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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빨래'를 베이징에서 봤다. 중국어판으로, 중국 배우들이 연기했다. 언어는 다르지만 재미와 감동은 변하지 않았다. 일단 졸저 <나도 때로는 커튼콜을 꿈꾼다>에 실었던, 뮤지컬 '빨래' 감상기를 찾아 다시 올려본다. 곧 중국어판 감상기도 올릴 예정이다.

 둘둘 말린 스타킹 아홉 켤레
 
구겨진 바지 주름간 치마
 
담배 냄새 밴 티셔츠 
 떡볶이 국물 튄 하얀 블라우스

발꼬랑내 나는 운동화 밑창

머리냄새 묻은 베개 홑청

손때 묻은 손수건

 

난 빨래를 해요 오늘은 쉬는 날

가을 햇살은 눈부시고 바람이 잘 불어

밀렸던 빨래를 해요

 

빨래가 바람에 마르는 동안

이 생각 저 생각 끝에 엄마 생각

엄마랑 같이 옥상에 널었던 빨래

 

난 빨래를 하면서

얼룩 같은 어제를 지우고

먼지 같은 오늘은 털어내고

주름진 내일을 다려요

잘 다려진 내일을 걸치고

오늘을 살아요

 

빨래를 하면서

얼룩 같은 어제를 지우고

먼지 같은 오늘을 털어내고

주름진 내일을 다려요

잘 다려진 내일을 걸치고

오늘을 살아요

(‘빨래’ 가사 중에서)

 

뮤지컬 ‘빨래’를 봤다. 뮤지컬 중 나오는 위 노래 가사에 마음이 끌린 건 벌써 몇 년 전이다. ‘얼룩 같은 어제를 지우고 먼지 같은 오늘을 털어내고 주름진 내일을 다려요’라는 말이 얼마나 따뜻하게 다가왔던지. 그런데 정작 작품을 보기는 이렇게 늦었다. 보고 나서는 ‘진작에 보는 건데’ 생각했다. 우리네 사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화려한 ‘브로드웨이 식’ 뮤지컬이 조금씩 공허하게 느껴지던 참이라 더더욱.

 

‘빨래’는 서울의 달동네 소시민들의 삶을 그려낸다. 강원도가 고향이고, 서울에 올라와 야간 대학을 다니다 중퇴하고 불안정한 직장을 몇 곳인가 전전하며 살고 있는 나영. 고국의 가족들을 위해 모욕적인 처우를 감수하며 불법 노동자의 삶을 이어가는 몽골인 솔롱고. 뮤지컬은 옥상에서 빨래를 널다 마주친 두 사람이 사랑을 키워가는 과정을 따라간다. 

 

‘빨래’의 중심 인물은 솔롱고와 나영이지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풍성한 타래로 엮인다. 억척 주인 할매는 남몰래 중증 장애 딸을 40년간 돌봐왔고, 2교대 공장 시다 출신 옷 장사 희정 엄마는 정에 약해 남자에게 버림받기 일쑤고, 익살스러운 필리핀인 노동자 낫심은 한국말이라고는 욕 밖에 못 배운 게 서럽다. 나영이 일하는 제일서점 ‘빵’ 사장은 ‘책 속에 돈이 있다’를 외치며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돈 벌기에 혈안이고, 점원들은 고용주의 변덕에 휘둘리는 직장 생활의 애환을 풀어놓는다. 

 

‘빨래’의 등장 인물들은 대부분 가진 것 없고 힘 없는 사람들이다. ‘똥 치우는 값’까지 따져가며 살아야 하는 서민들이다. ‘지지리 궁상’인 이들의 삶을 그려내는 ‘빨래’는 그러나 밝다. 가슴이 무너지는 슬픔, 눈앞이 막막한 절망을 이야기하지만, 그래도 이들은 희망을 놓지 않는다. 이들은 ‘힘들게 살아가는 건 우리에게 남아있는 부질없는 희망 때문’이라고 지쳐 노래하지만, 이 희망은 힘이 세다.

