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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얼후를 몇 달 배우다 돌아왔다. 얼후를 배운 것은 한국에 있을 때 해금을 배운 경험이 있어서였다. 중국에서 해금 선생님을 구하기는 불가능했고, 그래서 떠올린 게 얼후였다. 얼후는 해금과 비슷하게 생긴 두 줄 악기이고, 주법도 공통점이 있다. 얼후는 해금보다는 좀 더 가볍고 매끄러운 소리가 나는데, 서양 악기로 치자면 바이올린과 비슷하다고 할까. 해금은 비올라나 첼로 같은 느낌이고.
중국에 왔으니 중국 선생님한테 중국 악기를 배워보자 생각했다. 얼후로 '모리화'나 '월량대표아적심' 같은 중국 곡들을 멋들어지게 연주해 보고 싶었다. 생각만 하고 지내다가 지난해 하반기에 악기를 샀고, 얼후 선생님도 소개 받아서 배우기 시작했다. 해금과 주법이 비슷한 부분이 있고, 내가 악보를 잘 보는 편이라 진도는 꽤 빨리 나갔다. 연습량이 적어서 듣기 좋은 소리를 뽑아내지 못했고, 연주 자세도 틀렸다는 지적을 계속해서 받기는 했지만, '모리화'도 켜보기는 했다. (위 사진은 올초 얼후 레슨 때의 모습)
하지만 내 얼후 레슨은 오래 가지 못했다. 선생님이 명절이나 방학 때마다 고향에 갔고, 나도 일이 있어서 빠질 때가 종종 있었다. 몇 달을 배웠는데도 레슨은 딱 열 번만 받고 그만뒀다. 가끔 혼자서 '모리화'를 켜볼 때도 있었지만, 가족들이 깽깽거리는 소리 좀 그만 내라며 구박하는 바람에 얼후를 잡는 일은 점점 드물어졌다. 복직을 앞두고는 이것저것 정리할 일도 많아져서 얼후를 케이스에 넣어 그냥 방 구석에 팽개쳐 놓고 있었다.
복직을 위해 한국으로 돌아올 때도 급한 짐만 들고 왔고, 얼후는 당장 필요없을 것 같아 중국에 놓고 왔었다. 그러다 추석 때 잠시 중국에 다녀오는 길에, 얼후를 중국에 놔둬도 아무도 쓸 사람이 없어서 한국으로 가져왔다. 그런데 오랜만에 연습 좀 해 볼까 하고 얼후 케이스를 열어보니, 악기가 엉망이 되었다. 몇 달 방치해 놓은 사이에 줄이 다 풀려서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어디서 고쳐야 하나. 중국으로 다시 들고 가야 하나.
그러다 인터넷을 뒤져보고는, 홍대 근처에 궁울림 얼후 스튜디오(http://erhukorea.com/)라는 곳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 스튜디오에서 얼후 강습도 열린다 했다. 혹시나 해서 전화해 봤다. 억양이 약간 어색하지만 또렷한 한국말을 구사하는 중국인 얼후 선생님이 전화를 받았다. 얼후 수리도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가져와 보라 한다.
며칠 뒤 퇴근길에 찾아갔다. 작은 연립주택 건물에 있고 표지판도 눈에 띄지 않아서 찾느라 약간 헤매긴 했다. 밤 9시가 넘은 시간인데 한창 연습과 레슨이 진행 중이었다. 분위기가 좋았다. 잠시 기다리며 얼후 선율에 귀를 기울였다. 얼후를 배우는 동호인들이 발표회를 앞두고 연습 중이라 했다. 중국서 레슨 받던 때가 떠오르면서 나도 다시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 레슨이 끝나고 얼후 선생님이 내 악기를 봐줬다. 칭다오에 살다왔다 했더니 웃으면서 '그런데 악기는 남쪽 악기를 쓰셨네요' 한다. 악기 생긴 걸 보면 어느 지방에서 만든 악기인 줄 아는 모양인가 보다. 선생님은 나중에 새 줄로 갈아야 될 것 같다고 하면서도, 풀린 줄을 다시 감아 제 모습대로 만들어 놓았다. 일단 연습하는 데 큰 문제는 없을 거라 한다.
얼후 레슨을 다시 받고 싶어져서 강습료를 물었더니 1대1 레슨은 4회에 15만원이라 한다. 중국에서는 한 시간에 150위안 냈었다. 서울 물가를 생각하면 수강료가 비싼 건 아니다. 당장 등록하고 다니겠다고 하려다가, 내가 요즘 벌려놓은 일이 많다는 걸 떠올리고는 참았다. 연말까지 급한 일들이 좀 정리되고 나면 정말 얼후 레슨 받으러 다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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