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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PPL(Product Placement)’로 불리는 간접광고는 요즘 드라마 제작에 필수가 되었다. PPL은 현대극에 주로 나오지만, 요즘은 현대가 배경이 아닌 드라마에도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다. 구한말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 등장한 파리 바게트의 간접광고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드라마에는 파리 바게트 브랜드를 ‘불란서 제빵소’로 살짝 바꾼 빵집과 꽃빙수, 무지개빵 같은 상품이 등장한다.

중국에서는 간접광고를 중간에 끼워 넣었다는 의미로 ‘식입광고(植入广告)’라고 부른다. 중국 드라마에 간접광고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지는 얼마 안 되었지만, 한국 드라마보다 간접광고가 훨씬 많고 규제가 느슨한 것 같다. 그리고 현대극과 고장극(古装剧)을 가리지 않는다. 고장극은 현대극보다 간접광고 할 수 있는 상품이 제한적이지만, 중국 고장극의 간접광고는 상상을 초월한다.

한국에서도 방영돼 인기를 얻은 중국 드라마 ‘장야(将夜)’를 보는 중인데 상당히 간접광고가 많다. 처음 발견한 건 화장품 광고다. ‘장야’의 주인공인 녕결과, 녕결의 가족 같은 하녀 상상이 함께 화장품 가게에 간다. 상상은 피부가 하얘지는 장미화장수가 50냥이라는 얘기에 깜짝 놀라지만, 녕결은 통크게 이 화장품을 사주고 상상은 크게 기뻐한다. 이 가게의 이름은 파란린카(法兰琳卡), 중국의 화장품 브랜드 FRANIC이다. 극중 상상은 피부가 검은 편이고 막 시골에서 상경한 ‘촌뜨기’로 설정된 인물이라, 미백 화장품을 사고 좋아한다는 내용이 그리 어색하지는 않다.

FRANIC 브랜드를 이전에 알지는 못했지만, 찾아보니 이 브랜드는 장야에 간접광고를 하고 나서 매출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이 브랜드는 드라마에 등장한 것처럼 예스러운 디자인으로 화장품을 출시해 인기를 끌었다. 또 주연배우인 천페이위를 광고 모델로도 기용해 젊은 소비자들을 공략했다. 드라마가 해외에서도 인기를 끌면서 중국 밖으로 수출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장야’의 주인공인 녕결과 녕결의 가족 같은 하녀 상상이 함께 ‘비셩쥐(胜居)’에서 음식을 시켜먹는 장면은 정말 황당했다. 현대의 음식 배달이 저 시대(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는 아니지만, 옛날은 옛날이다)에 있었을 리가 있나. 그런데 상상은 심지어 ‘와이마이(卖. 음식배달)’라는 현대의 용어까지 써가면서, 비셩쥐는 음식도 맛있지만 빨리 갖다 줘서 좋다고 말한다. 이들이 먹는 음식은 놀랍게도 피자와 감자튀김이다.

그러고 보니 ‘비셩쥐’는 ‘비셩커(胜客)’, 즉 ‘피자헛’의 중국 브랜드명을 살짝 비튼 이름이었다. 피자헛은 이후에도 계속 등장한다. 녕결이 다니는 서원 학생들이 참가하는 연회가 피자헛에서 열린다. 등장인물들은 각자 피자와 스파게티 등이 차려진 상을 받는다. 녕결이 피자헛의 빨간 모자 로고 모양 노리개를 만지작거리는 장면도 있다.

고장극의 간접광고는 식품업체들이 많이 하는 편이다. 비교적 자연스럽게 극중에 녹일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장야’에는 중국의 유명 식품업체인 량핀푸즈(良品铺子)의 견과류도 등장한다. 서양 음식인 피자와 스파게티에 비하면 이 정도는 양반이다. 이 회사는 ‘장야’ 외에도 상당히 많은 고장극에 간접광고를 했다.

