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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사드 보복이 본격화된 후, 내가 사는 칭다오에서도 갖가지 흉흉한 소문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한국 학생이 중국 학생들한테 맞았다,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에서 술 마시고 귀가하던 한국인이 뒤에서 내리치는 맥주병에 맞아서 중태에 빠졌다, 한국인들이 많은 업소에 중국 공안이 들이닥쳐 신분증 검사를 하고 여권을 소지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벌금을 100위안씩 매겼다, 등등, 듣기만 해도 걱정스러운 일들이었다. 그러나 대부분 '카더라' 통신이고 실제로 그랬는지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칭다오는 롯데마트나 롯데백화점이 없어서 갈등이 세게 표출되지 않았고, 반한 감정이 심한 편은 아닌 듯하다. 하지만 여기서도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한 중국 소방, 환경 당국의 점검이 전례없이 까다로워졌고, 예전에 없던 트집을 잡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한국인 사업가들의 비자 연장도 굉장히 힘들어졌다 한다. 또 한국인 가족이 택시를 탔다가 기사로부터 내리라는 얘기를 들었다는 것도 '카더라'가 아니라, 당사자로부터 직접 들은 것이다. 학교 수학여행을 다녀온 큰 딸은 공항에서 신발을 벗어라 양말을 벗어라 하는 둥 성가신 보안검색을 당했고, 공항 직원들이 '한국인이야' 하며 낄낄대는 걸 들었다고 했다. 


 내가 직접 난처하거나 불쾌한 상황을 겪은 적은 없지만, 주변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아주 사소한 일로도 신경이 쓰인다. 내가 자주 산책 나가는 해변에는 등대 방향으로 길가에 만국기가 휘날리고 있었는데,  어느 날인가부터 태극기만 보이지 않는다.  처음에는 이게 과연 요즘 상황과 관계가 있는 것인지 확신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해변 광장에 원형으로 만국기로 장식해 놓은 곳에서도 태극기가 없어진 것을 보니, 관련이 없다고 할 수 없겠다. 누구 발상인지 정말 유치하다. 

 가만히 있으면 한국인인 걸 모르니 티를 내지 말라고 한다. 그래서 칭다오의 한국 학교들 중에 교복을 입던 학교들이 당분간 교복 대신 자유복으로 바꿨다 한다. 한국 학교 교복은 티가 나니까. 택시 탈 때도 대화는 줄여야 한다. 예전의 나는 택시 기사와 대화를 종종 하곤 했었는데, 요즘은 목적지만 얘기하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택시 기사가 '한국인이냐'고 물을까 봐 걱정이 된다. 밖에 나가면 영어를 쓰고 중국인이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어보면 싱가폴이나 태국 같은, 딴 나라 사람이라고 대답하라는 얘기도 들었다.  


 어제 가족과 함께 외출하며 택시를 탔는데, 둘째가 자꾸 한국어로 잡담을 해서 신경이 쓰였다. 한국어 하지 말고 조용히 있으라고 주의를 줬더니 둘째는 한국인이 한국말 하는 게 뭐 어때서? 하고 도리어 짜증을 낸다. 한국인이 한국말 하는 게 당연하긴 하지만, 요즘 상황이 안 좋으니 조심하는 게 좋다고 얘기해줬는데, 나도 속으로는 짜증이 솟았다. 


 아이들의 봄 방학 기간에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데, 좀 걱정이다. 혼자 가는 것도 아니고, 조심하면 큰 불상사야 없겠지만 기분 나쁜 상황을 만날 가능성은 커보인다. 특히 공항에서는 여권을 소지하고 있으니 한국인 티를 내지 않아도 국적이 노출될 수 밖에 없다. 요즘 중국 공항 직원들은 탑승객이 한국 여권을 소지하고 있으면 일부러 까다롭게 군다고 한다. 큰 아이가 겪었던 것처럼.


 중국 생활에 익숙해지고, 중국 문화에 매력을 느껴가던 참이었는데, 요즘은 자꾸 정이 떨어지려 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개인적으로 아는 중국인들은 대부분 여전히 상식적이고 한국인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안타까워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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