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종한량(汉良)은 홍콩 출신으로 1995년 가수로 데뷔했고, 타이완을 거쳐 중국 대륙에 진출해 남신으로 불리며 엄청난 인기를 누리는 중국 배우다. 1974년생으로 데뷔를 일찍 한 데다 부지런히 활동하는 편이라 출연작이 굉장히 많다. 나는 종한량을 2015년도 중국 드라마 하이생소묵(何以笙萧默)에서 처음 보고 팬이 되었다.

하이생소묵에서 종한량이 맡은 역은 대학시절 첫사랑이 아무 기별 없이 훌쩍 떠나버린 후, 그녀를 7년간 일편단심 기다리는 순정남이다. 7년만에 돌아온 옛 연인에 대한 원망이 사무쳐 찬 바람 쌩쌩 부는 냉정한 면모를 보이기도 하지만, 일단 마음을 정한 뒤에는 어떤 장애물도 돌파하며 사랑을 지켜내는 직진남이기도 하다. 잘 생기고 돈 잘 버는 변호사인데, 다른 여자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중국에서는 하이생소묵의 인기와 함께 억년을 수행해야 이런 남자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다. 종한량은 이전에 최미적시광(最美的时光)에서도 능력 있는 순정남을 연기한 바 있는데, 캐릭터와 배우의 매력이 잘 맞아떨어진다.  


하이생소묵이후 그가 나온 드라마를 섭렵하고 있는 중인데, 종한량이 촬영을 마친 신작이 세 편이나 방영 대기 중이라 해서 기대가 컸다. 그 중 첫 작품이 최근 중국에서 종영된 일로번화상송(一路繁华相送)이다. ‘본방 사수 수는 없는 형편이라 동영상 사이트에서 편씩 찾아보고 있는 중인데, 시작한 달이 되어가는데 아직 20회까지밖에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 ‘일로번화상송 30회로 중국 드라마 치고는 짧은 편이다. 그러니 하이생소묵 속도였다면 이미 끝까지 보고 복습까지 하고 있었을 텐데, 지지부진하다.


일로번화상송역시 첫사랑을 다루는 로맨스 드라마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하이생소묵이랑 너무 닮았다. ‘하이생소묵에서는 대학 사귀던 남녀 중에 여자가 갑자기 미국으로 떠나는데, ‘일로번화상송에서는 남자(종한량 ) 떠난다. 홀로 남겨진 여자(장수잉 분)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고 살아간다. 그리고 10 , 미국에서 영화감독으로 성공한 남자가, 첫사랑을 찾아 중국으로 돌아온다. (하이생소묵에서는 사진가로 기반을 닦은 여자가 남자친구를 찾아 7년만에 중국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중국에 남겨졌던 여자는 상처가 너무 커서 처음에는 돌아온 남자를 외면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것도 하이생소묵의 남주인공이 처음엔 돌아온 여주인공을 냉대하는 것과 똑같다.

이뿐만이 아니다. 드라마 모두 중국에 남겨진 사람 곁에 /그녀를 오랫동안 짝사랑해온 사람이 등장한다. 그리고 드라마 그녀/그가 미국에 있는 동안 알게 , 역시 그녀/그를 짝사랑하는 /그녀가 있다. 평범하지 않은 가족사가 등장한다는 , 서로 티격태격하고 코믹한 상황을 연출하는 조연 커플이 나온다는 점도 똑같다. 드라마 중간중간 다른 배우들이 연기하는 남녀 주인공의 대학 시절 회상 장면들도 비슷한 느낌이다. 아직 일로번화상송 끝까지 아니지만, 우여곡절 끝에 사람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결합한다는 결말도 크게 다를 같지 않다. 이렇게 비슷한 얘기를 하고 있지만, ‘일로번화상송 하이생소묵보다 극의 짜임새가 성기고 흐름이 매끄럽지 않다. 

솔직히 나는 일로번화상송 종한량한테 크게 매력을 느꼈다. 물론 여전히 종한량은 생겼고, 그가 맡은 주인공은 설정상 멋질 밖에 없는 캐릭터이다. 하지만 종한량이 또다시이런 역을 맡은 아쉽다. 대학 시절 풋풋한 첫사랑을 가슴에 간직하고, 세월이 흘러도 사랑은 변치 않고, 여자 아니면 된다는 일편단심에 능력도 갖춘 남자. 비슷한 설정에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으니 그의 연기도 신선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주인공의 대학친구이자 연적으로 나온 타이완 출신 배우 옌야룬은 1985년생이니 종한량보다 살이나 어리다. 물론 종한량이 소문 동안이긴 하지만 사람이 동년배 친구로 나오는 아무래도 어색하다. 옌야룬은 그냥 젊은 거지만, 종한량은 젊어 보이려고신경 써서 분장한 티가 난다. 종한량은 이제 40 중반에 접어들었다. ‘청춘 우상 드라마출연은 줄이고 나이에 맞는 역을 맡아도 되는 때가 아닐까.

