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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life in peace
You may say that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I hope someday you'll join us
And the world will be as one

 상상해 보세요. 모든 이들이 평화롭게 사는 것을
당신은 내가 몽상가라고 할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나 혼자만이 아니죠.
언젠가 당신도 우리와 함께 하길 바라요.
그러면 세상은 하나가 될 거예요. (존 레논 '이매진' 중에서)


'이매진 존 레논' 전이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습니다(~3월10일). 저는 예술의전당에 공연 보러 갔다가 시간이 남아 이 전시를 보게 되었는데요, 예상보다 훨씬 흥미로운 전시였습니다. 사진과 영상, 그림, 앨범, 존 레논이 사용했던 악기, 그가 직접 그린 그림 등 다양한 자료 300여 점을 전시해 비틀즈 시절과 그 이후 존 레논의 삶과 예술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저는 비틀즈 음악을 좋아하기는 해도 특별히 존 레논에 관심이 많은 편은 아니었는데, 이 전시를 통해 존 레논을 새롭게 발견했고 부인 오노 요코에 대해서도 관심이 생겼습니다. 존 레논은 자신의 인생을 1940년 출생, 1966년 오노 요코와 만남, 이렇게 정리한 적이 있는데요, 존 레논은 일본인 전위예술가 오노 요코와 만나면서 음악을 넘어 전방위 예술가로, 사회운동가로 새로운 길을 가게 됩니다. 제가 이 전시에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을 몇 가지 정리해 봤습니다.

 1. 존 레논은 미술을 전공했다.

 가족을 그린 존 레논 작품 존 레논은 1957년 영국 리버풀 미술대학에 입학해 시각예술을 전공했습니다. 비록 밴드 활동 때문에 중퇴하기는 했지만요. 그의 작품들은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 MoMA가 소장하고 있기도 하지요. 국내 전시회에는 그가 오노 요코와 아들 션을 위해 그린 그림들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퀸의 프레드 머큐리 역시 미술을 전공했던 사실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2. 존 레논의 어머니는 음주운전 경찰차에 치어 사망했다.

 존 레논은 부모의 불화로 이모 손에 자라났습니다. 존 레논의 어머니는 존이 20살이 되던 해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경찰관이 음주 운전한 차에 치인 겁니다. 이 경찰관은 음주 사망사고를 내고도 무죄로 풀려났다고 합니다. 이 사고를 계기로 사회 부조리에 대한 존 레논의 반감이 커졌다고 하네요.

 3. 비틀즈는 공연장의 흑백 인종차별에 반대해 공연을 취소했다.

 비틀즈가 활동하던 시대는 인종차별이 극심했습니다. 1964년 비틀즈의 미국 투어 중 존 레논은 '분리된 청중에 대해서는 연주할 의무가 없다'는 문구를 계약서에 추가했습니다. 그러나 1965년 비틀즈 공연을 담당했던 기획사는 관람석을 백인 구역과 흑인 구역으로 분리했고, 비틀즈는 이에 반대하며 공연 취소를 통보했습니다. 결국 기획사는 관람석의 흑백 분리 구역을 폐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4. 존 레논의 안경은 원래 촌스러움과 서민의 상징이었다.

존 레논은 1966년 리처드 레스터 감독의 영화에 출연합니다. 이 영화는 전쟁의 승리가 결국 병사들의 죽음을 대가로 이뤄진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반전 영화였습니다. 존 레논이 맡은 배역은 '할머니 안경(Granny Glass)'을 끼고 나오는데요, 동그란 이 안경은 원래 영국 정부가 저소득층에게 지원해주던 것으로, '할머니 안경'으로 불리며 촌스러움과 서민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영화 이전에는 안경을 쓰지 않았던 존 레논은 영화 촬영이 끝난 뒤에도 이 '할머니 안경'을 계속 끼고 다녔습니다. '할머니 안경'은 이후 예술가뿐 아니라 사회운동가로서 활동한 존 레논의 상징처럼 되어버렸습니다.


