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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드라마가 한국에서 방영될 때 제목은 도통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되기 일쑤다. 중국어를 한국 한자 발음으로 그대로 적어놓기 때문이다.  '완미선생화차부다소저'도 그랬다. 중국어로 어떻게 쓰나 봤더니 完美先生和差不多小姐. '화(和)'는 '~와(and);의 뜻이니, '완미선생과 차부다소저'가 되시겠다. 드라마 오프닝 타이틀에 한국어 부제가 '완벽남과 허당녀'라고 되어있다. '완미선생'은 어렵지 않은데, '차부다소저'는 뭘까. 

​'차부다'는 차부둬(差不多), 즉 차이가 크지 않다, 대략 비슷하다는 뜻이다.  '소저'는 샤오지에, 아가씨라는 뜻이니 '차부둬 아가씨'다. 

중국에서 공부할 떄 독해 시간에 '차부둬 선생전'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중국 근대 지식인 후스가 1924년, 중국인들이 대충 건성으로 일 처리하는 습성을 비판하기 위해 쓴 풍자 소설이다. 

차부둬 선생은 성이 차, 이름이 부둬다. 어릴 때부터 매사에 '그게 그거'라며 입에 차부둬, 차부둬를 달고 산다. 엄마가 흑설탕을 사오라고 했는데 백설탕을 사와서 책망을 듣자 '흑설탕이나 백설탕이나 그게 그거'라고 한다. 수업 시간에 중국의 지명 산시(陝西)와 산시(山西)를 헛갈리고도 '그게 그거'라고 한다. 전당포에서 일할 때는 십(十)자를 써야할 곳에 천(千)자를 써놓고도 주인이 나무라자 '그게 그거'라고 대꾸한다. 하루는 기차를 탈 일이 있었는데 30분에 출발하는 기차를 2분 늦어 놓치고도, 오늘 가나 내일 가나 그게 그거라고 한다. 그리고 30분이나 32분이나 그게 그건데 왜 기차가 가버렸나 갸우뚱한다. 

차부둬 선생이 병에 걸렸다. 가족들이 치료를 위해 의사 왕(汪) 선생을 불러온다는 걸 수의사 왕(王) 선생을 잘못 불러왔다. 차부둬 선생은 '의사나 수의사나 그게 그거-'차부둬'라면서 괜찮다고 한다.  수의사는 평소 동물을 보던 대로 차부둬 선생을 진료하고, 차부둬 선생은 병이 더 위독해져 죽는다. 차부둬 선생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도 '차부둬'였다. 숨을 헐떡거리며 '죽는 거나 사는 거나 그게 그거다'라고 한 것이다. 

'차부둬 선생전'은 독해 수업에서 배웠던 글 중에 가장 기억에 남았다.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이 글을 소리내어 읽도록 시키면서, 중국어에서 성조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한번 강조했다. 산시(陝西)와 산시(山西), 왕(汪) 선생과 왕(王) 선생을 말로 할 때의 차이는 성조밖에 없으니까. 발음이 비슷해 보여도 성조 떄문에 완전히 다른 뜻이 되니까. 

'차부둬 선생'이 이런 사람이니,이 드라마의 여주인공인  '차부둬 아가씨'가 어떤 사람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일 처리가 확실하지 않고 덜렁덜렁 실수를 많이 한다. 반면 남주인공인 '완메이 선생'은 말 그대로 완벽남이다. 로맨스 중드에서 정말 비슷비슷하게 반복되는 구도다. 사실 제목 보고는 별로 끌리지 않았는데, 재미있다는 평이 많아서 보기 시작했다. 

중드 현대극은, 특히 로맨스물은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너무 진부하고, 부자연스럽고, 고정관념 가득한 성역할 묘사가 불편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중드 로코에서 많이 나오는, 똑똑하고 능력 있는 남주인공에, 허당이지만 성격 좋은 여주인공이라는 설정은 여기서도 반복된다. '계약결혼 후연애' 도 요즘 로맨스 중드에서 부쩍 많아진 설정이다.

 이 드라마도 과연 클리셰 범벅이다. 하지만 너무나 다른 남녀 주인공이 자꾸 마주치면서 벌어지는 코믹한 상황에 킥킥 웃으면서 계속 보게 되었다. 캐릭터를 배우들이 생생하게 표현해냈고, 비주얼도, 케미도 좋았다. 두 사람이 어느 새 상대에 익숙해지고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이 설득력 있게 그려졌다. 오히려 완메이 선생이 차부둬 아가씨에 대한 사랑을 확실히 깨닫고 난 후에는 여러 사건이 벌어졌는데도 긴장감이 떨어졌다. (물론 시도때도 없이 폭발하는 달달함을 즐기는 재미가 있기는 했지만.)

사실 '완메이 선생'이 모든 면에서 완벽한 건 아니고, '차부둬 아가씨'도 모든 일에 다 서투르기만 한 건 아니었다. 완메이 선생은 종종  모든 일을 수치와 확률로만 따지며 재수없게 구는 이상한 남자다. 원칙 따지며 깐깐하기 이를 데 없고, 사람들간의 감정적 교류에는 서투른 어린아이나 다름없다. 차부둬 아가씨는 실수 투성이에 덜렁대지만, 밝고 긍정적이고 선량하다. 이들의 관계가 진전될수록 두 사람은 서로 부족했던 점을 메워주며 더욱 성숙한 인간이 되어간다. 

완미선생화차부다소저. 오래만에 끝까지 다 본 중드 현대 로맨스물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t4y4Z6ofPw&t=5s

*네이버 블로그에도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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