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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피아니스트’라 하면, 보통 랑랑, 윤디, 유자 왕 같은 이름들을 떠올린다. 모두 ‘바링허우(80년대생)’로, 중국의 개혁개방과 함께 본격화된 클래식 음악교육의 혜택을 받은 세대다. 그런데 이들보다 훨씬 위 세대로 일찍부터 활동했던 중국인 피아니스트들도 있다. 바흐 연주의 대가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중국인 여성 피아니스트 주샤오메이(朱晓玫)가 대표적이다.

1949년 상하이에서 태어난 주샤오메이는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웠고 8살 때 라디오와 TV에 출연해 연주한 ‘음악신동’이었다. 그는 10살에 베이징 중앙 음악학원에 입학했으나, 문화대혁명이 중국을 휩쓸면서 학업을 중단했다. 클래식 음악은 배척해야 할 서양 부르주아 문화로, 주샤오메이의 집안은 반동으로 낙인 찍혔다.

클래식 음악 악보가 불태워지고, 음악가들이 반혁명분자로 몰려 굴욕을 당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주샤오메이는 허베이 장자코우의 노동수용소로 추방돼 5년 동안 마오쩌둥 사상 재교육을 받았다. 수용소 생활 중에도 그는 줄이 끊어진 피아노로 몰래 연습하며 음악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다.

문화대혁명이 끝난 후 대학입시가 부활했지만, 주샤오메이는 이미 응시 가능 연령을 넘은 상태였다. 할 수 없이 베이징 중앙 음악학원 연수생 신분으로 공부했고, 이후 베이징무용학교에서 피아노 강사로 일했다. 그러다 1979년, 유명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작 스턴의 방중을 계기로 늦깎이 유학이 성사되었다.

미국으로 간 주샤오메이는 청소부, 웨이트리스로 일하며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공부했다. 보스턴 심포니 플루트 수석 단원 집에 있는 피아노로 연습하는 대가로 그 집 청소를 맡아 하기도 했다. 주샤오메이는 1985년 미국 비자가 만료되기 직전에 프랑스에 갈 기회를 얻어, 파리에서 자신의 음악세계를 계속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주샤오메이는 45살이 되었을 때 비로소 파리에서 피아니스트로 데뷔했고, 50살이 되었을 때 첫 음반을 녹음했다. 그는 스카를라티,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슈만의 작품도 연주하지만, 특히 바흐 연주의 대가로 꼽힌다. 주샤오메이에게 바흐의 음악은 절망 속에서도 자신을 지탱해준 기둥이었다.

그는 평균율, 파르티타, 푸가의 기법, 인벤션과 신포니아, 골드베르크 변주곡 등 바흐의 주요 작품들을 모두 녹음했다. 특히 세 번이나 녹음한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그를 대표하는 레퍼토리다. 주샤오메이는 2014년 바흐가 23년간 봉직했고 그의 묘가 있는 독일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에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했다. 그는 이 교회에서 처음으로 연주한 피아니스트였다. 그는 이 연주 실황을 담은 CD와 DVD로 ICMA(International Classical Music Awards)에서 상을 받았다.

미셸 몰라르가 찍은 다큐멘터리 ‘바흐와 중국 여자(Une Chinoise avec Bach)’ 는 주샤오메이의 음악세계를 잘 보여준다. 주샤오메이의 바흐 연주에 깃든 평화로움과 고요함, 균형은 중국의 노자, 장자 철학과 통한다. 그는 ‘바흐(Bach)’가 독일어에서는 ‘물’이라는 뜻이라고 언급하며 이렇게 말한다.

“저는 바흐 작품이 균형을 이루는 방식을 좋아해요. 그의 작품들은 누구에게 어떤 것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내재돼 있는 강렬한 감정들을 청중에게 전달하죠. 그런 면에서 저는 중국인들이 바흐를 잘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Chinadaily 9월 10일 기사에서 인용)

주샤오메이는 65살이던 지난 2014년에야 고국인 중국에서 공연했다. 1979년에 중국을 떠난 지 35년만의 귀국이었다. 이전에는 괴로웠던 기억과 마주하기 싫어 중국 방문을 피해왔다고 한다. 그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중국의 청중을 열광시켰다. 상하이 공연은 일찌감치 매진되어 공연을 한 회 더 추가했는데, 추가한 공연도 10분 안에 표가 동났다. 중국의 클래식 애호가들은 ‘왜 지금까지 이런 대가가 전혀 알려지지 않았을까’ 궁금해했다.

 

이제 70대에 접어든 주샤오메이는 미디어 노출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파리에서 조용하게 구도자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바흐의 음악은 그에게 평생 풀어야 할 숙제와 같다. 그는 요즘 젊은이들을 가르치는 일에도 정성을 쏟고 있다. 올해 9월 다시 중국을 방문한 그는 고향인 상하이와 다른 도시들에서 피아노를 배우는 학생들과 젊은 음악가들을 만나 경험을 공유했다.

주샤오메이의 삶은 ‘The Secret Piano: From Mao’s Labor Camps to Bach’s Goldberg Variations(비밀의 피아노: 마오의 노동수용소에서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까지)’라는 제목의 자전적 에세이에 담겼다. 이 책은 ‘마오와 나의 피아노’라는 제목으로 한국에도 번역 출간돼 있다. 그의 삶도, 음악도,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온다. 절망 속에서도 그를 지탱해줬던 바흐의 음악, 평생을 바쳐 탐구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하는 주샤오메이의 모습을 직접 보고 싶어졌다.

*네이버 중국판 엔터트렌드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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