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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랑랑(郎朗)이 큰 관심 속에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결혼식을 올린 게 지난해 6월이다. 신부는 어머니가 한국인인 독일계 피아니스트 지나 앨리스(吉娜爱丽丝). 중국 언론들은 중국이 낳은 ‘월드스타’ 랑랑의 결혼식을 대서특필했고, 랑랑과 결혼한 ‘미모의 재원’ 지나 앨리스의 명성도 함께 높아졌다. 최근에는 랑랑과 지나 부부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신혼 생활을 공개하면서, 두 사람이 등장하는 기사들이 거의 매일 쏟아지고 있다.
두 사람은 텅쉰스핀의 리얼리티 관찰 예능 ‘행복삼중주’의 두 번째 시즌에 출연했다. ‘행복삼중주’는 세 부부의 일상을 촬영해 교차해서 보여주는 형식인데, 한국에도 있는 비슷한 프로그램들을 떠올리게 한다. 지난해 10월 17일 시작된 두 번째 시즌에 랑랑 부부와 함께 한 출연진은 배우 장궈리(张国立)-덩지에(邓婕), 배우 천이한(陈意涵)-감독 쉬푸샹(许富翔) 부부로 모두 연예계 유명 인사다. 이 중 장궈리-덩지에는 결혼생활 30년의 선배고, 천이한 쉬푸샹 부부는 지난 2018년 결혼했다. 지난해 갓 결혼한 랑랑 부부는 신혼 생활의 달콤함을 한껏 보여주는 역할을 맡은 셈이다.
부부의 일상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는 이 프로그램에서 랑랑은 갑자기 출신 지역인 동북지방 사투리를 구사하거나, 아내에게 축구를 가르쳐 주겠다고 나섰다가 보잘것없는 실력을 드러내거나, 아내에게 키스해 달라고 조른다든지 하는 ‘의외의 모습’으로 화제가 되었다. 많은 시청자들은 ‘월드 스타’인 랑랑에게 저런 면모가 있을 줄은 몰랐다며 더욱 친근감을 드러낸다. 예쁘고 애정 표현에 솔직하고, 외국인이지만 뛰어난 중국어 실력을 자랑하는 지나에 대한 호감도도 더 높아졌다. 중국 인터넷에는 지방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랑랑이 어떻게 성공했는지, 랑랑이 어떻게 지나 앨리스와 만나 연애했고, 어떻게 결혼했는지,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랑랑이 결혼 예능에 출연해 매일 중국 매체의 연예 기사에 등장하는 걸 보니, 취재하면서 예전에 들었던 일화가 떠올랐다. 랑랑은 한국을 방문했을 때에도 공연을 여는 것 외에 다양한 활동을 해 왔는데, 특히 대중의 관심이 높은 행사에 출연하는 것을 매우 중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랑랑은 한국의 청룡영화제에서 축하 연주를 하기 위해 자신의 일정을 바꾼 적이 있고, 영화제에서 피아노 독주뿐 아니라 가수 인순이의 노래에 반주를 했다.
또 몇 년 전 내한공연 때는 뉴스뿐 아니라 다른 방송 프로그램에도 출연 일정을 잡아줄 것을 강력히 희망했다 한다. 고심하던 홍보 담당자들은 당시 인기를 끌었던 한 방송국의 가상 결혼 예능 프로그램에 랑랑의 출연이 가능한지 타진했다. 마침 중국 출신 인기 아이돌이 이 프로그램에 출연 중이었기 때문에, 랑랑이 이 아이돌의 어린 시절 친구로 특별출연하면 어떻겠느냐고, 구체적인 내용까지 짜내서 제안했다고 한다. 여러 사정상 성사되지는 못했지만, 그 정도로 랑랑이 대중적 행보를 중시한다는 걸 보여주는 일화다.
랑랑이 이렇게 대중적인 행사나 방송 프로그램에 종종 출연하는 걸 못마땅해 하는 시선도 있다. 보수적인 클래식 음악계의 특성을 생각해 보면, 랑랑의 행보가 좀 튀어 보이는 건 사실이다. 한국에서도 랑랑이 연주할 때 제스쳐가 요란스럽고 쇼맨십이 지나치다는 견해까지 더해, 랑랑에 대한 평가가 박한 경우가 종종 있다.
랑랑의 연주에 대해서는 개인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클래식 음악계는 랑랑 같은 음악가를 필요로 한다. 클래식 음악이 점점 젊은 사람들에게 외면 받는 상황에서, ‘연주가 훌륭하기만 하면 저절로 관객도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만 있다면, 클래식 음악계는 일반 대중과 접점을 찾기 어렵다. 스타는 그 스타가 종사하는 장르에 대한 관심까지도 제고시킨다는 점에서, 랑랑의 존재는 클래식 음악계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런데 손목 부상과 결혼 이후 랑랑의 행보는, 비록 이제 부상이 회복되어 연주를 재개했다고는 하지만, 예전보다 음악 외의 활동을 더 많이 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중국 내 활동이 늘었고 ‘행복삼중주’ 같은 방송 출연이 잦아졌다. 이미 재단과 학교를 설립해 열성을 쏟고 있는 음악교육 사업이든, 중국을 대표하는 문화 아이콘으로 맡게 되는 일이든, 클래식 음악을 대중에게 전파하는 전도사의 미션이든, 랑랑의 다음 행보가 무엇이 될지 궁금해진다.
*2020년 2월 네이버 중국판 차이나랩에 기고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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