 

빨래가  

바람에 제 몸을 맡기는 것처럼

인생도 바람에 맡기는 거야

시간이 흘러 흘러 빨래가 마르는 것처럼

슬픈 니 눈물도 마를 거야 자 힘을 내

 

슬픔도 억울함도 같이 녹여서 빠는 거야

손으로 문지르고 발로 밟다 보면 힘이 생기지

깨끗해지고 잘 말라 기분 좋은 나를 걸치고

하고 싶은 말 다시 한번 하는 거야

(‘슬픈 때 빨래를 해’ 가사 중에서)

 

‘힘들어도 희망을 가져. 희망은 좋은 거야’라고 얘기하는 게 공허하고 무책임한 립 서비스로 느껴질 때도 많다. 요즘 들어 부쩍 많이 하게 되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 뮤지컬은 아주 자연스럽게 나를 낙천적인 결말 속으로 끌어들였다. 선배의 부당해고에 항의하다 보복인사를 당하고 좌절하는 나영에게 ‘힘을 내야 또 따지러 가지’ 하며 위로하는 희정 엄마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파란 하늘에 펄럭이는 흰 빨래, 나영과 솔롱고의 사랑스런 2중창, 헤어지기 아쉬워하는 달동네 이웃들의 다정함이 모두 희망으로 다가왔다. 

‘낙천적인 결말’이라고는 했지만, 나영과 솔롱고에게는 앞으로도 숱한 난관이 닥칠지 모른다. 나영은 언제 직장에서 잘릴지 모르고, 솔롱고는 언제 몽골로 강제 출국 당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들은 어떻게든 이 난관을 헤쳐나갈 것이다. 함께 빨래를 하면서, ‘얼룩 같은 어제를 지우고, 먼지 같은 오늘을 털어내고, 주름진 내일을 다리면서.’ 그리고 다시 힘을 낼 것이다. 반드시 외국인 노동자가 아니라도, 단칸방 세입자가 아니라도, 이 세상 많은 보통 사람들이 불안해하며, 힘겨워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빨래’가 보여주는 희망은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내가 본 날 솔롱고는 홍광호였다. 임창정의 솔롱고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홍광호의 빼어난 노래를 들을 수 있어서 아주 만족스러운 무대였다. 홍광호는 너무 노래를 잘해서 때로는 튄다는 느낌까지 들 정도였는데, 개인적으로는 지난 2007년 봄 ‘첫사랑’에서 ‘미성이 인상적인 신인 배우’로 홍광호를 만난 이후로 2년만이다. 홍광호는 서점에서 사인회 여는 작가로도 잠깐 출연하는데, 실제로 객석의 관객들이 무대에 올라가서 사인을 받도록 한 이 장면에서 수십 명이 한꺼번에 몰리는 걸 보며 ‘배우 홍광호’의 인기를 실감했다. 그간 2년 사이에 홍광호가 출연했던 다른 공연들은 어땠을까 새삼 궁금해졌다. 

나는 뮤지컬 ‘빨래’를 보면서 자꾸 ‘지하철 1호선’을 떠올렸다. 두 작품 모두 보통 사람들의 서울살이가 중요한 소재이며, 등장인물들이 각기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하는 게 공통점이겠다. ‘빨래’의 마을버스 장면은 ‘지하철 1호선’의 지하철 장면과 오버랩 됐다. 나는 솔롱고와 낫심을 보며 ‘돈 벌려고 온 한국, 몇 년 만에 손가락이 2개밖에 안 남았다’고 노래하던 ‘지하철 1호선’의 외국인 노동자를 떠올렸다. 특히나 ‘빨래’의 억척스러우면서도 속정 깊은 주인 할매는 ‘지하철 1호선’의 곰보 할매와 닮은 꼴이었다. 주요 인물의 죽음으로 끝나는 ‘지하철 1호선’에 비해 ‘빨래’가 훨씬 밝고 따뜻한 느낌이긴 하지만. 

‘빨래’의 추민주 작가가 ‘지하철 1호선’에서 영감을 얻은 건 아닐까. 마침 ‘빨래’는 이번 두산아트센터 공연을 마치고 다음달 말부터는 대학로 ‘학전 그린’ 소극장에서 공연된다고 한다. ‘지하철 1호선’이 공연됐던 곳이다. 게다가 ‘지하철 1호선’ 공연에 출연했던 여러 배우들이 ‘빨래’에도 출연했고, 이번 학전 공연에서는 더 많이 투입된다고 한다. 이래저래 ‘빨래’가 21세기 판 ‘지하철 1호선’이라는 말이 과장은 아닌 듯 느껴진다. 

좋은 공연을 보고 나면 입이 근질근질 해서 못 견디는 병이 오랜만에 다시 도졌다. 때로는 눈물 흘리며, 때로는 폭소를 터뜨리며 봤던 ‘빨래’의 감동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진 것이다. 요즘 공연장에서 사온 CD를 계속 듣고 있다. 생생한 삶의 온기가 묻어나는 가사, 마음을 사로잡는 멜로디가 금방 입에 붙는다. ‘빨래’ 덕분에 내가 행복해진 만큼 다른 사람들도 행복해졌으면 한다. 다음 번 공연도 놓치지 않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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