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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열풍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영화의 흥행 이유에 대한 분석 기사는 이미 수없이 나왔고요, 저는 지난 주말에 프레디 머큐리의 삶과 퀸의 음악이 영화 외에도 발레와 뮤지컬, 클래식 음악 등 다른 장르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끊임없이 새로운 작품이 탄생하고 있다는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처음 이 기사를 쓰겠다고 생각한 건 퀸의 음악으로 만들어진
발레 포 라이프내한공연을 보고 큰 감동을 받은 기억이 생생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사를 쓰기 위해 취재하던 중에 프레디 머큐리 자신이 발레 공연을 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됐습니다


 
프레디 머큐리는 1979 10 7, 영국 로열 발레단이 런던 콜리세움 극장에서 열었던 갈라 공연에 출연했습니다. 로열 발레단이 프레디 머큐리에게 먼저 출연을 제안했는데요, ‘롤링스톤즈잡지 기사에 따르면 프레디 머큐리는 발레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처음에는 이 제안에 응할 생각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퀸의 음반이 나온 EMI의 조셉 록우드 대표는 마침 로열 발레단의 이사회 의장도 맡고 있었고, 록우드가 프레디 머큐리의 발레에 대한 관심에 불을 확 붙인 덕분에 이 공연이 성사될 수 있었습니다. 

 
로열 발레단의 스타 무용수였으며 예술감독을 지내기도 한 웨인 이글링의 인터뷰 영상을 유튜브에서 보게 되었는데, 내용이 참 흥미로웠습니다. 웨인 이글링은 보헤미안 랩소디를 같이 공연하면서 프레디 머큐리를 위해 안무해 주겠다고 했고, 그는 아주 기뻐하면서 발레 의상과 슈즈를 착용하고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로 연습장에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웨인 이글링이 프레디 머큐리에게 이것저것 동작을 가르쳐주려 했더니 처음에는 마치 모자란 사람처럼 잘 따라오지 못하더랍니다.

 

결국 제가 프레디에게 뭐든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해보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잘하는 겁니다! 그의 춤 동작 대부분은 본능적이고 아주 자연스러운 거였어요.”

하지만 연습 과정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프레디는 운동 신경이 좋은 편이었지만 발레는 또 다른 세계였으니까요. 프레디는 무용수들이 몇 년 동안 하는 일들을 저한테는 1주일 안에 하게 하려고 했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는 런던 이브닝 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연습 이틀 만에 나는 큰 고통에 빠졌다고 헀습니다.

프레디 머큐리는 노래를 부를 뿐 아니라 춤 동작도 소화하면서, 무용수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발레에 녹아 듭니다. 그는 ‘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보헤미안 랩소디두 곡을 불렀는데요, ‘보헤미안 랩소디끝부분에서는 다른 무용수들에 의해 들어올려졌다가 곧바로 머리를 바닥으로 향한 이른바 거꾸리자세로 노래하기도 하지요. 당시 공연 영상은 나중에 그의 노래를 입힌 짧은 편집분만 남아있는데, 이것만 봐도 이 공연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록음악과 발레의 조합이라니, 당시로서는 대단한 파격이었습니다.  2,500명의 보수적인로열 발레단 관객들은 그러나 프레디 머큐리의 발레 공연에 매혹됐고, 자선 기금 마련이라는 이 공연의 목적은 아주 성공적으로 달성됐습니다. 프레디 머큐리 자신도 이 발레 공연에 아주 만족스러워했습니다.

 
같은 노래가 이렇게 다른 방식으로 전달되고,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다는 느낌을 실제 공연으로 살려내서 정말 좋았어요. 제가 약간의 로큰롤을 발레에 투입한 셈이죠. 할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어요.”

 

 저는 바리시니코프(미국으로 망명한 구 소련 출신의 발레 스타. 영화 백야의 주인공이기도 하다)는 아니었죠. 하지만 나이든 초보자 치고는 괜찮았어요. 믹 재거나 로드 스튜어트도 한 번 하는 거 보면 좋겠네요.”

