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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칭다오 올림픽 요트경기장 근처 풍경. 중국 우리 집에서 가까워 자주 산책 가던 곳이다)

남편과 큰 아이는 중국에
, 나와 작은 아이는 한국에. 절반으로 갈라진 이산가족 생활이 이제 두 달 넘어간다. 지난 토요일, 휴일 당직근무 중인데 중국에서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중국의 집에 와서 청소와 빨래, 설거지를 도와주는 가사 도우미 중국인 아줌마로부터 온 것이었다.

 
물이 안 나오는데 어떻게 하죠?”
 
중국 집에 물이 안 나오면 중국에 있는 남편이나 딸이 알아서 할 일이지 왜 서울에 있는 나한테 연락을 해?’ 하고 고개를 갸우뚱했는데, 곧바로 메시지가 이어졌다.
 
남편 분하고 연락이 안돼요. 물 안 나오면 일 못하는데 어쩌죠?”

 
그러고 보니 토요일인데 남편은 일이 많아서 출근한다 했고, 아이도 학교에서 행사가 있어서 봉사하러 간다 했었다. 중국 우리 집은 전기. 수도, 가스비를 모두 선불로 낸다. 한 달에 한 번씩 관리 사무소에서 카드를 충전하고 이 카드를 계량기에 삽입하든지 접촉시키면 된다. 그런데 관리사무소는 오전 9시부터 5시까지 문을 여니 남편이나 딸이나 대개 집에 없는 시간이다. 그러니 주말에 관리사무소를 갈 수밖에 없는데, 최근 둘 다 바빠서 주말에도 집에 잘 없었다.


 그나마 전기 계량기는 복도에 노출돼 있어서 오다가다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할 수 있는데, 수도 계량기는 아파트 엘리베이터 옆 작은 창고 같은 공간 안에 있어서 일부러 문을 열어서 들여다보지 않는 한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물이 모자라니 충전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사실 수도계량기가 들어있는 창고는 사람들이 내다 버린 쓰레기와 잡동사니가 쌓여 발 디딜 틈이 없고 전등도 없어서 어두컴컴하다
. 이 곳이 하도 지저분하고 어두컴컴해서 나도 평소에 수도 계량기를 잘 확인하지 않았다. 그냥 한 달에 한번씩 일정액을 카드에 채워 넣고, 매번 고개를 돌린 채 입구에서 손만 뻗어 더듬더듬 카드를 계량기에 대고 충전이 완료됐다는 뜻으로 소리만 들리면 곧장 나오곤 했다.  


 
. 어떻게 하지. 오늘은 물도 안 나오니 일 그만하고 그만 집에 돌아가라고 할까.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물이 안 나오면 남편이나 딸이 귀가해서도 낭패다. 그 때는 관리사무소가 문을 닫아 충전하고 싶어도 못 할 텐데. 결국 아줌마한테 수도 카드 충전을 부탁해야 했다.

일단은 아줌마한테 집의 수도카드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는 게 첫 번째 순서였다. 다행히 거실 장식장에 놓아둔 카드를 아줌마가 별 어려움 없이 찾아냈다. 다음으론 그 카드를 들고 관리사무소로 가서 100위안어치 충전해달라고 부탁했다. 당장 돈이 없으니 일단 아줌마 돈으로 사면 나중에 주겠다고 했고. 다행히 관리사무소는 내가 사는 아파트 같은 동 1층에 있으니, 멀지는 않았다.


다음 차례는 실제로 이 카드를 이용해 물을 충전하는 것인데, 이 과정이 가장 어려웠다. 우선 창고를 찾고, 문을 열어서 그 안쪽의 수도 계량기에 카드를 접촉시키면 된다고 얘기했다. 수도 계량기도 두 집 것이 같이 있는데 앞쪽의 계량기가 우리 집 것이라고 알려줬다. ‘이제 됐어요?’ 물었는데 안 된다고 한다. 몇 번을 다시 해도 안 된단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창고가 한 층에 두 곳 있다는 게 떠올랐다. 아줌마가 혹시 다른 창고를 연 게 아닐까?

과연 그랬다. 아줌마는 우리 집 반대편 통로에 있는 창고에 가 있었다. 계속 애먼 남의 집 수도 계량기에 카드를 대고 충전하려 했으니 될 리가 없다. 그 창고가 아니라 우리 집으로 가는 통로 가까이 있는 창고라고 알려줬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 도착한 메시지. ‘물 나와요!’ 휴우,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내가 중국어로 가장 오랜 시간 한 통화였다.
 
되도록 근무 시간에는 사적인 통화를 하지 않으려 하지만, 사무실 밖으로 나가 휴대폰으로 통화하려니 잡음이 많아 소통이 어려웠고, 긴 얘기를 문자로 하려니 그것도 곤란했다. 어쩔 수 없이 사무실 안에서 전화통을 붙들고 있었다. 수도요금 내는 얘기는 전혀 직장에 어울리는 화제가 아니다. 혹시 회사 동료들이 내 통화 내용을 듣고 비웃지나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다행인 것은 주말이라 근무자가 그리 많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중국어를 알아듣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말이 서투른데다 내용도 수도 요금 내는 얘기였으니, 알아듣는 사람이 있었다면 좀 창피했을 듯.

 
남편이 아직 중국에서 일을 하고 있고, 나도 더 이상 휴직을 연장할 수 없었으니, 이산가족 생활은 필연이었다. 쉽지 않으리라는 생각은 했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예상치 못했던 문제도 많다. 서울에서 일하며 중국 집 수도 끊긴 것까지 해결하려 하니, 참 간단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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