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중국 이야기

아이를 믿고 기다리자

soohyun 2015. 8. 20. 17:44

고등학생인 큰 딸을 데리고 중국에 왔으니 사실 고민이 많았다. 뮤지컬 배우를 꿈꾸며 예고에 다니고 있었던 터라 처음에는 한국에 남겨두고 올까 생각도 했다. 다니던 학교에 기숙사가 있었기 때문에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두고 오든 데리고 오든 내가 결정할 게 아니라 당사자인 딸이 직접 결정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딸은 한참을 고민하더니 '그래도 가족하고 같이 있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며 중국에 가겠다고 했다. 

막상 데리고 오니 걱정이 많다. '가족은 같이 있어야 한다'는 건 너무나 맞는 얘기이지만, 대학입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나이라, 갈 길이 대략 보이는 한국에서의 학업을 놓고 해외 생활을 선택한다는 것은 모험이기도 했다. 중국에도 예술계고등학교가 있기는 하겠지만, 중국어로 수업하는 중국 학교에 당장 다닐 수는 없는 일이고, 영어로 수업하는 국제 학교에 보내는 것이 그나마 가능한 상황이었다.  

중국은 한국과 학제가 달라서 한 학기가 차이가 난다. 고등학교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왔지만, 여기서 다시 고등학교에 입학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입학한 미국계 국제학교는 한국 학생과 외국 국적 중국 학생의 비율이 70퍼센트 좀 넘고 나머지가 유럽이나 미국, 기타 지역에서 온 학생들이었다. 며칠 전 한국 학
부모 모임이 있어 나가보니 고학년 엄마들의 관심사는 대부분 대학 입시였다. 

이 곳에 오래 살았던 아이들은 재외국민을 위한 3년특례 혹은 12년특례 전형을 목표로 대학 입학을 준비한다. 미국계 학교지만 미국의 대학을 지망하는 아이들은 많지 않고, 대부분 한국의 대학을 목표로 하는 것 같다. 지금까지는 학교에서 한국의 대학 입시에 관해 따로 신경을 써주지는 않았다고 하는데, 올해 처음으로 한국 대학 입시에 대비할 수 있도록 진학 지도교사를 채용했다고 한다.

칭다오에서도 한국 대학입시를 준비하느라 아이들이 학원을 밤늦게까지 다닌다. 입시를 목전에 두고는 아이들이 새벽까지 학원에서 공부하고 와서 학교에서는 조는 일이 다반사였는지, 학교 선생님들은 '도대체 한국 입시가 어떻길래 학교보다 학원이 더 중요하냐'고 놀라워했다 한다. 한국 입시를 잘 아는 진학 지도교사를 채용한 것은, 학교보다 학원에 더 매달리는 게 비교육적인 문제점이 많다고 생각한 학교가 내놓은 절충안이었던 셈이다. 한국 대학입시의 복잡성과 특수성을 인정해 그동안 사교육에서 담당해온 진학지도를 학교 내로 끌어들인 것이다. 

남편의 칭다오 근무 기간은 3년 이상이 될 것으로 보이지만, 나는 그렇게 오래 회사 일을 놓을 수는 없으니, 큰 딸이 아빠와 함께 여기 계속 살면서 고등학교 과정 마치고 재외국민 자격으로 입시를 치르게 할지, 아니면 내가 돌아갈 때 딸을 데리고 가서 한국 고등학교로 복학해 입시를 치르게 할지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여기서 국제 학교를 다니다가 다시 한국에 돌아가서 한국 교과 과정으로 입시를 치르는 것은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재외국민 입시가 수월한 것도 아니다. '3년 특례'는 요즘 재외국민이 하도 많아서 경쟁이 무척 치열하다. 상위권 대학들의 서류 전형에 대비하기 위해 갖춘다는 스펙이 장난이 아니다. 학교 성적이 좋아야 하는 것은 기본 조건이고, TOEFL과 HSK(중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으니까 중국어 시험도 대부분 본다), 게다가 미국 대학 수학능력시험에 해당하는 SAT, 대학 1학년 과정 과목을 미리 이수하는 AP도 대부분 한다. 여기에 자기만의 스토리를 만들 수 있는 특기나 활동이 곁들여지면 금상첨화다. 재외국민 전형으로 한국의 상위권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이라면 웬만한 아이비 리그 대학은 다 갈 수 있는 스펙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서류 전형이 아니라 지필 전형을 하는 대학들도 많다. 그렇다면 여기 학교 수업과는 별도로 시험 공부를 해야 하니 학원 수업에 매달리게 된다. 서류 전형을 준비하는 아이들도 각종 시험에서 고득점을 얻기 위해 대부분 학원을 다닌다. 결국 외국에 나왔지만 학원이 중요한 건 한국에서와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게다가 딸이 지망하는 학과는 재외국민 전형으로 뽑는 인원이 아주아주 적다. 학교마다 조금씩 입시 요강이 달라서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한
국에 남아있었어도 힘들었겠지만, 여기 왔다고 수월해지는 건 하나도 없구나. 딸은 국제학교에 이제 갓 입학해 학교 적응하는 데에만도 바쁜데, 입시를 생각지 않을 수 없으니 머리가 아파온다. 

하도 입시 얘기를 듣다 보니 걱정이 되어 학원 몇 곳에서 상담을 받았다. 영어 공부가 우선이라 한다. 토플 대비 학원에 보내기로 하고 등록 직전까지 갔다가 일단 보류했다. 학교 생활을 잘 하는 게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학교 숙제도 익숙하지 않아 새벽까지 붙들고 있는 판인데 학원 숙제까지 겹치면 안될 것 같았다. 아이도 조금 더 시간을 달라 했다. 결국은  학원에 다녀야 하겠지만, 지금은 학교에 적응하는 게 우선인 것 같다고.    

다행인 건 아이가 아직 적응기간이긴 하지만, 수업을 대체로 좋아한다는 점이다. 중국에서는 예고에서 하던 전공을 살려나가기 어려울 것 같아 걱정했는데, 이 학교는 'Theater'가 필수 이수 과목으로 되어있어 계속 관련 과목을 배울 수는 있게 되었다. 수업 시간에 뮤지컬 위키드를 배우고 있고 학기말에 공연도 할 예정이다. 선택 과목으로 이수하고 있는 'Art Installation' 수업에서는 주요 현대미술 작품에 대해 배우고, 조별로 실제로 미술 작품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과정까지 경험하게 한다. 딸은 마음이 맞는 아이들과 한 조가 되어 '뒷담화(Gossiping)'을 주제로 한 작품을 기획하고 있다. 어떤 모양으로 나올지는 모르겠으나, 관객 참여형으로 화장실에 설치할 예정이라며 재미있어 했다. 

급하게 마음 먹지 말고 아이를 믿고 기다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리 아이의 진로를 한정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이왕 한국을 떠나 이렇게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으로 뛰어들어왔으니, 너무 서두르지 말아야겠다.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