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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에서

예쁜 강주미, 고마워요!

soohyun 2011. 11. 29. 09:50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실내관현악단의 공연을 다녀왔다.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 강주미가 협연하는 무대였다. 떠오르는 유망주 강주미의 연주를 본 적이 없어 이번에는 꼭 보리라 별렀던 공연이었다. 

하지만 어제 저녁 문화부에 기사가 많아 도저히 일찍 공연 보러 나설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목동에서 늦어도 6시 반에는 나가야 공연장인 예술의전당에 여유있게 도착해 8시 공연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일을 마치고 나니 7시 반. 피곤하기도 하고, 늦기도 했고, 그냥 가지 말까 하는 생각이 뭉클뭉클 솟아올랐다. 예술의전당에서 공연 끝나면 집까지 그 멀고 먼 길, 아무리 빨리 도착해도 밤 11시가 넘을 텐데..... 저녁밥도 못 먹었는데.....에이. 가지 말아야겠다! 

하지만 공연 프로그램을 보니 강주미는 후반에 등장하게 돼 있었다. 9시 이전까지만 도착하면 볼 수 있다. 그냥 가볼까. 망설이는 마음에 일종의 '의무감' 같은 게 작동했다. 명색이 음악 담당 기자인데,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젊은 한국인 연주자의 연주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은 집으로 향하던 차를 돌려 예술의전당으로. 아 피곤해, 내 팔자야, 하면서.

다행히 길이 뻥 뚫려 그렇게 많이 늦지는 않았다. 첫 곡만 놓치고, 둘째 곡인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5번을 연주할 때 입장했다.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실내관현악단의 소리는 정갈하고 편안했다. 유서깊은 명문 오케스트라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저력이 느껴졌다. 음악은 좋았는데, 문제는 먹을 것 달라고 꼬르륵거리는 내 뱃속이었다. 

쉬는 시간에 매점에서 산 빵으로 저녁을 부랴부랴 때우고, 다시 입장. 후반부는 강주미가 비발디의 '사계'를 협연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강주미가 무대에 등장하자마자 눈이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강주미는 화장품 광고 모델로 발탁됐다는 외모도 매력적이었지만, 연주도 매력적이었다. 어제 '사계'는,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스타일이 원래 이런가 싶게 경쾌하고 빠르게 밀어붙이는 스타일이었는데, 강주미는 테크닉이 능란하되 과시하지 않고, 풋풋하고 신선한 연주를 들려줬다.  

빵 반조각이 모자랐는지, 배는 한동안 더 꼬르륵거렸다가 '가을'이 연주될 무렵 좀 편안해졌다. 혼자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지금 나는 공연으로 주린 배를 채우고 있구나 싶어서. 

강주미는 열광적인 박수를 받고 '여름'의 질풍같은 3악장을 앙코르로 다시 들려줬다. 관현악단은 강주미가 퇴장한 후에도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를 또 연주했다. 연주도 좋았지만, 나는 마지막 음의 잔향이 사라질 때까지, 지휘자의 손이 내려올 때까지 숨죽이고 기다려준 객석의 분위기에 또다시 감동했다. 그러고 보면 이 공연은 이른바 '유명세'는 좀 떨어지지만, 진지한 관객들이 모여든, 아주 내실있고 알찬 공연이었던 것 같다. 

로비에서 음악계 인사들과 만나 잠깐 수다를 떨고, 사인회를 마친 강주미와 인사를 나누고, 집에 돌아오니 밤 11시 반. 한밤중에 다음날 아침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밥 안치고, 김치 찌개 끓이면서, 결국 나는 공연 담당기자라는 나의 '일'을 꽤 즐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 담당기자가 공연 보는 걸 놀러다니는 걸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하지만 공연 담당기자에겐 공연 관람이 '일'이다. 그것도 엄청난 시간과 노력과 체력이 필요한 '일'이다. 힘들어서 이 일을 게을리하면 스트레스가 극심해진다. 내가 담당한 분야의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고 뒷방 늙은이로 전락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취재원들은 '현장'에 나타나지 않는 기자를 '인정'하지 않는다. 공연 담당기자에겐 공연장이 현장이다. 

사실 요즘 나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다. 저녁 시간이 바쁜 방송기자의 업무 특성상 평일에는 공연 보러 가기가 쉽지 않다. 어쩌다 시간이 나도, 이젠 내가 힘들어서 못 가는 경우가 많다. 만약 어제 공연을 보지 않았다면 몸은 좀 편했을지 모르지만 또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이래저래 공연 담당기자 제대로 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내가 공연 보는 걸 '원래' 좋아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의무감' 때문에 공연장에 가지만, 공연 보고 나면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일 터이다. 

문화부 오기 전이나 영국 연수 시절의 경험을 되돌아보면 일이 아니었으면 더 편안하게 즐길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은 있다. 하지만 공연 취재를 맡고 있는 덕분에 다양한 공연을 접할 수 있으니 그건 정말 고마운 일이다. 공연 관람이 '일'이 돼 버렸지만, '현장'이 주는 생생한 감동은 지금도 느낄 수 있다. 갈까말까 망설이다 보러 간 어제의 공연이 다시한번 일깨워준 사실. 

외모도 연주도 매력적인 강주미, 그리고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실내관현악단, 크고 화려한 공연은 아니었지만, 다시한번 공연 보는 즐거움을 일깨워준 사람들.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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