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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국어를 하는 외국인에게 호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한국어 실력을 바탕으로 방송계에 진출해 유명인이 된 주한 외국인들도 꽤 있다. 그러니 유명한 외국 음악가들이 한국 노래를 한국어로 부른다면, 호감도는 급상승할 것이다. 실제로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 음악가들 중에 앙코르로 한국 노래를 부르는 경우를 요즘 종종 볼 수 있다. 한국인 관객에 대한 깜짝 선물 같은 앙코르다. 나는 지난 토요일 8시 뉴스에 외국 음악가들의 한국 노래 앙코르에 대해 기사를 썼고, 좀 더 자세한 내용을 나누고 싶어 이 글을 쓰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 공연한 영국의 남성 아카펠라 그룹 킹스싱어즈(‘아카펠라’는 통상 무반주로 노래하는 것을 말하는데, 원래는 ‘교회풍으로’라는 뜻이다. 중세 교회에서 무반주 합창으로 성가를 불렀던 데서 나온 말이다.)는 앙코르로 ‘마법의 성’을 불렀다. 약간 발음이 어색하긴 하지만, 원곡의 느낌을 전달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관객석에서는 탄성이 쏟아졌다.
킹스싱어즈가 ‘마법의 성’을 부르기 시작한 것은 1996년이니 벌써 15년 전이다. 1996년 킹스싱어즈는 한국 음반 관계자의 추천으로 이 곡을 ‘Spirit Voices’라는 음반에 한국 팬들을 위해 녹음했다. 한국에서 발매된 음반에는 ‘마법의 성’이 타이틀 곡으로 실렸다. ‘마법의 성’이 수록된 음반으로 킹스싱어즈의 인기는 국내에서 급상승했다. 킹스싱어즈는 이후 내한공연 때마다 이 노래를 앙코르로 선사했다.
그럼 한국 음반사에서는 왜 '마법의 성'을 추천해 줬을까. 지금은 음반업계를 떠난 당시 관계자를 수소문해 직접 물어봤다. 그는 ‘마법의 성’이 굉장히 큰 인기를 끌어 한국인들 대다수가 알고 있는 곡이었던 데다, 선율이 유려하고 아카펠라 편곡에 알맞은 곡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편곡은 킹스싱어즈 측에서 직접 했다. ‘마법의 성’을 킹스싱어즈에게 추천해준 이 관계자가 경상도 출신이었던 까닭에 킹스싱어즈의 ‘마법의 성’에는 경상도 사투리의 흔적이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돌기도 했다.
킹스싱어즈 이후 ‘마법의 성’은 다른 해외 뮤지션들에게도 내한공연 단골 레퍼토리가 되었다. 빈 소년합창단도 앙코르로 ‘마법의 성’을 부른 적이 있다. 지난해 내한했던 아카펠라 그룹 ‘b-보컬’ 역시 ‘마법의 성’을 불렀다. 사실 내가 이번 기사를 쓰게 된 계기가 바로 ‘마법의 성’이었다. 몇 년간 공연장을 다니다 보니 ‘마법의 성’이 앙코르 곡으로 종종 불리고 있었다. 그리고 ‘원조’는 바로 킹스싱어즈였다. 킹스싱어즈와 인터뷰할 때 다른 아티스트들도 ‘마법의 성’을 종종 부르고 있다고 했더니 깜짝 놀라며 좋아했다.
‘아리랑’도 자주 불린다. 스웨덴의 아카펠라 그룹으로 국내에서 인기 높은 리얼그룹은 아리랑을 내한공연에서 불렀다. 독특한 편곡으로 색다른 느낌이 난다. ‘고향의 봄’ 역시 종종 불리는 곡이다. 지금 한국에서 공연하고 있는 파리 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은 ‘고향의 봄’을 한국어로 불러서 관객들을 놀라게 했다. 이들의 리허설을 취재했는데, 한국어 가사의 발음을 영문으로 표기한 악보로 열심히 연습하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Na e Sal-deune Go Yang-une Co Pi Neun San Col~(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이런 식으로.
때로는 아이돌 그룹의 최신 인기곡을 부르는 경우도 있다. b-보컬 그룹은 '마법의 성'과 함께 원더걸스의 ‘노바디’와 소녀시대의 ‘Gee’를 메들리로 불렀다. 아카펠라로 편곡하고, 흥겨운 춤까지 곁들여 관객들의 열띤 호응을 이끌어냈다.
