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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연수를 결심하고 학교를 알아보기 시작했을 때, 선택의 폭이 그리 넓지 않았다. 남편의 일 때문에 거주 지역이 칭다오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내가 갈 수 있는 학교는 이 지역 내에 있는 것이어야 했다. 칭다오는 인구 900만 정도 되는 대도시이긴 하지만, 베이징 샹하이 등 주요 도시보다는 교육 인프라가 떨어지는 것 같다. 칭다오에서 가장 잘 알려진 대학은 칭다오 대학교와 중국 해양대학교 정도였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칭다오 대학교보다는 중국 해양대학교가 조금 더 국제화한 학교라는 느낌이 들었다. 칭다오 대학교는 영문으로는 자세한 프로그램 내용을 제공하지 않았다. 중국 해양대학교는 영문으로 제공하는 정보가 비교적 다양했고, 홈페이지 구성도 칭다오 대학교보다는 짜임새가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중국 해양대학교가 이 동네에서는 가장 명문이라 했다. 중국 전역에서는 20-30위권 정도 하는 것 같다. 

 열심히 찾다 보니 중국 해양대학교에는 한국학 연구소가 있고 외국인 대상 한국어 교습기관인 세종학당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문화산업 경영학과가 개설되어 있고 관련 연구소가 있는 것도 눈에 띄었다. 이런 연구소에서 방문 연구원 같은 걸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역시 인터넷 검색을 통해 한국학 연구소의 교수가 한국에 다녀갔다는 걸 알게 되었고, 당시 함께 학술회의에 참석했던 국내 대학의 교수에게 문의해 담당 교수의 연락처를 받아 이메일을 보냈다. 문화산업 경영학과 쪽에도 아는 사람이 중간에 다리를 놓아줘 연락을 취했다.

양쪽 다 답이 오기는 했으나, 내가 원하던 답은 아니었다. 한국학 연구소는 연구원 자리가 아예 없다고 했고, 문화산업 경영학과가 소속된 단과대학에서는 강의를 할 수 있으면 연구원으로 채용하겠다는 답이 왔다. 영어 강의의 부담을 무릅쓰고서라도 한번 해보려 했는데, 알고 보니 강사가 필요한 과목이 내 전문 분야와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결국 연구원 자격으로 연수하는 건 무산되고 말았다. 

어학연수 프로그램을 이수해야 하나 하던 차에 중국 해양대학교에 영어로만 가르치는 석사 과정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International Business' 석사 과정과 'China Studies' 석사 과정이었다. 중국 연수를 결심하고 준비한 시간이 굉장히 짧았기 때문에 International Business 석사 과정에 대해 알았을 때는 이미 지원 가능 기간이 거의 끝난 상태였다. 오래 전 일이지만 학부에서 경영학을 전공헀고 영국 연수 때 예술경영 관련 석사 과정을 졸업했기 때문에 굳이 경영학을 또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도 별로 없었다. 자연히 China Studies라는 옵션만 남았다.

China Studies, 그러니까 중국학 석사 과정은 중국의 역사와 문화, 언어, 사회에 대해 전반적으로 배우는 과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국 내국인이 아니라 외국인을 위한 과정이다. 모든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기 때문에 중국어 능력이 없어도 상관없다고 했다. 게다가 중국어를 배우는 수업이 커리큘럼 안에 포함돼 있다. 중국 유학 경험이 있는 지인으로부터 이 코스는 중국내 몇몇 대학교에만 개설돼 있고, 중국 정부의 지원도 받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로서는 중국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고, 중국의 역사와 문화에 흥미도 있었고, 석사 과정을 하면서 중국어도 함께 배울 수 있어 좋을 것 같았다. 지금의 내 상황에는 딱 맞는 코스였다. 

마감일이 겨우 사흘 남은 상태에서 서류 준비를 시작했다. 연구 계획서와 이력서, 최종 학력 증명서, 대학 졸업 증명서, 재직 증명서 등등......졸업 증명서와 학력 증명서는 동사무소에서도 발급받을 수 있어서 시간을 절약했고, 영국 연수 때 한 번 경험해 봤던 게 확실히 도움이 됐다. 온라인 지원도 가능하다고 되어 있었으나 마감일 오후에 접속하니 진행이 되지 않았다. 입학처에 이메일을 보내 온라인 지원이 안되는 사정을 얘기했더니 답이 바로 왔다. (중국 해양대학교의 국제교육센터는 이메일 확인과 답이 번개같이 빠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업무 처리에 허술한 구석도 좀 있었지만, 문의에 대한 답변의 신속성은 정말 훌륭하다.)

