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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포켓몬에 푹 빠졌다. 날마다 포켓몬 카드, 포켓몬 피규어를 사달라고 조른다. 포켓몬은 정말 종류도 많다. 몇 번 카드를 사줬는데도 아직도 없는 게 많다며 또 사달라고 졸라댄다. 며칠 전 내가 휴일 근무 중일 때, 딸은 아빠에게 하루 종일 포켓몬 카드 사 달라고 조르다가, 당분간은 집에 있는 거 갖고 놀라고 했더니 이렇게 '협박'을 했단다.  

 "나 그럼 카드 사 줄 때까지 밥 안 먹을 거야!"

"그래, 먹지 마!" 하는 아빠의 단호한 대응에 딸은 제 방에 들어가 한동안 나오지 않더니, 밥 때가 좀 지나니 배가 고픈지 머쓱해진 얼굴로 나왔단다, 밥 달라며. 딸의 어설픈 '협박'은 먹혀들지 않았다.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을 같이 본 딸이 공연 본 지 한참 지난 어제 갑자기 생각이 났는지, 이렇게 물어왔다. 역시 '협박' 얘기다.    

"엄마, '아가씨와 건달들'에 나온 여자 있잖아, 그 여자가 왜 죽어버리겠다고 하는 거야?"

'아가씨와 건달들'은 정말 오래 전에 대학로에서 윤석화 씨가 아들레이드 역으로 출연했던 공연을 본 후로 처음 보는 것이었다. 이번 공연에선 김영주(위 포스터)와 옥주현이 아들레이드로 나왔다. 아들레이드는 14년째 결혼을 기다리며 사는 클럽 가수다. 남자친구 네이슨과 오래 전에 약혼을 했건만 네이슨은 도박에 빠져 결혼할 생각이 없고, 아들레이드는 14년째 결혼하자고 조르고 있는 상태다. 그동안 친정 엄마한테는 결혼도 하고 아기도 여럿 낳았다고 거짓말을 해왔다. 아들레이드는 틈만 나면 14년째 약혼 상태인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네이슨을 원망하는데, 이런 심정을 그린 노래 중에 후렴구가 '죽어버릴 거야!'인 곡이 있었다. 딸은 그 노래를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아, 그거? 진짜로 죽겠다는 게 아니야. 그냥 남자친구 협박하는 거지. "

"협박이 뭔데?"

"협박은 겁을 준다는 뜻이야. 이 여자가 죽어버리겠다고 협박하면 남자친구가 자기 여자친구가 진짜 죽을까 봐 겁나서 '그러지 마, 네가 하자는 대로 할게' 할 것 같아서 그러는 거야."

"으응....."

"너도 며칠 전에 아빠 협박했다며? 포켓몬 카드 안 사주면 밥 안 먹겠다고. 그거랑 비슷한 거네."

"아니야! 그건 달라!"

"근데 너 진짜로 카드 사줄 때까지 굶을 생각이었어? 아니지? 그냥 밥 안 먹겠다고 하면 아빠가 걱정돼서 사줄 것 같아서 그런 거지?"

딸은 겸연쩍은 듯 피시식 웃더니 다시 물어왔다. 

"근데 그 여자는 왜 자꾸 자꾸 죽어버리겠다고 하는 거야? 하도 여러 번 그래서 몇 번인가 세다가 잊어버렸어."

"그건 노래라서 그래. 노래는 원래 가사를 자꾸 되풀이하거든. 말로 할 때보다 더."

생각지 못한 질문을 던져대는 아이. 대답이 어려울 때도 있지만, 딸과 대화하는 건 재미있다. 이 글을 쓰면서도 혼자 슬그머니 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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