최근 한국에서도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 ‘구주표묘록(九州缥缈录)’에는 량핀푸즈가 매우 큰 비중으로 등장한다. 이 업체는 가상의 대륙인 ‘구주’에도 진출한 셈이다. 대추나 배처럼 고장극에서도 어색하지 않은 재료를 이용한 식품을 노출시키고, 고풍스러운 느낌으로 디자인한 상품을 새로 출시했다. ‘삼생삼세십리도화(三生三世十里桃花)’도 간접광고가 빠지지 않아서 견과류 상품이 등장하는데 예스럽게 쓰인 ‘바오차이웨이(百草味)’라는 브랜드를 분명하게 노출한다.

건강식품이나 제약회사의 광고도 종종 볼 수 있다. ‘여의명비전(女医·明妃传. 한국에서는 ‘여의 담윤현’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었다)’에는 ‘동아아교(东亚阿胶)’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아교는 당나귀 가죽을 끓여 만든 젤라틴으로 중국에서는 한국의 인삼처럼 몸에 좋은 약재로 여겨진다. ‘동아아교’는 유명한 아교 산지인 산둥성 동아현 지명을 딴 브랜드다. 양귀비가 미용을 위해 아교를 복용했다는 얘기가 전해질 정도이니 아교가 등장하는 게 이상하지는 않은데, 직접적으로 효능을 언급하는 대사가 너무 많이 나온다. 동아아교의 간접광고는 청나라 시대를 배경으로 한 ‘후궁견환전(后宫 甄嬛传. 한국에서는 ‘옹정황제의 여인’으로 방영되었다)에도 등장한다.

여의명비전. '동아아교' PPL

 

후궁견환전 한 장면. '동아아교'를 언급한다

 

중국의 유명 생활정보 서비스 사이트 ‘58통청(58同城)’ 광고도 고장극에서 종종 볼 수 있다. 드라마 ‘부요(扶摇)’에서는 58통청의 상호를 노출했을 뿐 아니라 어떤 업무를 하는지도 친절하게 설명한다. 그 시절에 인터넷이 있었을 리 없지만, 소개업을 하거나 생활정보를 제공하는 업체는 있었을 거라는 가정에서 풀어내는 얘기다. ‘청운지(青云志)’고검기담(古剑奇谭)’등에도 58통청이 등장한다.

'부요'에 등장한 58통청

 

밖에도 고장극의 PPL은 끝이 없다. ‘장군재상(将军在上)’이라는 드라마에는 ‘폐하께서 하사하신 섬유유연제’ 간접광고가 나온다. 이 간접광고는 중국에서뿐 아니라 한국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면서 ‘무리한 PPL’의 대표적인 예로 꼽혔다.

'장군재상'의 섬유유연제 '진팡' PPL

 

그런가 하면 중국의 마스크팩 브랜드인 ‘이예즈(一叶子. 영문 브랜드명 One leaf)’가 ‘택천기(择天记)에 내보낸 간접광고를 보면 실소가 나온다. 드라마에는 ‘이예즈’를 예스럽게 번체(一葉子)로 쓴 상호, 그리고 이 브랜드 광고모델이기도 했던 배우 루한이 브랜드의 원래 뜻 그대로 나뭇잎을 덮어쓴 장면이 등장한다. 옛날에 마스크팩이 있었을 리 없으니, 이 정도면 참 창의적인 간접광고라고 해야 할지.

'택천기'의 마스크팩 PPL. 이 정도면 정말...

 

중국 고장극에 하도 광고가 많이 나오니, 중국인이 아닌 나도 드라마를 보다가 ‘혹시 저 장면도 광고인가?’ 할 때가 종종 있다. 드라마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가는 간접광고가 있는가 하면, 너무 튀는 간접광고도 많다. 이제 ‘장야’ 중반부를 보기 시작했는데, 앞으로 또 어떤 간접광고를 만날지도 모르겠다. 너무 생뚱맞아서 흐름을 방해하는 광고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네이버 중국판 엔터트렌드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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