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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예뻐요 내 마음 가져간 사람. 참 예뻐요. 내 마음 가져간 사람…..”
한국 창작 뮤지컬 ‘빨래’에 나오는 ‘참 예뻐요’라는 노래다. 이
노래를 중국 방송에서 들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우연히 중국인 지인의 위챗 계정에서 방송
동영상을 발견하기 전에는. 후난위시에서 매주 금요일 저녁 8시에
방영하는 ‘셩루런신(声入人心. 노랫소리가 마음을 파고든다는 뜻)’라는 음악 프로그램의 11월 16일 방영분에 한국 창작 뮤지컬 넘버가 등장한 것이다.
중국의 가수인 왕시(王晰), 그리고 비엔나에 유학 중인 성악도 가오양(高杨), 이 두 사람이 함께 ‘참 예뻐요’를 중국어로 번역한 ‘타쩐피아오량(她真漂亮)’을 부른다. 묵직하면서도 부드러운 남성 2중창이 클래식한 분위기로 편곡된 반주와 어우러져 참 듣기 좋다. ‘설마? 빨래의 그 곡 맞나?’ 하는데, 작사 추민주 작곡 민찬홍이라는 자막이 흘러나왔다. 중국 동영상 사이트에 올려진 이 노래 영상은 이미 수많은 중국인들의 찬사를 받고 있었다. 추민주 민찬홍이라는 이름이 한자로 표기되니 한국인이 만든 노래라는 게 드러나지 않는 점이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창작 뮤지컬 ‘빨래’는 서점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나영’과 몽골에서 온 이주노동자 ‘솔롱고’를
중심으로, 서울 달동네 소시민의 일상을 유쾌하면서도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2005년 초연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공연되며 사랑 받는 작품이다. 2016년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초청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지난해와 올해는 중국 배우들이 중국어로 연기하는
라이선스 공연으로 중국 관객들을 만났다.
‘빨래’의 중국 공연
제목은 ‘씨이푸(洗衣服)’. 나는 지난해 여름 베이징에서 라이선스 공연을 관람할 기회가 있었다. 중국어로
번역됐지만 원작의 정서와 분위기가 잘 살아있었고, 사드 갈등 속에 한중 문화교류가 얼어붙은 가운데서도
중국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참 예뻐요’는 나영을 사랑하는
솔롱고의 마음을 아름다운 선율로 표현한 노래다. 당시 ‘참
예뻐요’는 중국어로 불러도 참 예쁜 노래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중국 방송에서도 접하니 더욱 반가울 수밖에.
어떻게 이 곡이 중국 방송에 나오게 되었을까. 구체적인
경로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뮤지컬 프로듀서 왕해소 씨에 의하면, ‘빨래’는 중국 뮤지컬 배우들이 무척 출연하고 싶어하는 공연이라
한다. 라이선스 공연을 앞두고 실시한 오디션에는 많은 중국 배우들이 몰렸다. 그래서 일반인들은 모르더라도, 중국의 뮤지컬이나 음악 관계자 중에는
이 노래 ‘참 예뻐요’가 꽤 알려져 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사드
갈등이 누그러지면서 ‘빨래’뿐 아니라 한국 창작 뮤지컬의
중국 진출 소식이 최근 잇따라 들려오고 있다. 중국의 대표적인 뮤지컬 전용극장으로 꼽히는 상하이문화광장은, 상하이에서 열린 2016 K뮤지컬 로드쇼를 통해 ‘마이 버킷리스트’ 라이선스 계약을 했다. ‘마이 버킷리스트’ 중문판인 ‘워더이위앤칭단(我的遗愿清单)’은
지난해 초연이 좋은 반응을 얻어 꾸준히 재공연되고 있다. K뮤지컬 로드쇼는 예술경영지원센터가 한국 뮤지컬을
아시아권 공연 관계자들에게 알리는 행사인데, 상하이문화광장은 올해 행사는 예술경영센터와 공동주최할 정도로
한국 뮤지컬 소개에 적극적이다.
이런 열기 속에 창작 뮤지컬 ‘라흐마니노프’의 라이선스 공연이 11월 16일
상하이에서 개막해 25일까지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러시아의
작곡가 라흐마니노프와, 교향곡 1번에 대한 혹평으로 절망에
빠져있던 그를 치료한 정신의학자 니콜라이 달의 관계를 그린 2인극이다.
또 한 편의 창작 뮤지컬 ‘랭보’는 12월 상하이 공연을 시작으로 중국 주요도시 투어를 예정하고 있다. ‘랭보’는 시인 베를렌느와 랭보의 친구 들라에의 여정을 통해, 그들의 기억 속 랭보의 이야기를 다루는 뮤지컬이다. 중국 공연 프로듀서
왕해소 씨와 스태프들이 10월 23일 한국 개막 공연 일정에
맞춰 한국을 찾았고, 중국어 버전 공연을 맡을 중국인 배우들도 내한해 연습을 진행한다.
중국 뮤지컬 시장은 아직은 초기 단계로 한국의 10분의 1 정도인 300억원
규모(2016년 조사)에 그친다. 뮤지컬 제작 능력이나 인프라가 약하지만, 베이징이나 상하이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중국이 선호하는 한국 창작 뮤지컬들은 대부분 출연진이 단출한 중, 소극장 작품으로 로열티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다. 또 같은 아시아권
작품으로 정서적 이질감이 적을 뿐 아니라 라이선스 공연 제작을 통해 제작 노하우를 익히고 인적 자원을 길러내는 계기로도 삼을 수 있다.
이렇게 중, 소 규모의
창작 뮤지컬들이 환영 받고 있는 가운데, 대형 창작 뮤지컬에도 중국 자본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에는
중국의 문화 콘텐츠 전문 기업이 100만 달러를 투자했고, 내년에
공연될 ‘벤허’에도 같은 금액을 투자할 예정이다. 두 공연의 제작사인 인터파크 자회사 뉴컨텐츠컴퍼니가 중국 기업과 투자 계약을 맺은 데 따른 것이다. 한국에서 공연되는 대극장 뮤지컬에 중국 자본이 직접 투자한 것은 처음이다.
사실 사드 이전에도, 중국에
직접 진출했던 CJ를 중심으로, 중국 뮤지컬 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지만, 중국 특유의 배타성과 외교적 불안 등 여러 원인이 겹치면서 기대만큼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사드 이후 한국 뮤지컬의 중국 시장 진출은 예전보다 더 다양한 양상으로 진행되는 것 같다. 성장이 정체된 한국 뮤지컬이 중국 시장에서 활로를 찾을 수 있을까. 중국
방송에 등장한 한국 뮤지컬 넘버 ‘참 예뻐요’가 새로운 희망의
신호였으면 좋겠다.
*네이버 중국 차이나랩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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