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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시사 현안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힘든 일이었다. 영국 연수 중이던 2008년 봄에 영국 우리 집에 놀러온 아버지는 '말도 마라, 빨갱이들이 선동해서 촛불집횐지 뭔지 아주 골치아프다'며 한국 상황을 전하셨다. 아버지는 '문화이론' 세미나 준비를 위해 내가 읽고 있던 책에 Marx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걸 보고 화들짝 놀라며 '한국 가면 이런 책 봤다고 얘기하지 말아라' 하셨다. '이거 그냥 공부 때문에 보는 건데요' 해도 아버지는 '네가 하는 공부가 어떻게 빨갱이랑 관련이 되는 거냐'며 걱정하셨다. 

연수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간 그 해 겨울, 종편을 탄생시킨 한나라당의 방송언론관련법 처리에 반대하는 언론노조 총파업에 우리회사 노조도 참여했다. 조선일보만 보셨던 아버지는 '기자들이 무슨 파업이냐'며 혀를 끌끌 차셨다. '저도 파업 나가는데요. 이거 정말 중대한 사안이에요' 했더니 아버지는 '너는 차장인데 무슨 파업을 하니. 저런 건 어린 애들이나 하는 거 아니니' 하셨다. '너도 기자 오래 하더니 지나치게 사안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버릇이 든 모양이다'라고도 하셨다. 한참 말싸움을 벌이다가 '이거 아주 간단하게 말해서 제 밥그릇도 걸려있는 문제거든요. 제 밥그릇에 문제 생기는 거 아빠도 싫으시잖아요' 하고 응수했더니,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말문을 닫으셨다. 

아버지는 다른 면에서는 상당히 개방적이고 열린 분이었지만, '정부 정책 비판하는 건 일 잘하고 있는 사람들 발목 잡는 것'이고, '파업은 빨갱이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셨다. 나는 나 자신이 특별히 진보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아버지와 시사 현안을 이야기하다 보면 답답해져서 논쟁이 자주 감정적인 싸움으로 끝나곤 했다. 어머니는 '그런 얘기는 아예 시작도 하지 말아라. 아버지는 안 바뀌니까 네가 그냥 져드려" 하셨다.   

요즘 나라 돌아가는 꼴을 보니 아버지 살아계셨다면 정말 많이 싸웠을 것 같다. 난 아버지에게 "이러면 안되는 거잖아요" 하고 대들었을 것이다. 서로 소리 지르고 감정이 상해도, 그렇게 싸울 수 있도록, 아버지가 살아계셨으면 좋겠다. 정치적 성향이고 이념이고 다 떠나서, 상식적으로, 이러면 안되는 거잖아요. 아빠. 아빠도 이건 동의하시잖아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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