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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싱(金星)은 중국에서 ‘진지에(金姐)’로 불리는 유명 방송인이자 무용가다. 거침없는 독설로 이름을 날리며 자신의 이름을 딴 토크쇼도 진행했다. 진싱은 한국에서는 2000년 방영된 KBS 다큐멘터리, 그리고 ‘신의 실수도 나의 꿈을 막지 못했다’는 제목의 자서전을 통해 알려졌다. 조선족 출신 무용수이며 성 전환 수술을 했다는 남다른 사연이 주목받았고,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등 한국 영화에 출연하며 배우로 활동하기도 했다.
1967년 랴오닝성 선양시에서 태어난 진싱은 어머니가 부산, 아버지는 평양 출신인 조선족이다. 어린 시절부터 춤에 소질을 보였던 그는 군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무용을 배우기 시작했다. 1984년 해방군예술학원 무용과를 졸업한 진싱은 이듬해부터 중국의 모든 무용 대회를 휩쓸며 중국 최고의 무용수로 이름을 날렸다. 20살이던 1987년, 중국 최초의 무용 국비 장학생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는 뉴욕에서 6년간 서구 현대무용의 새로운 흐름을 온 몸으로 익혔고, ‘중국 최초의 현대 무용가’로 자신의 작품을 안무하기 시작했다.
1995년, 진싱은 베이징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고 여성이 되었다. 수술 후유증으로 다리가 마비되어 한동안 춤을 추지 못했지만, 이를 극복하고 다시 무대에 서기 시작했다. 1999년에는 상하이 진싱무용단을 창단했다. 2000년부터 세 아이를 공개 입양했고, 2004년에 독일인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진싱은 2014년 상하이 동방위성의 댄스 대결 프로그램 ‘무림대회(舞林大会)’에 심사위원으로 출연해 대중적 인지도를 높였다. 통쾌한 독설이 트레이드마크가 되었고, 2015년 ‘진싱쇼’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중국 연예계의 웬만한 유명 인사들은 다 거쳐간 이 쇼는 동시간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진싱쇼’ 외에도 수많은 방송 프로그램에서 활약했다.
평범하지 않은 개인사와 방송 출연으로 스타가 되었지만, 진싱의 본업은 무용가이다. 진싱은 중국 현대무용을 대표하는 이름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공연이 지난 12월 19일과 20일 상하이 대극원에서 열렸다. 1999년 중국 첫 민간 현대무용단으로 시작해 2000년 상하이 대극원에서 창단 공연을 했던 진싱무용단의 역사를 담은 공연이었다.
18명의 단원으로 구성된 진싱 무용단은 진싱이 1991년 안무한 ‘반몽(半梦 Half Dream)‘, 1998년작 ‘홍여흑(红与黑 Red and Black)’, 2012년작인 ‘농중조(笼中鸟 Cage Birds)’까지, 대표적인 작품들을 선보였다. 이번 공연은 특히 진싱이 초기 대표작 ‘반몽’을 마지막으로 춤추는 무대로 화제가 되었다. 52살의 진싱은 이제 자신이 28년간 춤춰온 ‘반몽’을 젊은 세대에 넘겨줘야 할 때가 되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웨이보에 이렇게 소회를 적었다. “长江后浪推前浪,一代更比一代强(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낸다. 대를 이어갈수록 더 강해진다)” 이 글귀 때문에 이번 공연으로 진싱이 완전히 은퇴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왔지만 그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진싱이 ‘반몽’이라는 한 작품에서 은퇴하는 게 그렇게 큰 일인가 싶은데, 상하이 대극원은 ‘진싱이 마지막 춤추는 ‘반몽’을 본 관객은 역사적 순간을 목격한 것’이라고까지 했다. 그만큼 ‘반몽’은 진싱 개인에게도, 중국 무용계에도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무용페스티벌에서 최우수 안무상을 받은 ‘반몽’은 진싱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처음 가져다 준 작품이다. 이 작품 이후 미국뿐 아니라 유럽 여러 나라에서 활동했다. 진싱은 중국 현대무용가 1세대이니, ‘반몽’은 ‘중국 현대무용’의 한 시대를 연 선구적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평론가와 관객들은 무대 위의 진싱이 여전히 아름다웠다며 찬사를 보냈다.
개인이 무용단을 20년간 운영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진싱 무용단 역시 금융위기 때 파산 직전까지 가는 고비를 겪었고, 개인 재산을 처분해 운영비를 충당하기도 했다. 진싱은 공연 이후 진행된 대담에서,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무용단을 20년 동안 해온 이유가 ‘자신이 더 행복해지고 싶어서’였다고 밝혔다. 단원들이 춤추는 걸 볼 때 행복했다는 것이다.
진싱은 무용단은 상품을 찍어내는 공장이 아니라며, ‘진싱’이라는 이름을 내걸기는 했지만, 단원들이 자신을 닮기보다는 고유의 개성을 찾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단원들을 가르칠 때 ‘나가서 공연하고 진싱과 닮았다는 평을 들으면 실패’라고 해요. 나를 닮을 필요가 없어요. 진싱은 한 사람으로 족해요. 저는 다른 사람들을 보고 싶어요. 적어도 춤추는 태도는 저에게 배울 수 있을 거예요. 진정성, 근면함, 고아함, 이런 건 배울 수 있겠죠. 하지만 진싱의 동작은 배울 필요 없어요. 자기 것을 찾아 내야죠.”(12월 21일 상하이대극원 중국현대무용 대담 중에서. 이하 같음)
진싱은 또 예술의 길을 걷는 후배들에게, 꾸준히 정진할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조급하게 성공을 원하고 이익을 탐하죠. 유명해지려고 갖은 애를 써요. 하지만 무용가는 명성과는 거리가 멀어요. 진싱 역시 춤으로 유명해진 게 아닙니다. 독설로 유명해진 거죠. 무용가의 삶은 평생 힘겨워요. 쉼 없이 계속 자신을 단련해야 하죠.”
나는 2001년 진싱 무용단의 내한공연을 본 적이 있다. ‘반몽’ 역시 당시 ‘반쪽짜리 꿈’이라는 한국어 제목으로 공연되었다. 단원들은 기량에 편차가 있고 약간 촌스럽다는 느낌도 있었는데, 진싱은 단연 빛나는 무용수였고 카리스마가 대단했다. 이후 중국 방송에서 접한 진싱은 무대 위에서 춤추던 그 사람이 맞나 할 정도로 다른 느낌이었다. 이번 진싱 무용단의 공연은 화려한 방송인의 명성에 가려졌던,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해온 ‘예술가 진싱’을 드러내는 무대였을 것 같다. 예술가 진싱을 한국에서도 다시 만날 기회가 있다면 좋겠다.
*2019년 12월 네이버중국판 차이나랩 기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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