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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이나랩에 기고한 글> 
사전에는 잘 안 나오지만 많이 쓰이는 중국어 신조어로 
뱌오티당(标题党)’이라는 단어가 있다뱌오티(标题)는 글의 표제즉 제목이다

그럼 뱌오티’당’은 뭘까. 영어로 번역하면 
Sensational headline writer, 
센세이션을 일으킬 
헤드라인을 쓰는 사람들을 뜻한다.

즉 웹과 모바일에서 글의 열독률을 높이기 위해 제목 장사낚시질을 하는 사람들이다뱌오티당이 단 제목은 흥미 위주로 뽑은 것인데침소봉대와 과장을 종종 하고정작 글의 내용과는 크게 상관이 없는 경우가 많다

중국 인터넷에서 뱌오티당의 예로 소개한 제목을 보자

제목 : 세 여인과 사나이 105명의 이야기(3个女人和105男人的故事) 
내용 : 수호전
제목 : 중국의 유명 여배우 리샹이 큰길에서 어떤 사람에게 강제로 끌려간다
(李湘在大街上被人强行拖行)
내용 : 어떤 사람이 리샹이 광고 모델로 인쇄된 전단 뭉치를 길바닥에 질질 끌고 간다.
[출처 : 소후닷컴]
제목: 잔혹하구나! 아리따운 아가씨가 성냥불에 타 죽다니 하늘도 놀랄 핏빛사건
(残忍啊, 美丽姑娘竟然被火柴烧死的惊天血案)
내용: 성냥팔이 소녀
제목: 황색 그림
(黄色图片 황색’에는 포르노라는 뜻이 있다. 즉 야한 사진이나 그림이라는 뜻)
내용: 진짜로 노란색인 그림 한 장

그런데 중국 음악계에서 최근 뱌오티당’ 논쟁이 있었다지난달 중국 선전에서 열린  4회 중국악단 예술관리논단에서였다.

이 논단은 2015년, 상하이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예술감독이며 지휘자인 위룽의 주도로 시작되었다올해의 행사에는 중국 전역 40여개 교향악단 관계자들이 모여 뉴미디어 시대에 클래식 음악을 알리는 데 대중적이고 오락적인 방식이 필요한가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 자리에서 닝보 교향악단의 통밍(童铭) 부단장이 소개한 공연 홍보 사례가 열띤 토론의 대상이 되었다닝보교향악단은 공식 위챗(중국의 카카오톡에 해당하는 SNS) 계정의 공연 소개글에 이런 제목을 붙였다

이것은 여신에 푹 빠져 열렬히 구애하는 
청년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这是一个迷弟追求女神的爱情故事)

도대체 무슨 공연을 소개하려는 것일까이는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에 관한 글이었다이 곡을 쓸 당시 베를리오즈가 한 여자 배우에게 반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제목을 썼다는 것이다닝보 교향악단은 대중에 보다 친근하게 다가가려는 목적으로 이런 홍보 방식을 쓴다 했다.

닝보교향악단 [출처 : 닝보교향악단 공식홈페이지]

그러나 통밍 부단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차이나 필하모닉의 리난(李楠) 단장이 이의를 제기했다

마케팅 수단을 사용하는 건 이해하지만, 이런 식으로 통속적이고 대중에 영합하는 방식은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리난 단장 [출처 : http://www.zhongyin.net.cn]

그는 이런 예를 들어 반박했다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4번은 차이코프스키가 폰 메크 부인에게 헌정한 것인데 당시 차이코스프키와 폰 메크 부인은 별로 교류가 없었다그렇다면 이 곡을 연주할 때 이것은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남녀의 사랑 이야기라고 소개해야 할까그는 환상교향곡을 여신을 사랑한 이야기로 만들어버리는 건 이 곡의 본질에서 너무나 벗어난 이야기라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에 대해 통밍 부단장은 이렇게 튀는 제목을 단 글들이 마케팅 효과도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다시 반박했다닝보 교향악단은 공연 홍보 글 아래 티켓구입처 링크를 달아놓는데이런 제목의 글을 읽은 사람들이 표를 사는 비율이 높아졌다는 것이다그러나 리난 단장은 클래식 음악에 관한 글에는 지나치게 통속적이고 오락적인 제목을 쓰는 게 부적절하다며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여러 참석자들이 의견을 더 냈지만 이 포럼에서 일치된 결론을 내지는 못했다위룽은 개인적인 의견임을 전제하며, ‘지당하신 말씀으로 토론을 마무리했다

물론 포장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모든 노력을 포장에 쏟으면 안되겠죠. 결국 클래식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본질은 결국 ‘내용’이니까요.
상하이심포니 지휘자 위룽 [출처 : 상하이심포니 공식홈페이지]

상하이 심포니가 이 토론을 소개하며 공식 위챗계정에 올린 글에는 뱌오티당에 대한 독자들의 의견이 여럿 달렸는데찬반 양론이 다 있다그런데 뱌오티당은 중국만의 문제도클래식 음악계에 한정된 문제도 아니다한국에서도 인터넷 글에 제목 달기는 첨예한 화두다흥미로운 제목에 끌려 클릭한 글이 예상과 전혀 다를 때 낚였다는 불쾌감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지나친 제목 낚시는 독자들을 피곤하고 짜증스럽게 한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제목이 평이하면 아예 독자들에게 평가 받을 기회 자체를 얻지 못하는 것 역시 현실이다한국에는 제목 낚시가중국에는 뱌오티당이 나타나는 이유다

[출처 : 셔터스톡]

그러고 보니 당장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은 어떤 제목을 달아야 할까 고민스럽다물론 위룽의 말대로글의 내용이 중요한 본질이다그러나 클릭 수가 관건인 인터넷 세상에서는 일단 읽히고 봐야 한다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으니. ‘뱌오티당이라면 내 글에서 어떤 제목을 뽑아낼지 궁금해진다

 SBS 김수현 기자
정리 차이나랩 조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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