저는 발레 댄서로서는 엉망이죠. 하지만 다리를 높이 차 올릴 수는 있어요

 

프레디 머큐리가 이 발레 공연에서 큰 영감을 얻었던 건 분명해 보입니다. 퀸이 1984년에 발표한 ‘I want to break free’ 뮤직 비디오에서 프레디는 다시 한번 춤춥니다. 이 영상에는 약 1분간의 발레 시퀀스가 포함되었는데, 이미 프레디 머큐리와 호흡을 맞춘 경험이 있는 로열 발레단 웨인 이글링이 안무를 도와줬습니다. 이 장면은 전설적인 무용가 니진스키의 목신의 오후’(1912년 초연)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합니다. 프레디 머큐리는 목신의 오후의 니진스키와 비슷한 모습으로 등장하죠.


목신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반은 야수, 반은 인간인 목신 판을 가리킵니다. 이 작품은 목신 판과 요정 님프의 밀고 당기는 심리를 표현하고 있는데요, 상징파 시인 말라르메의 시를 바탕으로 작곡된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음악에 니진스키가 직접 안무했습니다. 에로틱한 분위기도 있어서 외설이라는 비난을 포함해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고, 예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걸작으로 남았습니다.

 

 이쯤 되면 프레디 머큐리가 얼마나 발레를 사랑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데요, 그가 세상을 떠난 뒤인 1997, ‘발레의 혁명가로 불리는 안무가 모리스 베자르가 퀸의 음악을 바탕으로 발레 포 라이프(Ballet for Life)’라는 작품을 내놓아 그를 또다시 발레 무대로 소환합니다. 베자르는 이 작품을 고인이 된 프레디 머큐리와 무용수 조르주 동을 추모하는 작품으로 만들었습니다. 의상은 세계적인 디자이너 지아니 베르사체가 맡았습니다. 젊은 나이에 요절한 작곡가 모차르트의 레퀴엠 등 5곡도 함께 쓰였습니다. 역시 요절한 천재 예술가에 대한 추모의 뜻이었습니다.

 조르주 동은 베자르 발레단의 수석단원으로 30년 가까이 활동한 무용수이자 베자르의 동성 연인이었습니다. 조르주 동은 한국에서 공연한 적은 없지만, 한국에서도 인기를 끈 영화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에 출연했던 유명 무용수입니다. 베자르의 예술과 인생의 동반자였던 조르주 동은 프레디 머큐리와 비슷한 나이인 45살에 역시 에이즈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프레디 머큐리는 베자르처럼 스위스 몽트뢰에 별장이 있었고 말년에 대부분의 시간을 이 곳에서 보냈습니다. 베자르는 이렇게 프레디 머큐리와 인연을 발견하고 운명적 전율을 느끼며 이 발레를 안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2001년 세종문화회관에서 발레 포 라이프내한공연을 보고 프레디 머큐리와 퀸 음악의 진정한 팬이 됐습니다. 퀸이라는 밴드를 알기는 했어도 찾아 듣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 공연을 통해 퀸 음악의 매력이 얼마나 다채로운지 새삼 깨닫게 된 겁니다. 이 작품에는 프레디 머큐리 역의 무용수가 등장해 춤추고, 마지막 부분에는 조르주 동의 생전 공연 모습이 영상으로 나옵니다.
영상이 상영될 때 무대 양 옆에는 발레단원들이 늘어서서 조르주 동이 춤추는 모습을 숨 죽이고 지켜봅니다. 그리고 프레디 머큐리의 목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Show must go on!’ 울컥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프레디 머큐리와 퀸의 음악에 영감을 받은 발레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한국의 무용가 제임스 전이 안무한 록발레 Being(현존)’ 역시 퀸의 음악을 사용했습니다. 청바지에 록음악이 등장하는 발레라니, 초연이 1995년이었으니 정말 시대를 앞서가는 작품이었죠. 영국 국립발레단도 보헤미안 랩소디 2인무 작품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영국 국립발레단의 안무가 제임스 스트리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두가 프레디 머큐리가 영원히 살기를 바랐어요. 저는 그가 음악을 통해 항상, 영원히 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습니다. 프레디 머큐리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음악에 영감을 받은 작품들은 계속 공연되고 있습니다. 프레디 머큐리의 노래처럼, 공연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Show must go on!


*SBS 취재파일로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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