이번 기사에 소개하진 않았지만, 우리 가곡인 ‘그리운 금강산’ 역시 한국을 찾아온 성악가들이 자주 부르는 곡이다. 1995년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는 1995년 잠실 펜싱 경기장에서 열렸던 내한 공연에서 ‘깜짝 쇼’를 연출했다. 자신의 발음을 양해해 달라며 "You have to forgive me for my pronunciation"이라는 애교 섞인 말까지 곁들여, ‘그리운 금강산’을 앙코르 곡으로 선사했던 것이다. 발음도 예상보다 훌륭했을 뿐더러, 원곡의 정서를 잘 표현해 내서 큰 갈채를 받았다. 플라시도 도밍고는 2009년에도 내한공연에서 이 곡을 불렀다.
(*플라시도 도밍고의 ‘그리운 금강산’ 동영상(1995). 홍혜경. 연광철이 함께 했다.)
취재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플라시도 도밍고를 포함한 3 테너의 일본 공연에서도 이 곡 ‘그리운 금강산’이 앙코르로 불린 적이 있다고 한다. 선율이 아름답고 극적인 곡이라 한국이 아닌 곳에서까지 이 곡이 불린 셈이다. 소프라노 이네사 갈란테 역시 내한공연에서 ‘그리운 금강산’을 불렀고,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는 ‘마이 월드’라는 음반에서 이 곡을 드라마틱하게 소화해 냈다.
사실 나는 2002년에도 한국 노래를 음반으로 낸 성악가들의 이야기를 모아 기사로 쓴 바 있다. 음반이 나온 지 오래된 것들이 많아, 이번 기사에서는 최근 내한공연에서 앙코르로 여러 차례 불렸던 곡들만 골라 기사로 썼다. 하지만 음반만 살펴봐도 킹스 싱어즈가 ‘마법의 성’을 녹음한 것 외에도 많은 사례가 있다.
테너 호세 카레라스의 음반 'Around the world'에는 한국인의 애창곡 ‘사랑으로’가 실려 있다. 카운터테너 안드레아스 숄은 ‘방랑하는 이방인’이라는 음반에서 ‘새야 새야’, ‘아리랑’을 한국어로 불렀다. 카운터 테너 특유의 신비로운 미성이 우리 민요의 리듬과 독특하게 어울린다. 소프라노 바바라 보니는 ‘바바라 보니의 초상’이라는 음반에서 ‘님이 오시는지’ ‘진달래꽃’ 등 한국 가곡 5곡을 불렀다. 한국 가곡의 정서를 아주 우아하게 표현해냈고, 한국어 딕션이 오히려 한국인 성악가보다 더 정확하다는 찬사를 들었다.
하지만 외국인들이 부르는 한국 노래가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다. 외국어에는 잘 없는 ‘의’ ‘으’ ‘어’ 발음이 섬세하게 구분되지 않을 뿐더러, 발음이 훌륭하더라도 낯선 외국어를 사용하는 데서 오는 어색함이 묻어날 때가 많다. 하지만 평소에 듣던 것과 다른 해석이 신선하고, 외국인들이 한국 노래를 연습하기 위해 들였을 공과 노력을 생각하면 더욱 호감이 간다.
외국인 뮤지션들이 한국 노래를 부르는 것은 이들이 한국의 음악 시장을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공연 기획사와 음반사 관계자들은 해외 뮤지션들의 내한공연이나 음반 녹음 때, 한국 애창곡을 골라달라는 선곡 요청을 자주 받는다. 선곡의 기준은 간단하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아는 좋은 노래’라는 것이다. 선율이 유려하면서도 단순하고, 가사가 외국인이 발음하기에 복잡하지 않은 곡, 불렀을 때 관객 반응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한국인 대다수가 아는 노래여야 한다. ‘마법의 성’이나 ‘아리랑’ 같은 애창곡이 자주 불리는 이유를 알 수 있다.
‘마법의 성’을 부른 킹스싱어즈를 인터뷰했더니, 한국에 올 때마다 이 노래를 불러왔지만, 여전히 낯선 외국어로 노래하는 것은 쉽지만은 않다고 했다. 출중한 발음과 가창력으로 관객들을 매료시킨 킹스 싱어즈의 테너 폴 피닉스는 ‘믿을 수 있나요 나의 꿈 속에서~’이렇게 부르고 또 부르면서 일종의 ‘근육 기억’을 머릿속에 심기 위해 노력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마법의 성’ 외에도 다른 한국 노래를 앙코르 레퍼토리로 개발해야 할 것 같다고 한다. 다음 번 킹스싱어즈의 내한공연에서는 또 어떤 한국 노래가 불릴지 기대해 봐야겠다.
*SBS 뉴스 웹사이트에 취재파일로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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