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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고음악의 권위자인 지휘자 르네 야콥스가 처음으로 한국에서 공연했다. 바흐B단조 미사를 소프라노 임선혜 씨를 비롯한 솔리스트들과 콘체르토 쾰른, 베를린 실내 방송 합창단과 함께 연주했다. 이 공연은 한양대 음악연구소가 주최한 국제 바흐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열렸다. 이 페스티벌에는 고음악 전문 연주자가 대거 참여했다. 



이번주에는 이탈리아의 바로크 음악 앙상블 '에우로파 갈란테'가 공연한다. (4일 LG아트센터, 6일 성남아트센터, 이밖에 지방 공연도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파비오 비온디가 이끄는 이 단체는 옛 악기를 사용해 혁신적인 연주를 들려준다. 아주 오래 전, 한 음반매장에서 이들이 연주한 비발디의 '사계'를 처음 들었을 때를 잊지 못한다. 분명히 친숙한 비발디의 '사계' 멜로디인데, 어찌나 역동적이고 생생하게 연주하는지, 귀가 쫑긋해졌다. 바로 매장 직원에게 누구 연주인지 물어보고는 음반을 샀던 기억이 있다. 

'사계'의 혁신적인 연주로 유명해진 이 단체는 이번이 세번째 내한이다. 이번엔 영국 출신의 학구적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와 함께 한다. 옥스포드 대학 역사학 박사라는 색다른 이력을 지닌 그는 이 공연에서 '역사가'의 풍모를 보여준다. 바로크 시대를 풍미했던 '쓰리 테너'의 음악세계를 재조명하는 것이다. 18세기에도 파바로티, 도밍고, 카레라스에 버금가는 '쓰리 테너'가 있었다. 이안 보스트리지는 '18세기 쓰리 테너'들이 즐겨 불렀던 바로크 아리아를 새롭게 발굴해 부른다.  그러고 보니 비슷한 기간에 고음악 공연들이 잇따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오늘 아침 뉴스 공연 리포트에 에우로파 갈란테 & 이안 보스트리지 공연을 소개했다. 다른 공연과 함께 묶는 형식의 리포트라 아주 긴 시간을 할애하진 못했지만, 이 짧은 기사를 쓰느라 상당히 고민했다. 기껏해야 몇 문장 되는 방송 기사에서, 단순히 누가 와서 뭘 연주한다는 내용으로는 이 음악회의 '의미'를 전달하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니 내 고민의 핵심은 짧은 방송 기사에서 '고음악'의 의미를 어떻게 설명하느냐에 있었다. 

다음이 내가 쓴 아침 뉴스 기사다. 


 "파비오 비온디가 이끄는 바로크 음악 앙상블 '에우로파 갈란테'는 옛 것이라 오히려 더 새로운 음악을 들려줍니다.


모차르트, 베토벤 같은 고전파와 그 이후의 음악에 비해 덜 알려졌던 18세기 바로크 음악을 발굴해 옛 악기로 혁신적인 연주를 선보입니다.

이미 두 차례 내한공연에서 전석매진을 기록한 이들의 세번째 내한공연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테너 중 한 명인 이안 보스트리지와 동행합니다.

옥스포드대 역사학 박사라는 색다른 이력으로도 유명한 그는 이번엔 18세기 쓰리 테너의 음악세계를 파고들었습니다.

당대의 쓰리 테너, 보르지니, 파브리, 비어드가 불렀던 바로크 아리아들을 새롭게 해석해 부릅니다."


'애걔, 겨우 이거 쓰느라 그렇게 고민했어?' 할지도 모르겠다. 이 짧은 기사에 그렇게 고민했다니, 나의 무능력을 탓해도 할 말이 없다. 다만 이 기사에는 2007년에도 방송기사에서 '고음악'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고민했던 내 경험이 녹아있다는 얘기는 덧붙이고 싶다. 만약 그 때의 경험이 없었다면 이 기사는 아마 단순히 연주자와 연주곡을 소개하는 정도에 그쳤을 것이다. '옛 것이라 오히려 더 새로운', 그리고 '모차르트, 베토벤 같은 고전파와 그 이후 음악에 비해 덜 알려졌던', '옛 악기로' 같은 표현은 당시 내 고민의 결과물을 압축해 이번 기사에 반영한 것이다.    


2007년 6월, 나는 8시 뉴스에 '고음악 열풍/그 시대 그 소리'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낸 적이 있다. 그리고 이 기사를 쓰기 위해 취재한 과정과 나의 고민을 옛 블로그에 '시시콜콜하게' 적었다. 4년도 더 지난 지금, 당시 썼던 글을 읽어보니 기사 쓰기까지의 과정이 생생하게 기억 난다.

문서 파일을 찾기 힘들어 인터넷에서 당시의 내 글을 검색하는 과정에서, 이 글이 모 포탈의 지식검색에서 '고음악이 무엇인가요?'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올려져 있는 것을 방금 발견했다. 누가 그랬는지, 출처도 제대로 밝히지 않은 채 통째로 내 글을 긁어다 올린 것을 보고 기분이 상하긴 했지만(이럴 땐 어떻게 대처하는 게 좋을지? 혹시 아시는 분?), 내 글이 '고음악이 무엇인지'에 대한 기초적인 설명은 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오래 전 글이지만, 당시에 쓴 글을 이 블로그에 다시 옮겨오기로 했다. 이 포스팅이 너무 길어질 것 같으니 다음 포스팅(2007년, '고음악'이 뭔데요?)으로 올릴 예정이다. 이번에도 역시 짧은 기사로는 아쉬움이 많이 남기 때문이다. 4년 전 글이라는 걸 감안하고 읽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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