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요즘 중국 드라마환락송시즌 2를 매일 보고 있다. ‘환락송은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 중 나오는환희의 송가를 뜻하며, 극중 상하이의 한 아파트 이름이기도 하다.  드라마는 이 아파트 같은 동에 사는 다섯 명의 여성들 얘기다. 이 아파트 22층에는 세 집이 있는데, 양끝의 두 집에는 각각 월 스트리트에서 중국 대기업으로 스카우트된 커리어 우먼 앤디, 부자 아빠를 둔 덕분에 회사를 경영하는 금수저푸얼다이(富二代. 부모의 부를 세습한 2세를 가리키는 말)’ 취샤오샤오가 살고 있다. 가운데 집에는 상하이의 비싼 방세를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직장여성 세 명이 함께 사는데,  판셩메이, 관지얼, 치우잉잉이 이들이다.

환락송시즌 1을 본 것은 순전히랑야방위장자때문이었다. 중국의 가상 왕조 양나라를 배경으로 한랑야방을 너무나 재미있게 본 터라, 같은 제작진이 만들었고랑야방의 배우들이 많이 나온다는 1930년대 배경의위장자도 보게 되었다.  환락송역시 같은 제작진이 만들었고, 현대의 상하이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다. 역시나 겹치는 배우가 많다. 앞의 두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고 나니환락송도 궁금해서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랑야방에서 위장자, 환락송 순서로 드라마를 보고 나니, 중국 고대에서 근현대, 그리고 내가 사는 바로 이 시대로 이어지는 중국의 다른 모습들을 엿본 느낌이다.


 40
회가 넘는 환락송 시즌 1은 동영상 사이트에서 한 열흘 걸려서 봤다. 서로 살아온 환경도 성격도 취향도 너무나 다른 주인공 다섯 명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친자매 같은 우정을 쌓고, 각자 연애와 실연, 혹은 짝사랑을 경험한다. 지난달 방영을 시작한 시즌 2에서는 이들의 연애담이 더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시즌 1을 보고 나니 시즌 2도 궁금해져서, 텔레비전본방을 보고, 놓친 회차는 매일밤 12시에 업데이트 되는 것을 찾아서 따라간다. 매일 저녁 두 회차를 잇따라 방영하는데, 시즌 250회가 넘는다. 20회 정도가 기본인 한국 드라마에 비해 중국 드라마는 길어도 너무 길다.

중국 드라마를 보는 주목적 중 하나가 중국어 학습이다. 그런데 사극은 고어와 문어체가 많이 쓰여서 현대 드라마보다는 생활 회화에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그런 면에서 환락송은 지금 이 시대 중국인들이 많이 쓰는 일상적 표현을 익히기에 좋은 드라마다. 직장에서 일할 때, 친구와 만날 때, 연애할 때, 손님을 접대할 때, 다양한 상황에서 중국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책으로 공부하는 것보다 훨씬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 ‘환락송을 보면서 사전에 잘 안 나오지만 중국인들이 많이 쓰는 단어들, 혹은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신조어들을 새로 알게 되었다. 이런 단어들에는 중국의 사회상이 담겨있기도 하다. 이렇게 알게 된 단어 중 하나가小三(중국어로는샤오산이라고 읽는다)’이라는 단어다.

샤오산은 부인이나 여자친구 있는 남자와 바람 피는 여자를 가리키는 속어다.  환락송 시즌 1 초반에서부터 나왔던 단어인데, 자주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이 단어를 둘러싼 중국인들의 정서가 시즌 2에서도 중요한 사건들의 발단이 된다. 먼저 시즌 1에서는 미모와 능력을 다 갖춘 커리어 우먼 앤디가 인터넷의 악소문 때문에 고생하는 얘기가 나온다. 앤디가 당시 만나기 시작한 남자는 자수성가한 기업가였는데, 앤디가 그 남자의샤오산이라는 주장이 인터넷에 올라온 것이다. 젊은 여자가 미모를 이용해 성공하고 돈 많은 남자를 쫓아다니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여기에 증거랍시고 앤디가 남자와 대화할 때 몰래 사진을 찍어 올렸다. 외국에서 성장한 앤디는 이런 근거 없는 소문에 신경 쓰지 않지만, 22층 이웃들은 상황이 심각하다며 인터넷에 그를 옹호하는 글을 올린다. 그러나 악소문은 점점 퍼져나가 앤디의 회사가 평판을 고려해 그를 대외업무에서 잠시 제외하기는 데까지 이른다. 이 사건은 앤디와 22층 이웃들의 관계가 돈독해지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나는 이 상황 자체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게 뭐? 상대 남자가 결혼한 사람도 아니고, 두 사람이 만나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나? 여자친구한테서 남자를 빼앗았다고? 앤디가 실제로 남자를 빼앗은 것도 아니지만, 설사 그랬다 하더라도, 사귀던 사람과 깨지고 또 다른 사람을 만나고 하는 건 흔히 일어나는 일 아닌가? 사람들이 이걸 보고 앤디에게 손가락질한다는 상황이 말이 되나? 미모의 젊은 여성이 잘 나가는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는 편견이 깔려 있는 거 아닌가?

