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예쁜 남자 출연금지 '금낭령'?

‘금한령’이 휩쓸고 지나간 중국 방송계가 최근에는 ‘금낭령(禁娘令)’으로 시끄러웠다. 과연 ‘금낭령’은 뭘까. ‘낭((娘)’이 여자를 뜻하는 말이니, 여자를 금지한다는 뜻인가? 아니다. 여자처럼 예쁜 남자의 출연을 금지한다는 뜻이다. 요즘 중국 인터넷에서는 ‘낭파오(娘炮)’라는 신조어를 종종 볼 수 있는데, ‘낭파오’가 바로 여자처럼 예쁜 남자를 안 좋은 어감으로 부르는 말이다. 즉 금낭령은 ‘낭파오’를 출연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이른바 ‘낭파오’ 연예인들이 등장한 것을 한류의 영향으로 본다. 한국의 ‘꽃미남’ 대중문화 스타들이 중국에서도 큰 인기를 얻으면서 새로 등장한 풍조라는 것이다. 중국에서도 전통적인 ‘남성미’보다는 귀엽고 곱상한 외모로 대중적 인기를 얻는 연예인들이 ‘샤오센러우(小鲜肉. 젊고 잘 생긴 남자)’로 불리며 큰 인기를 얻었고, 남자 연예인들의 화장도 낯설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화장하고 예쁘게 꾸미는 남자는 남자답지 못하다는 얘기에서부터, 예쁜 외모만 신경 쓰고 연기력이나 가창력은 형편 없다며 ‘외모 지상주의’를 비판하는 의견도 있었고,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하기 힘든 ‘낭파오’ 현상이 퇴폐적이고 오락적인 풍조를 부추겨 건강한 사회 분위기를 해친다는 논리까지, 다양한 목소리가 나왔다. 

지난 9월 중국 CCTV가 방영한 ‘개학 제1과’라는 프로그램은 논란에 불을 당겼다. ‘개학 제1과’는매년 9월 1일 중국 교육부와 CCTV가 개학을 맞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만드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안 그래도 올해 이 프로그램은 사교육 업체 광고 방영시간이 너무 길어 집중포화를 맞았는데, 이 프로그램 홍보를 위한 ‘조력단’으로 중국 아이돌 그룹 ‘NINE PERCENT’ 멤버들이 등장한 것도 문제가 되었다. (아래 사진은 NINE PERCENT 멤버인 차이쉬쿤. 출처 바이두백과)

NINE PERCENT는 한국의 ‘프로듀스 101’ 표절논란이 일었던 아이치이의 오디션 프로그램 ‘우상연습생’에서 1위부터 9위까지 차지한 멤버들로 구성된 그룹이다. 유명 배우 판빙빙의 동생 판청청 등이 소속돼 있으며, 한국의 워너원을 따라 했다는 논란에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어리고 곱상한 외모를 자랑하는 NINE PERCENT 멤버들이 등장한 홍보 게시물에 많은 부모들이 흥분했다.  (아래 사진은 '개학제1과' 조력단인 NINE PERCENT의 예쁜 멤버들과 군인 사진을 대조해 올리며, 군인들이 진정한 사나이라고 칭송한 웨이보)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르겠다’ ‘형들이 아니라 누나들 같다’ ‘이런 사람들이 ‘조력단’이라니, ‘낭파오’를 배우라는 말이냐’ 등 불만이 쏟아졌다. 여자처럼 예쁘게 화장한 남자 연예인들을 보고 나약하게 자란 아이들이 국가를 제대로 지킬 수 있겠느냐는 얘기까지 나왔다. 월드컵 스타 음바페는 19살에 국가 영웅이 됐는데, 중국 아이돌은 19살에 국가 낭파오가 됐다며 비아냥거리는 글도 등장했다. 약속이나 한 듯 인민망과 신화망, 봉화망 등 중국의 대표적인 매체들이 낭파오 현상을 비판하는 글을 잇따라 실었다. 비판의 정도와 초점은 조금씩 달랐지만 낭파오 현상이 청소년들의 성장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고, 건전한 사회 풍조를 어지럽힐 수 있다며 우려하는 점에서는 같았다.

 ‘금낭령’이 처음 거론되기 시작한 게 바로 이즈음이다. 연예계 소식을 전하는 한 웨이보 계정에서 ‘특종’이라며 CCTV가 앞으로 ‘낭파오’ 연예인 출연을 금지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에 따르면 ‘낭파오’ 기준을 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결국 앞으로 ‘샤오센러우’ 연예인들은 출연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CCTV의 중추절 특집프로그램인 ‘완회(晚会)’ 출연진이 발표되며 ‘금낭령’의 존재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본래 ‘완회’에 출연하기로 알려졌던 NINE PERCENT가 명단에서 빠진 것이다. 이 밖에도 금낭령 리스트에 EXO 전 멤버였던 루한이 포함되었다는 등 관련 보도가 줄을 이었다.

물론 모든 중국인들이 ‘금낭령’에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화장하는 게 무슨 죄냐’, ‘자기 외모를 어떻게 꾸미는지는 개인의 자유 영역’이며, ‘남자는 이러이러해야 한다, 여자는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얽매이는 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는 목소리도 높았다. 논란이 거세지자 CCTV ‘중추절 완회’의 제작 관련자가 ‘금낭령’ 같은 지침은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지금도 많은 중국인들이 ‘금낭령’을 얘기하고 있다. 중국 인터넷에 올라온 글들을 보면 많은 이들이 판청청의 염색했던 머리가 본래의 검은색으로 돌아온 것도 이 ‘금낭령’과 관련해 해석한다. 샤오센러우의 최근 근황 사진을 올리며 예전에 비해 남자다운 기개가 돋보인다고 격려한다. ‘전통적인 남성미’를 뽐내는 배우들의 사진에는 ‘진정한 중국 사나이’라는 칭찬이 달린다.

최근 중국에서는 무역전쟁에서 촉발된 미국과의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사회 기강을 단속하고 중국 문화의 우수성을 강조하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낭파오’ 현상을 외래문화의 악영향으로 규정하고 이를 경계하려는 움직임 역시 이런 흐름과 궤를 같이 한다. 공식적으로는 확인된 바 없다는 ‘금낭령’이지만, 파장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한 중국 네티즌이 말한 대로, “금낭령이 진짜든 가짜든 상관없다. 이미 효력을 내고 있으니까”.

*네이버 중국 차이나랩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