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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야방 1'에 비해 '랑야방2'는 재미없다는 평가를 많이 받는다. 나 역시 랑야방2가 전편에 비해 긴장감이 떨어지고 느슨한 느낌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랑야방2' 역시 정말 좋아하는 드라마로 꼽는다. 임해와 소평정 커플 때문이다. 정말 랑야방 시리즈는 좋아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아래는 네이버 중국 엔터트렌드 코너에 기고한 글이다.
중국 드라마 ‘랑야방1’에는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들이 많다. 무예에 능하고 씩씩한 여장군 예황군주, 앉아서도 천리를 내다보는
지혜로운 정비, 냉정하고 빈틈없는 현경사 수사관 하동, 망국의
한을 풀기 위해 예왕의 책사가 된 진반약 등, 랑야방의 여성 캐릭터들은 틀에 박힌 청순가련형 여성상을
탈피해 더 매력적이다.
‘랑야방’의 작가
하이옌(海宴)은 ‘바링허우(80后)’, 즉 80년대생 여성 작가다. 드라마 배경인 양나라는 가상의 왕조이지만 위진남북조 시대를 모델로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젊은 여성 작가라서일까, 과연 그 시대에 있었을까 싶은 개성 있는
여성 캐릭터들을 여럿 창조해 냈다. 다만 ‘랑야방’은 주인공 매장소와 정왕의 ‘브로맨스’가 워낙 압도적이라, 상대적으로 남녀간 로맨스의 비중은 크지 않다.
작가 하이옌은 ‘랑야방’의 후세를 다룬 ‘랑야방2:풍기장림’에서는 로맨스 비중을 키웠다. 드라마 전반부의 주요 ‘커플’은 장림왕부 세자인 소평장과 세자비 몽설이다. 몽설은 예황군주가 그랬듯이 무예에 능하고 전장에서 용맹한 장수지만, 남편
소평장 앞에서는 더없이 사랑스러운 아내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무예를 익혔던 소평장과 몽설(아래 사진)은 서로를
믿고 아껴주는 훈훈한 부부애를 보여준다.
또 다른 커플은 소평정과 임해다. 사실 이 두 사람이 사랑을 이뤄가는 과정이 ‘풍기장림’의 큰 축이 된다. 소평정은 형 소평장과 아버지 장림왕의 죽음 이후
‘풍기장림’의 후반부를 오롯이 감당하는 주인공이다. 임해는 유명한 의원인 ‘제풍당’ 당주의
수제자이다. 원래 소평정의 아버지 장림왕과 임해의 아버지는 의형제였고,
자식들이 크면 결혼시키기로 언약한 사이다. 하지만 소평정과 임해가 부모 대에서 혼약을 맺은
관계라는 사실은 임해만 알고 있다.
소평정과 임해의 첫 만남은 전혀 낭만적이지 않다. 임해는 소평정의 형인 소평장이 전장에서 입은 큰 상처를 치료하러 왔다가 소평정을 만난다. 소평정은 형을 치료 중인 임해를 보고, ‘이렇게 젊은 여자가 제대로
치료할 수 있겠냐’며 불신을 드러낸다. 임해는 단호한 어조로
치료를 방해하지 말라며 소평정을 밖으로 내보낸다. 소평정은 소평장이 회복되기 시작하자 자신이 무례했다고
임해에게 사과하지만, 임해는 계속 쌀쌀맞게 대한다.
두 사람은 계속 티격태격하면서도 우여곡절을 함께 겪으며 점점
가까워진다. 임해와 소평정은 동갑이지만, 소평정이 무슨 일만
생기면 임해를 찾아가 투정하고 고민을 털어놓고 하는 걸 보면 누나와 동생 사이 같기도 하다. 소평정은
때때로 장난스럽게라도 호감을 표시하지만 임해는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소평정이 치명적인
독에 중독돼 생사의 갈림길에 서자, 그를 위해 대신 죽겠다는 각오까지 할 정도로 깊이 사랑하게 된다.
임해는 그러나 사랑에만 매달려 사는 여자가 아니다. 지극히 독립적이고 진취적이다. 임해는 형소평장의 죽음 이후 소평정이
괴로워하며 자신을 멀리하자, 담담하게 그를 떠난다. 신화
속 명의 신농씨처럼 되고 싶은 꿈을 갖고 혈혈단신 약초 채집 여행에 나선다. 드라마 후반부, 소평정은 랑야각에서 다시 임해를 만나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한다. 소평정은
‘너의 약초 채집 여행에 나도 함께 가고 싶다’며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고, 두 사람은 드디어 결혼을 약속한다.
