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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가 아프기 시작한 지 3주쯤 됐다. 초기엔 새벽에 극심한 요통에 놀라 깨는 일이 다반사였다. 요통이 극심할 때는 정말 당장이라도 한국에 가서 검사하고 치료해야겠다는 생각이었는데, 급한 대로 동네 한국인이 하는 의원에서 침 맞고 가벼운 운동 하고 요양하니 그럭저럭 살 만해졌다.
그런데 허리가 좀 나을 만하니 속이 답답하고 소화가 안 된다. 뭘 먹어도 딱 막혀서 안 내려가는 기분이다. 겁나서 많이 먹지도 못하겠고, 조심조심 조금씩만 먹는데도 계속 답답한 그대로다. 소화제를 먹어도 소용이 없다. 결국 또 병원에 갔다. 생각해 보니 지난 일요일 점심 컵라면 먹은 게 딱 얹히는 느낌이었는데 그 이후로 계속 소화가 안 됐던 것 같다.
지난 일요일에 먹은 게 괜찮지 않을 이유가 있기는 있었다. 그 날 아침, 아침식사 준비하려 부엌에 들어갔는데, 갑자기 찌그덕 찌그덕 소리가 나더니 부엌 한켠에 설치돼 있던 보일러가 앞쪽으로 떨어졌다. 비명이 절로 나오는 순간. 아래쪽에 웅크려 있던 도리가 혼비백산해 달아났다. 관이 터져서 물이 폭포수처럼 콸콸 쏟아졌다. 순식간에 부엌이 물바다가 되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남편이 달려왔고,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일단 전기 코드를 뽑고 가스를 차단했다. 남편이 세탁기 호스를 가져와서 마구 쏟아지는 물을 싱크대 쪽으로 돌리려고 하는 동안 나는 밖으로 뛰어나가 수도관을 잠가야 했다. 수도계량기는 아파트 복도에 설치돼 있는데, 너무 어두워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더듬더듬 밸브 같은 걸 찾아서 잠갔다고 생각했는데 부엌의 물은 멈추지 않았다. 방향이 틀렸나 싶어 다시 반대쪽으로 돌렸더니 이건 더 열어버린 거였다. 다시 잠그고 조금 더 기다리니 물살이 약해지고 조금 더 기다리니 멎었다.
우리 집 주인은 해외에 있으니 이런 일은 부동산 사장에게 이야기해야 한다. 전화했더니 부동산 사장도 보일러가 혼자서 뚝 떨어졌다는 게 믿기지 않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도대체가 괜찮냐, 많이 놀랐겠다, 미안하다, 이런 말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그 보일러가 몇 년 된 건데 그럴 수가 있느냐'고 한다. 화가 버럭 나서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 몇 년이 됐든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대꾸해 줬다.
부동산 사장은 곧 사람을 보내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일단 수건과 대야를 가져와서 물바다가 된 부엌을 대충 수습했다. 은형이는 부엌 바닥 닦는 걸 도와주고 나서는 피곤하다며 도로 들어가서 침대에 누워버렸다. 전기도 가스도 물도 못 쓰는 상황이라 밥을 할 수도 없고, 수리하러 사람이 온다 했으니 집을 비울 수도 없었다. 망연자실 앉아있다가 식구들이 배가 고프다 해서 은우가 나가서 사온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다. 바로 이 컵라면이 문제였다. 너무 놀라고 지친 가운데 먹은 컵라면이 탈이 난 것이다.
의사가 안색이 말이 아니라고 해서 다시 거울을 봤더니 눈 주변이 진짜 판다처럼 거무스름해졌다. 의사가 보약이라도 좀 지어먹으라 했다. 내가 한약 먹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약을 짓지는 않았지만, 건강식품이라도 좀 더 먹어야 하나(지금도 비타민제를 복용하고 있기는 한데) 생각했다. 바로 누워서 침 맞고, 또 돌아누워서 침 맞고 있으려니 느낌이 진짜 병자 같았다.
'허리도 아프고 소화도 안되고, 기력은 떨어지고, 성한 데가 없네요', 했더니 의사가 웃으면서 '그럴 때가 되기는 했어요. 요즘 또 환절기잖아요. 젊은 사람들은 몰라도 나이 들면 환절기 넘기는 게 힘들어요.' 한다.
어제는 목이 아프고 감기 기운이 있어서 홍삼 꿀물 타먹고 목도리까지 두르고 잤다. 다행히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어제보다는 좀 나은 것 같다. 며칠 날씨가 찌부둥해서 기분도 가라앉았었는데, 오늘은 모처럼 하늘이 맑다. 해변 산책이라도 해야겠다. 한국에선 밤새 박근혜가 구속됐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구시대가 이렇게 끝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한국이 시기를 잘 넘기고 더 나은 사회로 도약했으면 좋겠다. 나도 환절기를 무사히 잘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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