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금을 배우기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났다. 활 쓰는 법, 안줄(중현) 바깥줄(유현)로 소리내기를 배웠고, 황 태 중 림 남, 음에 따른 운지법을 배우고 있다. 손아귀가 아프고, 손가락 마디마디 편치 않았지만, 자꾸 하다보니 처음보다는 나아졌다. 쉬운 동요를 배워서 연주한다.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 '떴다떴다 비행기 날아라 날아라' '학교 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동심이 샘솟는 기분이다.
해금은 정말 간단하게 생겼지만 참 재밌는 악기다. 연주를 직접 해보기 전엔 생각해보지 못했던 점인데, 해금은 조바꿈이 엄청나게 쉽다. 피아노만 칠 때엔 몰랐다. 그냥 줄 잡는 손 위치만 바꾸면 조바꿈이 자유자재다. 이래서 다른 악기랑 합주도 쉽다는 얘기인 듯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지금까지 배운 곡들은 교본에 서양식 오선악보가 함께 실렸는데, 지난주 진도 나간 곳부터는 오선악보가 없어졌다. 그냥 우리식 정간악보를 보고 연주해야 하는데, 그동안 오선악보에 너무 의존해 왔던 터라 쉽지 않다. 사실 피아노를 좀 쳤고 음감이 있는 편이라 멜로디를 아는 곡들은 굳이 악보를 보지 않고 그냥 연주하곤 했다. 그런데 멜로디가 생소한 곡이 나오니, 오선 악보 없이는 연주가 힘든 것이다.
같이 해금을 배우는 남편과 딸은 오선악보에 서툴러 처음부터 정간악보를 읽는 것에 버릇을 들였다. 하지만 나는 오선악보가 쉽다고 휘리릭 읽고 정간악보는 대충 보고 넘기는 버릇이 생겼다. 그런데 오선악보가 없어지니 더듬더듬, 서투르고 불편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오선악보 없는 곡을 몇 곡 연습하다 보니 조금 익숙해지긴 했지만, 멜로디만 익히고 나면 자꾸 악보는 안 보고, 마음 속으로도, 황 태 중 림 남, 우리식 음 이름이 아니라 자꾸 도 레 미 파 솔, 서양식 음 이름으로 환원해서 연주하곤 한다.
해금 배우기 시작할 때, 음감이 있으면 수월하다 해서 약간 자신감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막상 해보니 해금 줄을 팽팽하게 잡는 것부터 어려웠다. 그래서 첫 해금 레슨에서는 남편이 가장 소리를 잘 냈다. 음정을 정확하게 안다 해도 손 힘이 없으면 제대로 소리를 낼 수 없다. 그리고, 나처럼 오선악보만 읽고 정간악보는 잘 모르면 해금 연주에선 반 까막눈이 된다.
그 결과는, 같이 배우기 시작한 세 사람 중에 내가 진도가 제일 느리다는 것. 그래도 손가락 마디에 굳은 살이 내려앉기 시작했고, 동요 몇 곡은 악보 없이도 연주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물론 듣기 좋은 소리를 내려면 아직 멀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