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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문호 옌렌커는 지난 2일 한국의 계간지 '대산문화' '국가적 기억상실을 거부한다'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그는 코로나 19로 인한 참상을 반드시 기억해야 하며, 그래야만 사스나 문화대혁명의 비극이 재연되지 않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한의 팡팡 작가가 자신의 기억을 문자로 써내지 않았다면 무엇을 들을 수 있었을까?'라고 질문했다. 

봉쇄 기간 동안 우한 생활을 기록한 작가 팡팡 

'팡팡(方方·65)은 중국 후베이성 작가협회 주석으로 2010년 루쉰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다. 난징 출생이지만 1978년 우한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우한을 기반으로 활동해왔다. 코로나 19 바이러스 감염증이 처음 돌기 시작한 바로 그 곳이다. 

그는 코로나 19 확산으로 봉쇄된 우한의 거주자로서, 매일 일기를 써서 웨이보에 올려왔다. 이 일기는 고립된 우한의 상황을 바깥 세상에 알리는 창구인 동시에, 매일 우한에서 겪는 혼란과 공포, 슬픔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이전에도 기층민들의 신산한 삶을 종종 작품에 담아온 작가에게 이런 '일기'는 예외적인 활동이 아니었다.

  팡팡의 일기는 웨이보에서 수백만 명의 독자들에게 읽히고 공유되면서 많은 공감을 이끌어냈다. 그런데 우한의 참상을 드러내며 후베이성 당국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는 팡팡의 일기는 중국 정부의 '프로파간다'와는 배치되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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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한에서 죽었고 얼마나 많은 가정이 파괴되었는가. 하지만 지금까지 사과하거나 책임지겠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나는 한 작가가 '완전한 승리'라는 문장을 쓰는 걸 봤다. 무슨 얘기인가? 많은 시민들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고, 우한은 이렇게 참담한 상황인데, '승리'가 도대체 어디 있는가?

 팡팡의 웨이보 계정은 급기야 정지되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일찍부터 알렸다가 유언비어 유포자로 몰려 고초를 겪었던 의사 리원량이 바이러스에 감염돼 사망한 즈음이었다. 하지만 팡팡의 일기는 블로그를 통해 계속 업데이트되었다.  2 7일자 일기에서 그는 '이 어두운 밤에 리원량은 한줄기 빛'이라고 썼다.

 "우한이 봉쇄된 지 16일째다. 어제 리원량이 죽었다. 나는 정말 괴롭다. 친구들에게 '오늘밤 모든 우한 사람들이 그를 위해 울고 있다'고 써서 보냈다. 누가 알겠는가. 중국인들 모두가 그를 위해 울고 있을지! 눈물이 흘러 넘쳐 인터넷에도 폭풍이 일었다. 그날 밤 리원량은 사람들의 눈물 속에 또 다른 세계로 건너갔다....."

 2 12일자 일기, 제목은 '우한 사람들의 아픔은 구호를 외치는 것으로 풀리는 게 아니다(人的痛,不是喊喊口就能解的)'. 

 "정부가 공무원들에게 기층 현장으로 내려가라고 요구했다. 이건 좋은 일이다. 나는 많은 공무원들이 소임을 다하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한 친구가 나에게 동영상을 하나 보내줬다: 현장으로 내려왔다는 사람들이 홍기를 높이 내걸었다. 그들은 홍기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전염병 지역이 아니라 여행 명소에 온 사람들 같았다. 사진을 찍은 후에는 몸에 걸쳤던 방호복을 길가의 쓰레기통에 버렸다. 친구가 '그들은 뭐하려는 거냐'고 물었다.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나는 이게 그들의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무슨 일을 하든 형식을 우선하는 습관이 진작에 들었다....."

 팡팡은 자신의 웨이보 계정 정지가 풀리자 2 24일 다시 웨이보로 돌아왔다. 일기를 계속 쓰는 한편, 계정이 정지됐던 기간에 썼던 일기를 함께 올리고 있다.   

 3 7일자 일기는  '다음 번 호루라기를 불 사람(吹哨人)은 누구인가'라는 제목이다. 호루라기를 부는 사람은 '내부 고발자'를 뜻한다. 신형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경고한 리원량에게서 호루라기를 넘겨받아 계속 불어야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작가는 언론의 책임을 묻는다.  '나 같은 일개 백성조차 신형 바이러스 전염력이 무시무시하다는 소문을 듣고 1 18일부터 마스크를 하고 외출했지만, 언론들은 춘제 즈음 떠들썩한 축제 분위기만 전할 뿐 경고 한 마디도 없었다'고 비판한다. 이어 언론인의 사명과 책임을 내팽개친 걸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과연 있는지 모르겠다며, 시민들을 오도한 후베이 양대 언론사 책임자들은 물러나는 게 옳지 않겠느냐고 일갈한다. 

 3 12일 일기를 보면, 팡팡의 일기를 불편하게 느낀 사람들이 여러 방면에서 작가를 공격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인터넷에는 팡팡을 비방하는 글이 돌기 시작했다. 또 작가가 특권을 남용해 경찰의 도움을 받았다는 주장이 갑자기 제기되어 여러 건의 관련 기사가 나왔다고 한다.

 "전염병 때문에 봉쇄된 지역에서 집안에 갇힌 작가가 자신의 느낌을 조금씩 적었다. 칭찬할 것은 칭찬하고, 비판할 것은 비판했다. 이건 정말 자연스러운 일이다.....내가 이해할 수 없는 건 내 일기가 왜 이리 많은 사람들의 악의에 찬 비난과 공격을 받는지다.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누가 이런 모욕을 처음 시작했을까? 나를 모욕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목적은 무엇일까?"

 3 17, 우한 봉쇄 55일째의 일기에서 그는 '분명히 생활은 점차 정상을 회복할 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 복숭아꽃이 핀 것을 볼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봄날의 희망을 암시하는 것 같다.  작가는 타 지역에서 후베이로 와서 봉사했던 의료인들이 떠날 때, 문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우한 사람들이 발코니에서 큰 소리로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안녕히 가세요!'라고 외치는 모습을 동영상에서 봤다며, 눈시울이 젖었다고 썼다.

 재미있는 일화도 소개한다.  스촨에서 의료인들이 후베이로 출발할 때 한 의료인의 남편이 차 아래에서 큰 소리로 "자오잉밍! 평안하게 돌아와! 내가 1년간 집안일 다 책임질게! 하고 외쳤다. 그런데 이제 자오잉밍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으니, 그 남편이 1년간 집안 일을 제대로 하는지 네티즌들이 감독해야 한다는 내용의 동영상이 올라와서 모두 배꼽 빠지게 웃었다는 것이다. 자오잉밍의 집에서 매일 생방송을 하게 되지 않을까, 작가가 덧붙인 말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팡팡의 웨이보 계정 팬은 4백만명이 넘었다. 팡팡은 자신의 글에 격려와 지지를 보내준 독자들이 고립된 우한의 삶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어줬다고 말한다. 상황이 호전되고 있다니 우한의 봉쇄도 풀릴 것이고, 팡팡의 일기가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공허한 구호가 난무하는 중국에서, 팡팡이 작가의 방식으로 '호루라기'를 불고 있다는 것, 진실을 드러내는 글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2020년 3월 네이버 중국판 차이나랩에 기고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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