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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7년 타계한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하이 C의 제왕’이라고
불렸다. 하이 C(높은 도)
음을 힘들이지 않고 멋지게 불러내는 능력 덕분에 얻은 별명이었다. 하이 C는 보통 사람은 감히 불러볼 엄두도 낼 수 없는 높은 음이다. 인간
한계를 넘은 듯한 하이 C 음을 테너가 시원하게 토해낼 때 관객들은 열광한다.
그런데 이렇게 어려운 하이 C가
무려 아홉 차례나 나오는 곡이 있다. 바로 도니제티의 오페라 ‘연대의
딸’에 등장하는 ‘오늘은 기쁜 날’이라는 아리아다. 주인공 토니오가 사랑하는 연인 마리와 결혼할 수
있게 되자 환희에 차서 부르는 노래다. 이 곡 마지막 부문에서 무려 아홉 차례의 하이 C가 등장한다. 마지막 하이 C는
특히 오랫동안 지속돼 짜릿한 쾌감을 안겨준다. 파바로티는 이 아리아를 특히 잘 불렀다.
이 아리아는 종종 ‘오페라
스토퍼’가 되기도 한다. 잘 불렀을 때 관객들의 열광이 너무
뜨거워서 공연이 잠시 중단될 정도라는 뜻이다. 앙코르 요청이 나올 때도 있다.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페루 출신의 후안 테너 디에고 플로레즈는 2007년
라 스칼라 무대에서 앙코르 요청을 받고 이 곡을 다시 불러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잠깐 사이에 무려 18번이나 하이 C를 부른 것이다.
최근 중국 베이징 국가대극원 오페라하우스에서 중국판 ‘하이 C의 제왕’이 탄생했다. 3월 14일부터 18일까지, 국가대극원이 제작한 오페라 ‘연대의 딸’(중국명 军中女郎)에 출연한 중국인
테너 스이지에(石倚洁)가 시원스런 하이 C 고음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스이지에는 상하이 출신으로 일본과 오스트리아에서 유학했고, 구미
오페라 무대에도 종종 서는 중국의 신세대 테너다. 중국 후난사범대학 음악과 교수로도 재직 중이다.
스이지에는 특히 개막일인 14일
공연에서 ‘오늘은 기쁜 날’을 부른 직후 관객들의 열광적인 환호성이 쏟아지자 이 곡을 다시 한번 불렀다.
두 번 불렀으니 원래대로라면 하이 C가 18차례
되겠지만, 앙코르에서 본래 하이 C가 아닌 부분을 높여 불러
하이 C를 총 19차례 부른 셈이 되었다. 현장에서 감격해 눈물을 흘리는 관객들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음악계는 그 어려운 하이 C를 19회나 불렀으니 ‘대사건’이요, ‘불가사의한
순간’이었다며 흥분된 분위기다.
중국 국가대극원은 직접 제작한 ‘연대의 딸’을 적극적으로 홍보해왔다. 공연 전에는 ‘하이 C’ 아리아에 초점을 맞춘 공연 소개, 테너 인터뷰, 리허설 동영상 등 다양한 홍보 콘텐츠를 제작해 관심을 끌었고, 스이지에가 19차례 하이 C를 부른 공연 장면은 발 빠르게 동영상으로 만들어 내놨다. 테너가 하이 C를 부를 때마다 숫자가 1부터 19까지 올라가는 자막까지 곁들인 이 영상에 네티즌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네티즌 반응 중에 “오페라에서
중국인이 A조, 외국인이
B조를 맡는 건 드문 일이다. 스이지에는 중국의 자랑!”이라고
쓴 내용이 있었다. 한국에서도 대형 오페라 제작할 때 해외에서 초청한 외국인 성악가가 ‘메인’인 A조(개막 공연을 맡는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성악가가 B조를 맡아 출연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인이 A조로 출연하니, 이제 오페라에서도 중국인이 뒤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을
읽을 수 있었다.
중국이 클래식 음악을 ‘서양
부르주아 문화’라고 배척했던 것은 이미 옛 이야기다. 최근중국
클래식 음악계의 양적 질적 성장은 눈부시다. 예술 분야에서도 ‘대국’을 꿈꾸는 중국정부의 과감한 지원, 그리고 거대한 시장과 인재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음악 애호가 저변도 빠르게 두터워지고 있다. 외관부터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는 베이징 국가대극원에서 탄생한 중국판 ‘하이
C의 제왕’은 이 모든 걸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처럼 느껴진다.
*네이버 중국 '엔터트렌드'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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