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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숙직하며 쓴 글)


오늘은
숙직 시작하자마자 소설가 최인호 씨 별세 소식이 들어와 평소보다 조금 바빴다. 

최인호 씨는 문화부 초년병 시절 출판 담당하던 선배가 바빠서 대신 인터뷰하느라 한 번 만났었다.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이라는 책을 냈을 때였다. 2002년이었으니까 10년도 더 된 일이다. 워낙 유명한 작가라 어딘가 어려운 사람일 거라고 예상하고 갔는데, 전혀 딴판으로 친화력이 강하고 재미있는 사람이어서 인터뷰하며 많이 웃었다. 그리 긴 시간 만난 것도 아니었는데 끝날 때쯤에는 상당히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 같은 친밀감을 느꼈다.
 

나한테 '수현 누님'이라고 했던 기억도 난다. 내가 나이는 어리지만 '누님' 같은 인상이 있다면서. 이 '추억담'을 이야기해줬더니 후배들이 '그거 나이 들어보인다는 얘기 아니에요? 기분 나쁘지 않았어요?' 묻는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고, 오히려 기분 좋은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그 날 유쾌하게 헤어지고 나서 다시 만나지는 못했다. 

올해는 고인이 등단 50주년을 맞이한 해였다. 나는 지난 2월에 발간된 그의 등단 50주년 기념 문집 '최인호의 인생'을 읽었다. 2008년에 발병한 암과 싸워온 그는 담담한 어조로 투병의 고통을, 삶과 죽음을 이야기했다. 당시 나의 아버지도 암 투병 중이었고, 그의 글이 남 이야기 같지 않았다.
처음엔 그의 책을 아버지한테도 읽어보시라고 할 참이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지난해 여름 간암 말기 진단을 받았지만 아버지는 당신이 나을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웬지 아버지한테 이 책을 드리는 건, 마치, 얼마 안 남았다고, 이별을 준비하시라고, 그렇게 말씀드리는 것과 같은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만 읽고 말았다. 돌이켜보니, 그 때부터 이별을 준비했어야 한다는 후회가 밀려온다. 
불과 한두 달 후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으니까. 그리고 오늘은 최인호 씨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내 아버지뻘이었다. 

마음이 헛헛하다. 숙직이라 어차피 잠깐 눈 붙이는 정도밖에 못하지만, 오늘은 잠도 잘 안 올 것 같다. 생전의 최인호 씨가, 그리고, 아버지가 떠오르는 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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