중국에서는 드라마가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 궁금해 찾아보니, 종한량과 옌야룬 팬들은 열광했을지 몰라도, 전반적인 평가는 그리 높지 않다. 시청률은 0.5퍼센트 안팎을 기록했고, 평점 사이트에서도 드라마가 회를 더해갈수록 점수가 계속 떨어져 현재는 10 만점에 5 이하다. 드라마가 방영 전부터 엄청난 관심을 끌었던 것을 생각하면 기대 이하의 성적이다.

이유를 분석한 글들을 찾아보니, 여주인공을 맡은 배우 장수잉이 미스 캐스팅이다, 성우가 더빙한 목소리가 역에 어울리지 않는다(중국 드라마는 동시녹음이 아니고 더빙을 하는데, 홍콩 출신에 타이완에서 활동했던 장한량은 사투리가 있어 거의 대부분 본인이 아니라 성우가 더빙한다), ‘하이생소묵보다 원작소설의 가치가 떨어진다, 요즘 젊은이들은 예전에 사랑 받았던 유형의 드라마를 이상 좋아하지 않는다, 등등을 꼽고 있었다.


배우 출연료가 천정부지로 올라서 제작이 부실해진다는 얘기도 나와서 찾아보니, 드라마에서 종한량이 받은 출연료가 5천만 위안, 우리 돈으로 무려 85억원 가까이 되는 거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회당 출연료가 170 위안, 우리 돈으로 2 8천여만원에 이른다. 이에 비해 장수잉의 출연료는 종한량의 10분의 1 조금 넘는 수준인 550 위안, 9억여원이었다. 아무리 종한량이 대스타라 해도 너무 차이가 크다는 불만이 초기부터 흘러나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장수잉은 드라마의 제작 발표회에 불참했고, 자신의 웨이보에서도 다른 출연작만 언급했을 , ‘일로번화상송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한다. 출연료를 둘러싼 잡음 역시 드라마의 완성도에 분명히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드라마는 남신종한량이 또다시 순정남을 연기하는 도시 로맨스로 일찍부터 화제가 됐고, 이에 힘입어 강소위시, 동방위시에서 각각 8천만위안, 한화 135억원씩에 판권을 사들여 방영했다. 텐센트가 뉴미디어 판권을 1억위안, 한화로는 168 5천만원 이상을 들여 사들였으니, 판권 수입만 2 6천만위안이다. 여기에 이런저런 다른 수입을 합치면 총수입이 3 5천만 위안( 590억원) 이르렀다 한다. 제작비는 1 3천만 위안(219억원) 들었는데, 절반 정도가 배우와 감독 개런티로 지급되었다. 제작사는 세금과 기타 미지급 비용을 정산하고 나면 이윤은 1 2천만 위안(202억원) 정도 것으로 예상했다. 

일로번화상송 비록 제작사에게 커다란 이윤을 안겨줬을지는 모르나, 기존의 성공 공식을 따라 하는 그치고 아류작으로 남을 같다. 기존의 성공 공식을 따라가는 어찌 보면 안전한 선택이다. 종한량의 순정 직진남캐릭터에 열광하는 팬들이 있기에 이런 드라마가 기획되었을 것이고, 관련 기업들은 하이생소묵 성공을 떠올리며 엄청난 판권료를 지불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성공 공식이 현재에도 유효하다는 보장은 없으며, 시청자들은 별다른 혁신 없는 동어반복에 쉽게 피로감을 느낀다. 한국에서 수없이 봐왔던 일이지만, 문화산업의 급속한 성장으로 거대한 시장을 갖게 중국에서도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일로번화상송 팬심 때문에 보고는 있으나, 흥미가 없어져서 언제 끝낼 있을지 모르겠다.  종한량의 다른 출연작 양생, 아문가불가이불우상(凉生, 我们可不可以不忧伤)’ 역시 올해 방영 예정이다. 원래는 지난해 초에 촬영을 마쳤으나 심의를 통과하지 못해 일부 재촬영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전해졌던 드라마이다. (중국은 모든 드라마를 사전 제작하고 심의를 통과해야 방영될 있다.) 종한량이 음악가로 출연한 드라마 행복적이유(幸福的理由)역시 지난해 촬영을 마친 것으로 알려졌으나, 방영 일시는 내년으로 미뤄졌다 한다. 그가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계속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