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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 1, 김광석이 세상을 떠난 날, 나는 편집부 뉴스 진행PD로 야근 중이었다. 수습 중이던 후배 김경희 기자가 병원 응급실과 장례식장을 챙기다가 '김광석 자살'이라는 소식을 가져왔다.

 

내겐 밤새 일어난 일 가운데 가장 충격적이고 큰 뉴스였다. 1보는 SBS 뉴스에만 나간 특종이었다. 뉴스를 편집 진행하고 나서, 나는 마치 한 시대가 끝난 듯한 슬픔에 잠겼다. 잊을 수 없는 밤이었다.

 

생전의 김광석을 콘서트에서 세 번 만났다. 한 번은 동물원 콘서트였고, 두 번은 단독 콘서트였다. 나는 김광석을 굉장히 좋아했고 같이 콘서트에도 갔던 친구와 결혼했다. 예전엔 남편이 김광석을 더 좋아했는데 어느새 내가 더 좋아하게 된 것 같다. 김광석의 호소력 짙은 노래도, 담담한 이야기도 좋았다. 김광석 없는 나의 청춘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김광석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나는 '서른 즈음에'를 즐겨 불렀다. 나의 '서른 즈음'은 오래 전에 지나가 버렸다. 하지만 32살에 세상을 떠난 김광석은 아직도 '서른 즈음'의 모습으로, 1980년대-90년대 청년문화의 아이콘으로 남았다.

 

김광석의 곡으로 만들어질 뮤지컬 '디셈버'를 취재했다. 나와 비슷한 세대인 장진 감독이 쓰고 연출한다. 그에게도 김광석의 노래와 함께 했던,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이 뮤지컬을 통해 처음 공개될 김광석의 미발표곡 '12' '다시 돌아온 그대'의 악보를 보았다. 오선지의 음표를 따라가며, 단정한 필체를 보며, 가슴이 시려왔다. 그가 세상을 떠났던 그날밤이 다시 떠올랐다.

 

악보로만 남아있던 노래 '12' '다시 돌아온 그대', 김준수의 목소리로, 박건형의 목소리로 뮤지컬 무대에서 공개된다. 연습실에서, 제작발표회에서 미리 들었다. '12월'은 김광석이 작곡한 멜로디만 있던 곡에 조현주 씨가 제목과 노랫말을 붙였다. '다시 돌아온 그대'는 사랑하는 남녀의 듀엣곡이 되었다. 좋았다. 하지만, 이 노래들을 김광석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다면. 

 

'12' '다시 돌아온 그대' 김광석.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자꾸 추억할 거리가 많아진다는 것이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나도 이렇게 나이를 먹었다.  


*2013년 1월 2일에 덧붙임: 

동물원 멤버였고 김광석의 친구였던 김창기가 얼마 전 한 TV프로그램에 출연해 '다시 돌아온 그대'는 자신이 써서 김광석에게 줬지만, 김광석이 발표하지 않고 갖고 있었던 곡이라고 밝혔다. 유족에게서 김광석의 미발표곡 악보를 넘겨받은 뮤지컬 '디셈버' 제작사에서는 '다시 돌아온 그대'를 김광석이 쓴 노래로 알고 그렇게 홍보했다. 아마 유족도 자세한 상황은 몰랐던 모양이다. 김창기의 증언이 맞다면 '다시 돌아온 그대'가 김광석이 '쓴' 곡이라고 보도한 기사는 결과적으로 사실과 달랐던 것이 된다. 과정이야 어찌됐든 죄송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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