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혁명에 투신하기 위해 학교를 그만뒀고, 중국인 최초로 외국 극장에서 오페라를 지휘했고, 문혁 기간 고초를 겪고 돌아와, 세 차례 암선고를 받고도 90의 나이에 아직 현역인 지휘자. 바로 중국 최초의 여성 지휘자 정샤오잉이다. 나는 흥미로운 인물이라고 생각해 쓴 글인데, 최근 차이나랩에 기고한 글 중에서 가장 안 읽힌 글이 되었다. 아쉽다......

마에스트라는 여성 지휘자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남성 지휘자를 높여 부를 때는 마에스트로를 쓴다. ‘마에스트라는 아직은 많은 이들에게 낯선 단어다여성 지휘자는 그만큼 희귀한 존재라는 방증이기도 하다그래서 며칠 전 중국의 주간지 남방주말이 보도한 중국 최초의 여성지휘자 정샤오잉(郑小瑛) 관련 기사가 더 눈에 띄었는지도 모르겠다.  

정샤오잉 ⓒ소후닷컴

1929년생인 정샤오잉은 중국 국립 오페라 극장의 수석지휘자를 역임했고샤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창립했으며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 전세계에서 공연했다그는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고 90세를 앞둔 고령에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화려한 이력뿐 아니라 강인한 의지와 뜨거운 열정지칠 줄 모르는 도전 정신이 인상적이었다

정샤오잉은 평생 뜨거운 피 끓는 ‘청년’이요 강인한 투사로 살았다.

상하이에서 자란 그는 숙녀의 교양을 쌓게 하려는 부모의 뜻에 따라 6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그는 확실히 음악에 재능이 있었지만부모의 뜻대로 숙녀가 되는 건 거부했다. 1948 5대학에 다니던 그는 국민당 특무요원들이 진보적 학생 세 명을 체포한 것에 항의하는 시위에 참가했다흰색 침대보에 우리 사람들을 돌려달라는 구호를 써서 만든 플래카드를 들고 맨 앞에서 행진했다

1948년 말 정샤오잉은 혁명에 투신하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고 가출을 감행한다어머니에게 크리스마스 이브는 가족과 함께 보내겠다고 약속해 놓고바로 그 날 몰래 우한 한커우로 향하는 화물선을 탄 것이다불과 19살 때였다보름 후 공산당이 점령한 해방구에 안전하게 도착한 그는 어머니에게 가명으로 편지 한 통을 보냈다

사랑하는 어머니우리는 벌써 평안하게 집에 왔어요모두 좋아요걱정 마세요.”

17세의 정샤오잉 ⓒ봉황망

우한과 카이펑의 공연단에서 지휘를 시작한 그는1960년대초 모스크바 국립 음악원 유학생으로 선발돼 오페라 지휘를 배웠다모스크바에서 그를 지도했던 구 소련 지휘자 바인은 어느 날 갑작스럽게 오페라 토스카를 지휘할 수 있겠느냐고 물어봤고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할 수 있다고 했어요. 정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식이었죠.

정샤오잉은 바인에게 오페라 총보(오케스트라와 성악의 모든 파트 악보가 표시된지휘자용 종합 악보) 빌려 자신의 피아노 악보에 베껴 적었다그는 매일 오케스트라 피트 한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바인이 어떻게 지휘하는지 보고 암기하고 따라 했다

드디어 모스크바 국립 오페라극장에서 토스카 막이 올랐다러시아 오케스트라와 가수들을 지휘한 젊은 중국인 지휘자에게 모스크바 관객들은 찬사를 보냈다이렇게 그는 외국에서 오페라를 지휘한 최초의 중국인 지휘자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모스크바 국립 음악원 ⓒ셔터스톡

그는 귀국해 지휘과 여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지휘대 위에서는 온화한 아가씨가 아니라 대사령관이야하고 강조하곤 했다

지휘자는 끈기 있고 강인하고 자신감이 있어야 해요자신의 능력을 의심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받을  자신감이 없다면 바로 겁을 먹게 되거든요.”

1997 처음으로 직장암 선고를 받았을 때도 그는 겁먹지 않았다침착하게 평소처럼 강의하고 지휘하고 토론회에도 참석했다예정된 일을  마치고 나서야 입원했다항암치료를 받느라 머리카락이 빠졌지만 퇴원    가발을 쓰고 오페라 카르멘 지휘했다. 2014년과 2015다른 부위에  암이 발병했다그는 매번 항암치료를 받고 치료가 끝나면 평소와 다름없이 생활했다지칠  모르는 에너지에 주변사람들이 감탄하면 이렇게 말했다

나한테  짓거나 집안  하라 하면 아마 10분도   힘들어 죽겠다  거야그런데 지휘 위에서는 전혀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니까.”

