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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초의 영화관은 어디일까?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의견이 분분한데, 1908년 상하이에 문을 연 홍코우 극장(虹口影戏院)을 꼽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2016년 6월 중국영화가협회는 중국 영화사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열고, ‘현존하는 중국 최초의 상업 영화관’은 칭다오에
있는 옛 ‘독일 해군클럽’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해군클럽은 1907년 9월 영화 상영을 시작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으니 홍코우
극장보다 1년여 앞서는 데다, 현재는 건물이 없어진 홍코우
극장과는 달리, 지금까지 건물 보존상태도 좋다는 말도 덧붙였다.
칭다오 구도심 후베이루 17호, 후베이루와 중산루 교차점에 위치한 옛 ‘해군클럽’ 건물은 독일이 칭다오를 조차지로 지배하고 있을 때 지어졌다. ‘해군클럽’의 아버지는 당시 독일 황제의 동생이었던 하인리히 친왕이다. 1897년 독일이 이 지역을 점령했고, 다음 해 빌헬름 2세가 자신의 동생 하인리히 친왕을
칭다오로 파견했다. 하인리히 친왕은 칭다오가 낙후돼 병사들이 여가를 즐길 곳이 없다는 하소연을 듣고, 문화와 오락, 식음료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해군클럽은 1898년 10월 18일 기공식을 열었지만 자금난 때문에 공사가 진행되지 못하다가, 칭다오를 떠난 하인리히 친왕이 직접 공사대금 일부를
쾌척하는 등 관심을 보이자 1901년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가 다음해인
1902년 5월 10일에 문을 열었다. 지상 2층 지하 1층, 탑루까지 갖추고 노란색 외관에 붉은색 기와가 어우러진 독일식 건축으로, 당시
칭다오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700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극장과 식당, 객실, 브릿지게임과 당구를
즐길 수 있는 오락실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춘 ‘해군 클럽’은
곧 칭다오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독일 해군클럽으로 만들어졌지만 영국 군인들도 이 곳을 즐겨 이용했다. 1898년 영국이 칭다오와 멀지 않은 산둥성의 도시 웨이하이를 점령했고, 웨이하이에
주둔하던 영국 군인들은 휴가를 얻으면 칭다오 해군클럽에 와서 놀다 가곤 했다. 영국과 독일 병사들은
이 곳에서 같이 영화 보고, 술 마시고, 밥 먹고, 떠들며 시간을 보냈다.
해군클럽은 병사들이 여자를 만나는 곳이기도 했다. 당시 독일병사들에게는 성병이 흔한 질병이었는데, 이 때문에 독일
총독부가 성매매에 대한 엄격한 관리에 나섰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성매매 종사자는 경찰국에 등록해야 했고, 기녀들은 매주 토요일 독일인 의사가 하는 병원에서 전염질환이 없는지 검사를 받았고, 검사 결과 기록을 항상 휴대하고 다니도록 했다.
해군클럽 내 영화관의 영화 상영 기록은 가장 이른 것이 1907년 9월 4일이다. 당시 독일어로 발행됐던 <청도신보>에 매일 저녁 7시 반 영화가 상영된다는 소식이 실린 것이다. 1907년부터 1914년까지 이 곳에서 상영된 영화는 수백 편에
이르렀다고 한다. 당시 영화는 모두 흑백에 무성영화였기에 영화를 상영하면서 음악을 함께 연주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해군 제3악대’라는 군 악대가 창설되어 무성영화가 상영될 때마다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연주했다. 이 악대는 독일로 돌아간 후에도 계속 활동해 ‘중국청도해군악대’로 존속되었다.
당시 영화 관람은 ‘고급
문화생활’에 속했다. 표 값도 비쌌는데, 1913년에 입장료가 ‘1멕시코은화’였다. 멕시코은화는 1919년
이전 중국 남부와 중부에서 널리 유통됐는데, 당시 1멕시코은화의
구매력은 쌀 60근, 혹은
6명이 고급 음식점에서 양고기 훠궈를 먹을 수 있는 정도였다 하니, 영화 관람료가 얼마나
비쌌는지 짐작할 수 있다.
청나라 말기, 칭다오의
해군클럽 영화관이 유명해지자 돈 많은 관리와 귀족들도 영화관에 드나들었다. 그런데 청나라 관리들은 깃털이
달린 관모를 쓰고 와서 뒷줄 관객들의 영화 관람에 큰 방해가 되었다. 이 때문에 결국 영화를 볼 때는
모자를 벗어야 한다는 규정이 생겼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해군클럽은 이후 여러 차례 변천을 겪었다. 1914년 1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칭다오를 점령했고, 해군클럽은 일본시민회 본부가 되었다. 중간에 잠시 중국이 칭다오
주권을 돌려받았던 시기가 있었으나 1938년 일본이 칭다오를 2차
점령하면서 이 건물은 일본 극우파 조직인 흑룡회의 사무실이 되었다. 1945년 일본 항복 이후에는 장개석이
칭다오를 접수했고, 이 건물은 미군을 위한 해군클럽으로 사용되었다. 중국
공산당이 대륙을 장악하면서 이 건물의 용도는 또다시 바뀌었다. 1949년 중국 공산당의 청년조직인 공청단 칭다오시위원회가 이 곳에 자리잡았고,
이후 칭다오 시정부 조직의 사무실로 쓰이는 등 원래 용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이 건물이 원래의 용도로 돌아간 것은 지난해의 일이다. 2017년 5월, 대대적인
공사를 거쳐 ‘1907영화클럽(1907光影俱乐部)’이 문을 연 것이다. 1907이라는 숫자를 내세워 1907년부터 영화를 상영한 중국 최초의 상업영화관이라는 ‘역사’를 강조한 복합문화공간이다. 내부에는 예전에 해군클럽이 그랬듯이 칭다오영화박물관과
함께, 맥주 바를 겸한 극장과 독일식 레스토랑, 서점, 카페, 개인 영화관 등 다양한 시설이 자리잡았다.
1907영화클럽은 100여년
전 건축의 특징을 살린 내, 외관과 독특한 분위기 덕분에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 인기를 얻고 있다.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2018영웅본색’이 이 곳에서 일부 촬영되어 화제가 된 바 있다. 영화박물관은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중국 영화사를 일별하고 주요 영화 세트를 재현한 공간을 둘러볼 수 있고, 예전 모습을
살린 극장에서는 맥주와 와인 등을 팔고, 종종 영화 상영이나 악단의 연주가 진행된다. 다양한 크기의 방들로 이뤄진 개인 영화관도 있는데, 독일의 도시 이름을 딴 각 방마다 독특한 인테리어로 꾸며 2~3명의 소그룹에서 10명 이상의 단체까지, 원하는 영화를 골라 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중국인들이 ‘중국의 유럽’으로 부르는 칭다오는 한국에서 가까워 한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관광도시다. 중산루는 독일 조차지 시절 칭다오의 모습이 남아있는 구시가지로, 많은 관광명소들이 중산루 주변에 흩어져 있다. 1907영화클럽은
그러나 아직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데, 중산루에 간다면 100여
년 전 칭다오의 문화 중심지였던 이 곳에 들러봐도 괜찮겠다. 중국 최초의 상업영화관을 품은 독일 해군클럽에서 일본 극우단체 사무실이
됐다가, 다시 미국 해군클럽이 됐다가, 중국 공산당과 시정부
조직의 사무실로 쓰이다가, 지금은 영화박물관이 된 이 곳에서, 중국의 역사를 새롭게 느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네이버 중국 엔터트렌드 코너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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