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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밀러의 '시련'. 대학 연극동문회 극단 공연으로 만났다. 아마추어 배우들도 끼어 있고 다소 엉성한 구석이 있었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봤다. 내가 아는 사람들이 나오니 지루할 리가 없었다. '시련' 작품 자체의 힘도 다시한번 실감했다. 2006년 영국 출장길,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 공연으로 처음 만나 이 작품에 반해 버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오랜만에 학창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대학 때 얼떨결에 딱 한 번 무대 섰다가 도망 나왔으니 연극반에 그리 애정을 쏟았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다시 만나니 다 반가웠다. 지도교수님도 오랜만에 뵈었다. 이번 연극 기획을 맡았던 과 친구가 '나중에 기자 그만 하게 되면 너도 출연 한 번 해라' 했다. 회사원은 시간 내서 연습 하기 힘들다면서. 

큰 아이도 공연을 봤다. 내가 어제 뉴스 제작하느라 늦어서 먼저 공연장에 도착해 나와 떨어진 자리에 앉아 봤다. 중간중간 졸기도 했다는데 그럭저럭 잘 본 것 같다. 또 엄마가 이 연극에 출연한 배우들과 예전에 같이 연극반 활동을 했다는 걸 재미있어 하는 눈치였다. 

공연 보고 나와서 늦은 저녁을 함께 먹으며, 아서 밀러가 당시 미국을 휩쓸던 매카시즘 광풍을 비판하는 의도를 작품에 담았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이 작품이 그래서 '저항의 연극'이 됐다는 얘기도. 딸은 호기심이 생기는지 흥미로워했다. 그러고 보니 아이가 어릴 때 '우리 딸은 언제 커서 엄마랑 같이 공연 보고 얘기 나눌 수 있을까'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참 세월이 많이 흘렀다. 

집에 돌아와서 남편에게 '연극반 친구가 기자 그만 하게 되면 나도 연극 하라고 하던데' 했더니 '에이, 무슨' 하고 웃는다. 대학 연극 딱 한 번 출연하고 나한테는 안 맞는 것 같아 '다시는 안 해' 결심했던 나다. 친구의 권유에도 별 생각은 없었는데, 무시하는 듯한 남편 반응을 보고는 약간 오기가 났다. 누가 배우로 먹고 산다고 했나? 그냥 취미로 할 수도 있는 거 아냐. 딸이 끼어들어 내 편을 들었다. 

"아빠 왜 엄마를 무시해? 엄마 연극 해라. 키스 씬 한 번 찐하게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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