정샤오잉에게도 문화혁명은 깊은 고통과 절망의 시기였다서양 클래식 음악은 금지되었고그는 경극을 공연하는 단체로 보내졌다영원히 오케스트라와 오페라 지휘를 못하게  거라는 두려움에 휩싸였지만그는 계속 절망에만 빠져 있지는 않았다 위기를 중국 전통음악을 공부하는 기회로 삼았다

문화혁명이 끝나면서 정샤오잉은 지휘자로 본업에 복귀했지만위기가 끝난  아니었다문화혁명이 휩쓸고  자리는 황폐한 잿더미 같았다무너진 음악계 토대를 재건하고 중국인들을 다시 공연장으로 불러모아야 했다오랫동안 문화생활이란  해본 적이 없는 중국 관객들은 클래식 음악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는  물론이고관람 예절도 엉망이었다

정샤오잉ⓒ봉황망

정샤오잉은 지휘자는 사회의 음악교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는 오페라 공연을 시작하기 전 20분간의 해설을 직접 하기 시작했다지휘란 무엇인가언제 박수를 치면 좋은가등 기본적인 지식부터 다뤘다안내문을 붙였지만 못 본 사람들이 많을까 봐 그는 극장 입구에서 직접 소리쳐 알렸다허베이에서 공연할 때는 극장 입구에 의자를 놓고 올라가 우렁차게 외쳤다.

여러분! 모두에게 오페라가 뭔지 설명해 드릴께요!

베이징 사범대학에 다녔던 장리라는 학생은 그의 강의를 듣고 나서대담하게도 정샤오잉을 가로막고 우리 학교에도 와서 강연해 주세요’ 하고 졸라댔다그는 버스를 타고 가서 베이징 사범대학에서 두 차례 강연했다장리는 이후 음악평론가가 되었다법학을 공부하던 자오시민이란 학생은 그의 카르멘’ 강의를 듣고 오페라와 교향악에 빠져 전공을 바꿨고 음대 교수가 되었다

정샤오잉의 삶은 끊임없는 도전의 연속이었다. 1989년 그는 베이징에서 중국 최초로 여성들로만 이뤄진 실내악단인 음악을 사랑하는 여성(爱乐女) 오케스트라를 결성한다이 악단은 중국 전역의 학교와 농촌공장과 광산 등을 찾아 다니며 클래식 음악과 중국 음악을 함께 연주했다농촌에서 야외 공연을 하는데비가 내리기 시작했지만 관객이 자리를 뜨지 않아 단원들이 손수건으로 악기를 닦아가며 연주한 적도 있었다

1990년 3월 음악을 사랑하는 여성(爱乐女) 오케스트라는 베이징하이딩극원에서 첫 연주회를 가졌다 ⓒ봉황망

1997년 정샤오잉은 중앙 가극원을 그만두고 베이징에서 푸젠성 샤먼으로 터전을 옮긴다샤먼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창립하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것이다그는 이미 69세였고직장암 수술을 받은 후였다그는 민영악단의 예술감독일  아니라 경영자로 험난한 길을 헤쳐가야 했다오케스트라 창립 이후 얼마 안돼 금융위기가 닥쳤다단원들의 월급도 지급하지 못해 그는 직접 자금을 구하러 사방으로 뛰어다녔다단원들은 그에게 제자이고 자식 같은 존재였다어려움 속에서도 그의 헌신으로 샤먼 필하모닉은 성장을 거듭했다정샤오잉이 재임했던15년간샤먼 필하모닉은 1천회 이상을 공연했고 샤먼의 문화적 아이콘이 되었다.

1998년 샤먼 구랑위 음악당에서의 초연 ⓒ봉황망

정샤오잉은 2017년 9 88 생일 미수 맞았다제자들은 스승을 위해 깜짝 파티를 계획했다귀가한 그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집에 사람들이 가득한  발견했다샤먼 필하모닉의 단원 70  중에 50 명이 왔다모두 악기를 가져왔고 즉석에서 정샤오잉의 지휘로 카발레리나 루스티카나간주곡을 연주했다많은 사람들이 연주하면서 감동에 젖어 눈시울이 붉어졌다

정샤오잉은 온갖 영예를 누렸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선생님으로 기억되기를 원한다. 50 이상 가르치며 수많은 음악가들을 길러냈지만요즘은 아마추어 합창단을 즐겨 지휘하고취미로 음악을 하는 학생들도 지도한다매주 열리는 그의 지휘 강습반에는 저명 음악가부터 아마추어 동호인까지다양한 학생들이 모인다

샤먼에서 매년 열차례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무료로 취미음악교실을 여는 정샤오잉ⓒ소후닷컴


정샤오잉은 예술가에는  종류가 있다고 말한다.  

 종류는 자신의 예술과 명예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종류는 훨씬 많은 사람들이 즐길  있도록예술을 널리 퍼뜨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죠저는 후자를 선택했어요

나는 문화부 기자로 오랫동안 취재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즐길  있도록 예술을 널리 퍼뜨리기 위해 노력하는 예술가들을 점점  좋아하게 되었다.‘지휘대 위에서 죽는다면 가장 낭만적일 이라는 정샤오잉의 지휘를 실제로 보고 싶지만, 아무래도 힘들  같다. 내가 중국에 있을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제야 중국의 마에스트라정샤오잉을 알게  것은 아쉽지만,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다. 

 SBS 김수현 기자
정리 차이나랩 조채원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   2024/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