입학처에서는 작성한 서류를 모두 이메일로 보내주면 접수시켜 주겠다고 했다. 온라인 지원이 안되니 지원서는 다운받아 손으로 다시 써야 했다. 마침 스캐너가 없어서 급히 휴대폰에 스캐너 앱을 다운로드 받아 사진찍고 하느라 막판에 난리를 쳤다. 마감일은 금요일이었다. 금요일 저녁 6시반에 이메일로 추천서를 제외한 모든 서류를 보냈다. 중국 시간으로는 오후 5시 반이었으니 우여곡절 끝에 기한 내에 접수시킨 셈이다.


영국 연수 때는 대학교 때 지도교수님과 직장 상사한테 추천서를 받았었는데, 이 학교는 추천서 두 통을 모두 대학교수가 써야 한다고 되어있었다. 세월이 흘러 나의 학부 지도교수님은 은퇴하셨고 영국에서 공부한 석사 과정의 지도교수님은 곧바로 연락이 안 되는 분이라 급한 추천서를 부탁드릴 수 없었다. 게다가 직장 상사 추천서는 안된다니,  나와 한 학교 한 직장에 있지 않았지만 나에 대해 잘 알고 추천해 줄 수 있는 교수님 두 분을 찾아야 했다. 결국 오랫동안 알고 지낸 취재원 중 두 분에게 급히 추천서를 부탁드렸다.

주말 지나고 그 다음주 월요일에 따로 봉한 추천서 두 통과 지원 서류 원본들을 페덱스로 보냈다. 학교에 따라 추천인이 추천서를 따로 보내는 걸 요구하기도 하는데, 이 학교는 별다른 얘기가 없어서 그냥 추천서를 봉인된 채로 받아서 다른 서류들과 함께 보냈다. 수요일 오후에 모든 서류가 잘 도착했으며, 심사가 끝나면 연락해 주겠다는 이메일이 왔다. 입학 허가 통보를 받는 데에는 4주 정도 걸렸다. 입학 허가가 나왔으니 관련 서류가 곧 도착할 것이라는 이메일을 받고, 남편의 중국 내 주소로 보내달라고 해놓고 칭다오행 비행기를 탄 게 7월 27일이었다. 아이들 학교 입학을 위한 인터뷰를 잡아놔서 더이상 출국을 미룰 수가 없었다. 

중국에 가겠다고, 그것도 고등학생인 큰 아이까지 전부 같이 가야겠다고 최종 결심한 게 6월 둘째주였다. 출국일이었던 7월 27일까지, 나와 아이들이 다닐 학교 알아보고 수속하고, 회사 업무 인수인계하고, 옷가지와 책 싸서 미리 보내고(남편이 중국에서 빌린 집에 기본적인 가구는 딸려 있다 해서 한국 집은 그냥 놓아두고 당장 필요한 것들만 챙겼다. 막상 와보니 없는 것 투성이였지만), 거의 매일 저녁 송별 모임 참석하느라 어떻게 시간이 지나는지도 몰랐던 것 같다.

중국 온지 이제 한달 조금 넘어간다. 어제 내가 공부할 중국 해양대학교에 처음으로 다녀왔다. 수업료 내고 등록하고 학생증을 만들었다. 그동안 아이들 학교 보내고 집안 일하고 중국어 학원 다니는 일상에 익숙해져 있었는데 이제부터는 전혀 다른 일들에 부딪히게 된다. 아무리 영어로 강의한다 해도 왕초보 중국어로 학교 다니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 걱정스럽다. 그렇다고 영어를 자유자재로 편안하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중국어든 영어든 나한테는 결국 외국어니 항상 긴장된 상태로 다녀야 할 것 같다. 캠퍼스가 집에서 너무 멀어서 그것도 걱정이다. 집에서 버스로 1시간 반이나 걸린다. 택시 타면 30분 거리인데, 그렇다고 날마다 택시를 탈 수는 없으니. 
 
기대되는 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는 점이다. 아직 개강 전이지만, 대면해서든 위챗(카카오톡에 해당하는 중국의 모바일 메신저) 그룹채팅을 통해서든 많은 학생들을 알게 되었다. 중국학 석사 과정에는 올해 아일랜드, 이탈리아, 방글라데시, 한국, 태국 등 다양한 국적 학생들이 등록했다 한다. 중국 해양대학교 석사과정 연구생들의 그룹 채팅에서 알게 된 중국 학생들 몇 명은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한국 문화에 대한 큰 관심과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는 욕구를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이 곳 칭다오 출신도 있지만, 중국의 다양한 지역에서 온 학생들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 학교 생활이 흥미로워질 것 같다.

어쩌다 보니 나는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예상치 못했던 삶의 경로를 밟고 있다. 무슨 팔자인지, 이렇게 중국에까지 와서 석사 과정을 또 공부하게 되리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했다. 솔직히 중국 생활에 좌절하고 짜증이 날 때도 있다. 아이들이 새 학교에 적응하느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게 안쓰럽고, 익숙하고 편했던 한국에서의 생활을 그리워하며 종종 푸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즐겨봐야겠다. 내가 또 언제 이런 경험을 해보겠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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