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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학교 갔다가 좀 일찍 돌아오는데, 집 근처 상점가 앞에서 어떤 아줌마가 나를 붙잡고 중국어로 뭐라뭐라 한다. 뭘 물어보나 싶어서 알아들어보려고 귀를 쫑긋 세웠는데, 잘 모르겠다. 그래서 ‘팅부동(들어도 몰라요)!' 하고 지나가려 했더니 다시 나를 붙잡고 '한국인이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했더니 계속 말을 이어가는데, 가만 보니 상점가 2층에 자리잡은 SPA(피부미용실) 영업 사원인 듯하다. '마사지'라는 말에 이어 '공짜'라는 말이 들려오는데, 마사지를 시험 삼아 공짜로 받아보라는 말인 것 같았다. 평소 같으면 뿌리치고 그냥 왔을 텐데, 어제는 '마사지'라는 걸 좀 받아보고 싶은 기분이었는지, 그래, 까짓거 한번 받아보자, 싶어 이 아줌마 따라서 2층 SPA로 갔다. 

제법 시설이 좋은 피부미용실이었는데, 한국인은 하나도 없고 손님도 직원도 모두 중국인 뿐이었다. 오늘은 공짜라는 걸 다시 확인하고 나서 방으로 안내 받았다. 중국 SPA는 어떻게 생겼나 궁금했는데, 한국이랑 크게 다를 바는 없었다. 담당 미용사가 상냥한 어조로 뭐라뭐라 얘기하는데, '피부가 좋다, 예쁘다' 이런 단어들만 좀 들리고 나머지는 뭐라는지 모르겠다. 중국에는 언제 왔냐 해서 석 달 전에 왔다, 여기서 뭐하냐 해서 공부하고 있다', 뭐 이런 얘기들을 하고 있자니 중국어 연습하러 미용실에 온 것 같았다. 한국 손님은 없냐 하니 거의 없다고 한다. 

누우라면 눕고, 고개 들라면 들고, 눈치로 따라가며 마사지를 받고 있는데, 아마도 이 미용실 점장인 듯한 아줌마가 들어왔다. 계속 징루어, 징루어, 하는데,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서 한자로 써달라고 했더니 '중의경락미용 中医经络美容(쫑이징루어메이롱)'이란다. 계속 한자 써서 보여주는 걸 보니, 피부를 보고 간 같은 내장의 상태를 판단하는가 보다. 어디가 좋고 어디가 안 좋고 하는데, 무슨 얘기인지 정확히 모르겠다. 나는 누워있고, 점장 아줌마는 핸드폰에 문자를 써서 보여주고, 이런 대화를 좀 하다가 답답한지 점장 아줌마가 나가서 아까 그 영업사원 아줌마를 불러왔다. 


누워있는 나를 가운데 놓고, 점장과 미용사가 얘기를 하니 영업사원 아줌마는 더듬더듬 하는 한국어로 통역을 한다. '마사지 좋습니까?' 해서 '좋아요'고 했더니, '그러면 앞으로도 또 오겠습니까?' 한다. '얼마예요?' 했더니 
점장 아줌마가 얼른 나가서 가격표를 가져왔다. 좋으면 회원 등록을 하라는 얘기다. 점장이 또 얘기를 이어가는데, 이 미용실이 10주년이라 기념으로 20퍼센트 할인을 해주고 있고, 이 미용실은 여기만 있는 게 아니라 베이징 상하이 등 중국 전역에 있고, 뭐 이런 얘기들이다. 

영업사원 아줌마가 또 한국어로 통역을 하려고 해서 '
알아들었다'고 했더니, '그럼 얼마짜리로 할 거냐'고 점장이 가격표를 눈앞에 들이밀었다. 아 왜 이렇게 급하시나, 나 아직 팩 붙이고 누워있다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중에 얘기하자고 했더니 점장은 나갔는데, 영업사원 아줌마는 계속 방에 남아있었다. 미용사가 계속 통역해달라고 했나 보다. 마사지를 끝내고 미용사가 거울을 보여주면서 '피부에 광채가 난다'고 한다. 영업사원 아줌마가 통역을 하려 해서 '피부에 광채가 난다고요?' 했더니 '맞아요' 하면서 웃는다. 

마사지 끝내고 결국 회원으로 등록했다. 
한국에서도 마사지 받아본 적이 있는데, 한국 가격보다는 저렴하고 미용사도 나쁘지 않다. 여기는 한 번 담당 미용사가 정해지면 계속 전담으로 한단다. 이 동네 다른 집 시세는 잘 모르겠지만, 1회 공짜로 마사지 받았으니 그냥 여기서 하자 싶었다. 돈 내고 나오려 하는데, 영업사원 아줌마가 뭔가 더 할 말이 있는지 아래층까지 나를 따라나왔다. 알고 보니 이 아줌마는 한국 동포란다. 그리고 아까 회원 등록할 때 보니까 내가 나이도 자기랑 같단다. 한국 동포라도 한국어는 못하는데, 앞으로 한국어를 배워야겠다며, 가는 길에 한국어 책을 사야겠다고 했다. 이 아줌마는 이 지점 소속이 아니라 칭다오에 있는 지점들을 돌아다니며 신규 회원 유치하는 일을 하고 있어서 매일 이 지점에 오지는 않는다고 한다. 전화번호 교환하고 헤어졌다. 나중에 위챗(중국의 카톡 같은 메신저 앱)으로 잠깐 얘기를 나눴는데, 정말 가는 길에 한국어 책을 샀다 한다.   


오랜만에 피부 마사지 받고 나니 진짜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몰라도, 확실히 기분 전환은 되었다. 사실 그동안 학교 다니기 시작하면서 바쁘게 지내느라 이런 '사치'는 생각도 못하고 지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아이들 깨우고 밥 먹이고 7시 10분에 버스 태워보내고, 설겆이하고, 집안 청소하고, 전날 빨래한 것 걷고, 새로 빨래해서 널고, 고양이 화장실 치우고 밥 주고, 이 모든 걸 8시 40분까지 후딱 해치우고 학교에 갔다가, 수업하고 돌아오고.... 규칙적으로 살다 보니 익숙해지긴 했는데, 이젠 좀 여유가 필요한 것 같다. 이 김에 中医经络美容(쫑이징루어메이롱. 중의경락미용)이 진짜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고, 생활 중국어 연습도 좀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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