 5. 존 레논은 미국 입국을 거부당한 적이 있다.

존 레논은 반전영화에 출연했을 뿐 아니라 1965년 비틀즈 멤버로서 받은 대영제국 훈장을 4년 후에 반납했습니다. 영국 정부의 비아프라 내전 간섭과 베트남전 지원에 항의하는 뜻에서였습니다. 존 레논은 오노 요코와 1969년 결혼하고 암스테르담으로 신혼여행을 떠나 '베드-인(Bed-In)'이라는 퍼포먼스를 벌입니다. '베드-인'은 시위하는 사람들이 체포되거나, 퇴거당하거나, 혹은 요구가 충족될 때까지 앉아서 농성하는 비폭력 저항 방법 '싯-인(Sit-In)'에서 파생된 평화 시위였습니다. 존 레논과 오노 요코는 미국에서 이 시위를 이어가려 했지만, 반전 운동을 불편하게 여긴 미국 당국은 입국을 거부했고, 두 사람은 대신 캐나다로 가서 시위를 계속합니다. 이때 존 레논이 발표한 '평화에 기회를 주세요(Give Peace a Chance)'는 이후 반전 운동의 주제가처럼 불리게 됩니다.


당시 캐나다 토론토에 살던 14살짜리 소년 제리 레비아탄은 존 레논이 묵는 호텔에 숨어 들어가 30분간 존 레논을 인터뷰하고 이를 녹음했습니다. 미국 입국 거부 사건을 궁금해하는 소년에게 존 레논이 차근차근 답을 해줍니다. 이로부터 38년이 지난 2007년, 존 레논의 목소리에 그래픽을 입힌 단편 애니메이션 '나는 존 레논을 만났다(I Met the Walrus)'이 나왔습니다. Walrus는 '해마'라는 뜻인데, 비틀즈의 노래 중 ''I am the Walrus'라는 곡이 있어 여기서 따온 제목인 듯합니다. 베드-인 퍼포먼스를 재현한 전시공간에서 이 애니메이션을 감상할 수 있고, 유튜브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나는 존 레논을 만났다' (▶ https://youtu.be/jmR0V6s3NKk)

 6. 존 레논은 피살 5시간 전에 롤링스톤 표지 사진을 찍었다.

롤링스톤은 1967년 창간호에 반전 영화에 출연한 존 레논의 모습을 표지로 썼습니다. 롤링스톤은 1980년 존 레논에게 표지 모델이 되어달라고 요청했고, 존 레논은 오노 요코와 함께 찍는다는 조건으로 이를 수락합니다. 표지 사진 촬영을 맡은 사진작가 애니 레보비츠는 존 레논에게 이렇게 요청했습니다.

 "요코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표현해 봐요."

존 레논은 그 자리에서 외투를 벗고, 바지를 벗고, 속옷까지 벗더니, 마치 태아 같은 모습으로 웅크린 채 오노 요코를 껴안고 뺨에 입을 맞췄습니다. 사진 촬영 5시간 후, 존 레논은 뉴욕 자신의 집 앞에서, 존 레논의 팬이라고 주장한 마크 채프먼의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롤링스톤은 1981년 1월호 표지에 이 사진을 올리며 존 레논을 추모했습니다.


애니 레보비츠는 한국에서도 사진전이 열렸던 유명 사진작가입니다. 데미 무어의 임신한 모습을 찍은 베니티 페어의 표지 사진이 바로 애니 레보비츠의 작품이었습니다. 존 레논과 오노 요코의 롤링스톤 표지 사진도 유명해서 이전에 본 기억이 있습니다만, 사연을 알고 나니 달리 보였습니다. 존 레논의 애틋한 사랑이 느껴지는 듯했고, 가슴이 아파왔습니다.

*SBS 뉴스웹사이트 취재파일로 쓴 글입니다. 사진은 모두 @김수현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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