시즌 2에서도 앤디가샤오산으로 몰려 힘들어하는 상황이 나온다. 앤디는 새 남자친구(위 사진)를 만나는데 이 남자친구는 대기업의 상속자이며, 아들 사랑이 유별난 어머니가 있다. 앤디는 어린 시절 고아원에서 자라 미국으로 입양되었는데, 뒤늦게 앤디의 존재를 안 생부가 앤디 외할아버지가 남긴 거액의 유산을 앤디에게 넘겨준다. 자기 몫을 빼앗겼다고 생각한 생부의 아내는 앤디를 남편의 불륜녀라고 의심한다. 그리고 앤디 남자친구 어머니에게도 접근해 앤디가샤오산이라고 모함한다.

남자친구의 어머니는 앤디가 돈 많은 사람을 유혹해 재산을 갈취하는샤오산이라며, 당장 헤어지라고 한다. 앤디가 젊은 나이에 기업의 간부가 된 것 역시 그 회사 사장과 부적절한 관계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한다. 결국 앤디의 남자친구는 앤디가 공개하기 싫어하는 걸 알면서도 앤디와 생부의 혈연 관계를 밝히고, 그제서야 어머니는 앤디가샤오산이라는 오해를 푼다. (이 어머니는 처음에는 앤디를 좋아하다가, 남의 험담을 듣고 앤디가샤오산이라며 헤어지라 하고,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자 태도를 바꿨다가, 앤디의 생부에게 안 좋은 일이 일어나자, 아들의 장래와 회사에 도움이 안 될 거라며 다시 앤디와 헤어지라 한다. 짜증나는 캐릭터다.)

  


어제 본 38회차에서는 22층 이웃 중 한 명인 치우잉잉이샤오산으로 몰려 곤란을 겪는 사건이 전개되었다. 잉잉은 같은 고향 사람인 컴퓨터 프로그래머 잉친(위 사진)과 사귀고 있었지만, 그는 잉잉이 연애경력이 있고 처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연히 알고는 절교를 선언하고, 곧바로 고향 집에서 맺어준 다른 여자와 약혼한다. 그런데 약혼녀를 알면 알수록 마음에 들지 않아 옛 여자친구인 잉잉을 그리워하게 된다. 잉친은 자기 고민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며 다시 잉잉에게 다가가고, 아직도 잉친을 사랑하는 잉잉은 딱 부러지게 거절하지 못한다. 그러다가 두 사람이 다시 만난다는 것을 알게 된 잉친의 약혼녀는 여러 사람을 동원해 으슥한 곳에서 잉잉을 협박하고 때린다. 잉잉을 보호하려던 잉친 역시 심하게 맞는다. 


잉잉의 구조 요청을 받고 현장으로 달려가던 22층 이웃들은 차 안에서 도대체 어떻게 된 상황일까 궁금해하며 대화를 나누는데, 세상 물정에 밝고 판단 빠른 취샤오샤오가 단번에 결론을 내린다. 잉잉을 샤오산으로 여겨서 그런 거라고. 잉잉과 잉친은 22층 이웃들 덕분에 구조돼 병원에 입원하는데, 잉친은 부상이 더 심각해서 대수술을 받는다. 잉친의 모친은 자기의 약혼남까지 때리게 해 이 지경으로 만든 예비 며느리를 탓하기는커녕, 어떻게 약혼녀가 있는 남자를 다시 만날 수가 있냐며 전 여자친구인 잉잉만 비난한다. 그리고 약혼녀와 헤어지고 잉잉과 다시 만나겠다는 아들에게는 절대 안 된다고 한다. 예고편을 보니 약혼녀의 가족들이 몰려와 잉친 모자에게 책임지라며 협박할 모양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어이없고 짜증스러운 상황 전개다.


환락송은 흔히 중국판섹스 앤 더 시티로 불리지만, 대도시를 배경으로 사랑 얘기가 펼쳐진다는 것뿐이지, 사실 그리 공통점이 많은 것 같지는 않다. 극중에서도 외국에서 성장한 앤디가 중국식 사고방식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오기는 하는데, 아직도 중국은 전통적, 봉건적 가치관이 지배적인 것으로 보인다. 사실 중국 젊은이들은 성에 대해 개방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고, 드라마 안에서도 구체적으로 성관계가 묘사되진 않더라도 젊은 미혼 남녀가 침대에 같이 누워있는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에서는처녀가 아니라서여자친구를 차버리는 남자가 나오고, 젊은 여성에게샤오산이라는 딱지가 붙으면 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고, 심지어는 집단폭행까지 당한다. 인터넷 사전을 찾아보면샤오산외에뻬이샤오산(被小三)이라는 단어도 나온다. 이는 자신도 모르게샤오산이 되어버리는 상황을 일컫는 말이다. 이 단어를 전에 들었다면 어떤 상황인지 감을 잡기 어려웠겠지만, ‘환락송을 보고 나니 확실하게 알겠다.  


환락송을 보면서 나는 종종 고구마를 잔뜩 먹은 듯 답답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환락송이 처음보다 점점 재미 없어지고 있다. 생각해 보니 옛날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도 종종 그랬던 것 같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지만, 중국은 급격한 도시화, 현대화, 개방화 속에 아직도 전근대적인 가치관이 혼재하는 상황이 더 두드러진 듯하다. 드라마는 현실이 아니지만, 현실을 어느 정도는 반영한다. 드라마 시청이 외국어 학습과 외국 문화 이해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 흔히 듣는 말이지만, 요즘 정말 실감하고 있다. 그러니 좀 답답하더라도 환락송 2는 끝까지 보게 될 것 같다.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   2024/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