고양이가 여러 마리 있었다. 둘째가 좋아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까 갔던 펫숍 고양이보다 더 예쁜 고양이들이 많았다. 둘째는 별로 고민도 않고 첫눈에 마음에 드는 고양이 한 마리를 골랐다. 털이 길지 않은 품종이라 했다. 무슨 품종이라고 얘기를 들었는데, 들어도 모르는 거라서, 금방 잊어버렸다. 2개월 된 수컷 아기 고양이다. 둘째는 고양이를 안고 쓰다듬고 좋아서 야단이 났다. 

 그동안에 이 아가씨들은 가게 주인과'흥정'을 했다. 가게 주인은 80위앤을 불렀으나 60위앤으로 깎았고, 결국은 70위앤으로 합의했다. 그리고 고양이 집으로 쓸 바구니와 이동장, 화장실로 쓸 모래상자, 그리고 털 빗겨줄 솔과 모래삽까지 샀다. 고양이와 물품들을 모두 합쳐서 210위앤을 냈다. (모래와 사료는 이미 둘째가 어제 동네 슈퍼마켓에서 사둔 게 있었다. 모래와 사료만 사오면서도 어찌나 좋아하던지.) 

 동물 병원에 가서 예방주사를 접종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 거리에 있는 병원에 갔더니, 아기 고양이가 어느 정도 새 환경에 적응하고 1주일 정도 지난 뒤에 다시 오란다. 수의사가 병원이 여기만 있는 게 아니라 시내에도 있다며 명함을 줬다. 시내 병원에선 영어도 통한다고 했다. 예방접종에는 80위앤이 든단다. 고양이도 입양하고, 필요한 물품도 마련하고, 동물병원 관련 정보도 알아낸 셈이다. 

 모든 '임무'를 끝마치고 자기 일처럼 기뻐하는 치치와 싱얼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집에 가는 택시에 올라탔다. 둘째 뿐 아니라 큰 아이도 얼마나 좋아하는지, 이동장 안에서 '냐옹냐옹' 울어대는 고양이를 따라서 '냐옹냐옹' 하고 고양이 소리를 냈다. 택시 기사 아저씨가 돌아봐서 내가 '三个猫(싼거마오. 고양이 셋)'라고 하자, 이 아저씨도 끄덕끄덕, '三个猫!' 하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집에 돌아와서 확인해보니 고양이는 양사 '只'를 쓰는 게 더 정확한 용법이다. 그러니까 '고양이 세 마리'는 중국어로 三只猫)

고양이 이름은 둘째가 '도리'로 지었다. 이모 집의 고양이 이름인 '토리'를 따라서 '도리'로 한다고 했다. '도토리 고양이 형제'가 된 셈이다. 도리는 호기심이 많고 애교도 많은 것 같다. 처음엔 약간 긴장하는 기색이더니 곧 집안 구석구석을 쑤시고 신나게 돌아다녔다. 한참을 그러다가 좀전에 보금자리에 들어가 잠이 들었다. 너무 호기심이 왕성하고 활동적인 고양이는 말썽도 많이 피운다는데, 약간 걱정도 되지만, 귀엽기는 정말 귀엽다. 
 
 착하고 친절한 중국 친구들 덕분에 무사히 고양이를 입양했다. 아마 우리끼리 갔으면 최소한 1500위앤은 들었을 거다. 대학원 신입생이니 23살, 나보다 한참 어린 친구들이지만, 사람이 친해지는 데 나이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걸 나는 영국 연수 시절 이미 체감한 적이 있다. 집에 들어와 위챗으로 고양이 사진 보내주고 정말 고맙다고 했더니 '우린 친구잖아요' 하는 답이 돌아왔다. 조만간 고양이 보러 한 번 집에 놀러오라고 해야겠다. 

 아기 고양이 입양해 이른바 '집사'가 되고, 중국 학생들과 친구가 되고, 몇 달 전만 해도 나한테 일어나리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들이다. 사는 게 그러고 보면 참 신기하다. 이러면서 낯선 곳에 정도 붙이고 살게 되는 거겠지.  

*고양이 업어온 펫숍의 명함을 달라 해서 받아왔다. 강아지나 새 같은 다른 애완동물들도 많았다. 이 시장통에는 비슷한 가게들이 몰려있었다. 金자가 세 개 합쳐진 글자 鑫은 '기쁠 흠'자라고 한다. 돈이 불어나니 기쁘다는 뜻이라 상호에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중국 발음으로는 xin(신)이다. 애완동물 가게는 宠物店이라 한다. 宠은 사랑할 총(寵)의 간체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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