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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저는 미국에서 일본을 경유해 중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어제 거의 텅 빈 베이징 공항에 도착했어요.”
‘중국의 카라얀’으로 불리는 중국 대표 지휘자 위룽이 해외에 있다가 귀국하며 남긴 메시지는 이렇게 시작했다. 이 메시지는 클래식 음악계 ‘소식통’인 영국 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의 블로그 ‘Slipped Disc’에 실렸다. 노먼 레브레히트가 이 글에 붙인 제목은 ‘China’s top Maestro returns home to sound of silence-중국 최고 지휘자가 침묵에 싸인 집으로 돌아가다.’https://slippedisc.com/2020/02/chinas-top-maestro-returns-to-empty-home/ 이어지는 위룽의 메시지에서는 비장함마저 느껴진다. 마스크를 쓴 지휘자가 텅 빈 공항에서 찍은 사진이 함께 올라왔다.
“많은 분들이 저에게 다정하고 진심 어린 충고를 해주셨지만, 저는 마침내 이 곳으로 돌아왔어요. 가족과 친구, 그리고 수년간 함께 일해온 동료들이 있는 곳이니까요. 바이러스가 온 나라를 휩쓰는 지금, 모든 이들이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는 제 가족과 친구, 음악가들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해야 합니다……. (중략) 저는 음악이 우리 모두를 묶어준다는 것을 믿습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휩쓸고 있는 중국에서는 모든 공연이 취소되었다. 취소된 음악회만 2만건에 이른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노먼 레브레히트는 바쁜 지휘자가 아주 조용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고 코멘트를 남겼다. 방송 드라마나 영화 촬영도 전면 중단되었다. 사실상 중국의 문화계가 모두 ‘휴업 상태’에 들어간 셈이다.
위룽이 음악감독으로 있는 상하이 심포니 역시 예정됐던 공연을 모두 취소했다. 하지만 음악회를 열지 못하는 대신, 음악회 실황 음원을 곡 설명과 함께 구성한 ‘주말 선상(线上) 음악회’ 콘텐츠를 제작해 인터넷에 올리고 있다. ‘선상 음악회’는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랜선 음악회’라 할 수 있겠다. 며칠 전 업데이트된 세 번째 ‘주말 선상 음악회’에는 미국에서 돌아온 위룽 음악감독의 인터뷰 영상이 함께 올라왔다.
위룽 감독은 먼저 바이올리니스트 길 샤함, 피아니스트 장하오천과 함께 한 뉴욕 필하모닉 음력설 음악회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막 돌아왔다는 ‘귀국 보고’를 했다. 그리고 이 ‘특수한 시기’에 음악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 하겠다며, 상하이 심포니가 보유한 공연실황 음원과 동영상을 방출하는 ‘선상 음악회’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 회차에 공개된 음원은 위룽 지휘로 상하이 심포니가 연주한 말러의 교향곡 2번 ‘부활’이었다. ‘부활’의 선곡이 의미 깊게 느껴졌다.
상하이 심포니는 또 각 악기 수석들이 진행하는 인터넷 연속 강의 시리즈도 제작해 내보내는 중이다. 세부적인 강의 일정에 따라 악기 연주법과 주의할 점 등을 설명하는 영상을 차례로 공개하며, 궁금증이 있으면 질문을 받아 정해진 기간 내에 답변을 하겠다고 예고했다. 댓글창을 보니 악기를 공부하는 학생들과 일반인들의 다양한 질문이 올라와 있다. 이 시리즈에 대한 반응이 좋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얼마 전에 썼던 글에서도 소개했지만 중국 문화예술 기관들의 계정은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와 전쟁’을 소재로 한 그림이나 붓글씨, 노래, 공예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과 예술가들의 응원 메시지 영상으로 도배되고 있는 중이다. 처음에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연일 비슷한 풍경이 계속 이어지니 기이한 느낌이 든다. ‘중국 힘내라’ ‘우한 힘내라’ 구호가 나부끼는 가운데, 의료진은 천사요 우한은 영웅의 도시라는 칭송과 미담이 울려 퍼진다. 너무나 직접적이고 획일적인 그 방향이 중국사회의 실상을 드러내는 것 같다. 예술가들이 사회에 공헌하는 방식이 이런 수준의 ‘선전’ 뿐이었던가.
이런 상황이다 보니 상하이 심포니가 요즘 진행하고 있는 선상 음악회와 인터넷 강의 시리즈가, 무슨 거창한 기획은 아니라 해도,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위룽이 중국으로 돌아가면서 ‘제 가족과 친구, 음악가들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고 했던 말처럼, 이들은 계속 무슨 일인가를 하고 있었다. 모든 공연이 취소되고, 공연장은 텅 비고, ‘침묵의 소리’로 가득한 중국에서, 음악가들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상하이 심포니가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2020년 2월, 네이버 중국판 차이나랩에 기고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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