그런데 소평정은 양나라 수도 금릉에서 일어난 반란 소식을 듣고
이를 평정하기 위해 하산할 결심을 한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여기서 임해가 ‘걱정하지 말고 잘 다녀와. 내가 기다리고 있을게’라고 하는 게 모범 답안일 것이다. 그러나 임해는 기다리겠다고 하지
않고 길을 떠난다. 마음은 영원히 평정을 기다리겠지만 자신의 발걸음을 멈출 수는 없다며. 임해는 권력투쟁과 음모의 중심지인 금릉의 삶은 자신의 일과 양립할 수 없음을 안다. 소평정이 금릉에 다시 정착한다면 자신에게 돌아올 수 없을 것이다. 임해는
‘날 찾고 싶으면 너는 어디서든 찾을 수 있을 거야’라는
말을 남기고, 소평정도 임해의 결정을 받아들인다.
‘풍기장림’은 장림왕부의
재기발랄한 막내아들 소평정이 고뇌와 시련 끝에 어떻게 풍전등화 같은조정과 나라를 구하는 영웅이 되는지를 그려낸다.
그런데 소평정과 임해의 관계를 중심으로 보면 이 드라마는 ‘소평정이 어떻게 임해의 진정한
동반자가 되는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드라마는 소평정이
자신의 혼약 상대라는 걸 알면서도 모른 척했던 임해가 어떻게 마음을 열고 소평정을 받아들이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드라마 초반에 ‘젊은
여자가 제대로 치료하겠느냐’며 편견을 드러냈던 소평정은 임해와 교류하며 차차 바뀌어간다. 임해의 뛰어난 의술에 감탄하고, 투철한 직업정신과 사명감에 감복한다. 전장에서 싸우는 자신의 일 못지 않게 환자를 치료하는 임해의 일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임해가 쓴 약초 연구서 <백초신집(百草新集)>을 두고 대화하는 장면은 소평정의 변모 혹은 성장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이 장면에서 임해는 <백초신집>의 저자로 자신의 이름을 표기하지 않겠다며, 랑야각에서 발간한
것으로 해달라고 노각주에게 부탁한다. 자신을 저자로 밝히면 여성에 대한 편견 때문에 이 책이 후세에
전해지지 않을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평정은 이에 반대하며 말한다. 바로 그 여성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기 위해 이 책을 임해가 썼다는 걸 꼭 밝혀야 한다고.
소평정과 임해가 서로 존중하고 아끼며 보다 성숙해지는 이상적인
관계를 보여준다면, 소원계와 순안여의 관계는 이와 대조적이다. 소원계는
소평정의 사촌으로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으나, 피해의식과 열등감, 소외감
때문에 비뚤어진 야심을 갖고 역모를 꾀하게 되는 인물이다. 소원계는 황후의 조카뻘 되는 순안여에게 첫눈에
반해 결혼하고, 아내를 끔찍하게 아끼고 사랑한다. (아래 사진)
두 사람의 신혼은 장밋빛으로 시작되지만 순안여가 남편의 역모를
눈치채면서 파국으로 치닫는다. 어질고 유순한 순안여는 ‘남편을
따르는 게 아내의 도리’라며 압박하는 남편을 거부하지 못하고 괴로워한다. 소원계는 아내를 사랑했으나 아내의 감정을 무시하고 자신의 뜻만 강요했고, 순안여는
그런 남편에게 어쩔 수 없이 순종하다가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
풍기장림의 마지막 장면, 양나라
조정을 위기에서 구해낸 소평정은 금릉의 부귀영화를 뒤로 하고 길을 떠난다. 금릉성을 빠져나온 소평정은
언덕 위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임해를 발견한다. 두 사람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함께 하자고
약속한다. 각자 말을 타고 자신의 길을 떠났던 두 사람이 다시 만나 이제 같은 길을 나란히 달린다. 진정한 인생의 동반자로 맺어지는 것이다.
물론 ‘풍기장림’은 두
사람의 사랑보다 훨씬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모든 걸 바칠 수 있는 신념의 힘, 서로 보듬고 믿어주는 뭉클한 가족애, 좋은 지도자의 자질, 인간의 약한 고리를 파고드는 의심 등등, 수많은 이야기들이 거대한
물줄기가 되어 마음을 두드린다. 하지만 나는 ‘풍기장림’을 자꾸 임해를 중심으로 한 사랑 이야기로 읽게 된다. 작가 하이옌은
임해를 통해 자신이 꼭 하고 싶었던 말들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풍기장림’은 중국 고대를 다룬 빼어난 정치 드라마이지만, 지극히 현대적 관점의 로맨스 드라마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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