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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산하령'에서 온객행이 아상을 따라다니는 조위녕을 처음 만났을 때, 마음에 안 든다는 티를 팍팍 내면서 이렇게 말하고, 조위녕은 이 말을 듣자마자 급히 자리를 뜬다. 

圆润地走远点!

圆润은 Round and Smooth, mellow의 뜻이다. 직역하면 '둥글고 매끄럽게 혹은 부드럽게, 멀리 가주세요'의 뜻이다. 아상도 조위녕이 떠난 후 궁금했는지 온객행에게 그게 무슨 뜻이었냐고 물어본다. 온객행은 '꺼지라'는 말을 점잖게 한 것('滚'的文雅说法)이라고 설명해 준다. 


온객행이 하도 문자 쓰기를 좋아하는 캐릭터라 이것도 무슨 출처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찾아보니 이건 고전이 출처가 아니라, 2009년 상하이의 한 방송 프로그램 진행자가 한 말에서 나온 것이었다. 당시 진행자는 상하이 사투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방청객 중 한 명이 이 프로그램 계정에 '상하이 사투리 좀 쓰지 말라. 나는 상하이 사람들이 싫다' 라는 문자를 보냈다. 그러자 이 진행자가 이렇게 반응한다. 

这位听众,请你以一种团成一个团的姿势,以比较圆润的方式离开这座让你讨厌的城市

이 분은 몸을 둥그렇게 만 자세로, 부드럽게, 당신이 싫어하는 이 도시를 떠나주세요. 

​그러니까 몸을 둥그렇게 웅크리고 데굴데굴 굴러서 떠나라고 한 건데, '꺼지라'는 말을 쓰지는 않았지만, 아주 강력하게 꺼지라는 뜻을 전달한 셈이다. 이 일화가 유명해지면서 이 말이 '꺼져'의 뜻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옛날 옷을 입고 나오는 드라마라고 해서 '고장극'으로 부르지만, '산하령'은 특별한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지 않은 무협 드라마다. 사실 요즘 드라마들은 사극이라 해도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현대어로 이뤄진 경우도 많다. 그래도 온객행이 2009년 방송에서 비롯된 신조어를 쓴 건 좀 웃겼다. '나 아는 거 많아'하고 자랑하더니, 온객행은 과연 고전문학도 현대 신조어도 다 아우르는 인재였다. (그런데 주자서도 온객행한테 꺼지라며 이 말을 한 적이 있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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