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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부산 비엔날레가 열리는 부산현대미술관에 다녀왔습니다. 부산 비엔날레는 부산시에서 2년에 한번씩 열리는 대규모 미술 전시행사입니다. 광주 비엔날레와 함께 국내의 대표적인 비엔날레로 자리잡았죠. 올해 부산 비엔날레의 전시 주제는 비록 떨어져 있어도(Divided We Stand)’입니다. 전세계 작가들의 작품에 전쟁과 식민지화, 혹은 적대적 관계로 인한 분리가 어떻게 투영되는지 살펴본다는 취지입니다.

 
그런데 저는 관람 시작부터 아주 바보스러운--혹은 웃기는--실수를 했습니다. 부산현대미술관은 비엔날레 관람권을 사고 들어가자마자 1층 오른편에 있는 제 1 전시실부터 관람이 시작되는데요, 1전시실 앞에 공항 체크인 구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바리케이드가 설치돼 있었습니다.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많을 때 줄을 서서 지그재그로 이동할 수 있도록 설치되는 종류의 바리케이드입니다.


 
이 바리케이드를 보고 처음 든 생각은 이 미술관이 평소에 굉장히 혼잡한가 보다였어요. 관람객이 많으니까 입구에 바리케이드까지 설치해서 줄을 통제하려고 한 거겠지요. 그런데 제가 간 날은 비가 내려 미술관이 한산했습니다. 사람들이 적어서 별 필요가 없는데 왜 바리케이드를 치우지 않고 계속 설치해 놨을까, 의아해 하면서 저 역시 지그재그로 이동해 입장했습니다.
 
 
1 전시실을 둘러보고 나오는데 또다시 이 바리케이드와 마주쳤습니다. 입구와 출구가 같아서 저는 또다시 이 바리케이드를 통과해야 했습니다. 안 그래도 관람하느라 전시실 안에서 많이 걸었는데, 이 바리케이드 때문에 몇 발자국이면 될 거리를 지그재그로 몇 배 더 오래 걸어 나가야 한다니, 갑자기 짜증이 밀려왔습니다. 이것도 다 관료주의잖아. 사람이 많지 않으면 치워도 되는데 왜 그냥 놔두는 거야!

 
제가 몸을 숙여 바리케이드 아래쪽으로 그냥 나가려고 하는 순간, 안내 직원이 다가와 주의를 줬습니다.
 “
손님, 나가시면 안돼요. 이 줄 따라서 가셔야 합니다.”
 “
아니, 사람이 많지도 않은데 이게 무슨 소용이에요? 그럴 필요 없잖아요.”
 
직원은 저의 항의에 빙긋이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
이것도 작품입니다. 관람객이 꼭 이 안에서 이동하라는 게 작가의 의도예요.”

 
? 작품이라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저보다 앞서 가던 딸이 제 모습을 보고는 깔깔 웃으면서 앞쪽의 안내판을 가리켰습니다.
 “
엄마, 이거 봐. 아까 들어올 때 못 봤어? 이것도 작품이라고.”
저는 들어올 때 미처 못 봤는데 이 안내판에는 <군중>이라는 작품 제목과 작가 이름 에바 그루빙어가 쓰여있었습니다. 딸은 계속 배꼽을 잡고 웃어댔습니다. , 제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작품도 몰라보고 항의를 한 셈이니까요.

에바 그루빙어는 오스트리아 출신 작가로, 행정상의 편의와 기술력이 만나 탄생한 권력 구조에 대한 고찰을 작품에 담아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달 14일 문재인 대통령이 부산 비엔날레를 방문했다는 소식과 함께 공개됐던 사진 중에 이 작품도 있었더군요.

문재인 대통령 일행이 이 바리케이드안에서 걷는 모습이 찍힌 사진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2018 부산비엔날레'에서 에바 그루빙어의 작품 <군중>을 감상하고 있다라는 설명이 붙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진을 보고,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는데, 작품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라고 고개를 갸우뚱한 분도 있었을 것 같아요. 얼핏 보면 그저 사람들이 줄 지어 이동하는 모습만 들어오니까요.  

<사진 출처 연합뉴스> 

 
부산비엔날레 홈페이지에 올라있는 <군중> 작품에 대한 설명을 볼까요.

공항 체크인 구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철 및 나일론 재질의 검은색 바리케이드가 주요 재료로 쓰였다. 본래 만들어진 의도에 충실하게 매우 길고 반복적인 패턴으로 구성했다. 군중을 통제하기 위한 메커니즘에 따라 관객은 지루하게 구불거리는 통로를 지나가게 되고, 이로써 미술의 미학적 경험은 공간을 분할시켜 마치 물류를 관리하듯 수많은 인체의 흐름을 경제적, 정치적 용의에 맞게 구조화하는 과정으로 재편성된다.”

 
비록 작품인 줄 몰라보기는 했지만, 제가 이 바리케이드를 대하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돌이켜 보니, 결국 작가의 의도에 맞는 감상을 한 것 같습니다. 저는 이 바리케이드 앞에서, 도를 지나친 통제에 저의 자율성을 침해 당하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안 좋았거든요. 제가 바리케이드를 벗어나려 했던 건 공간을 분할시켜 마치 물류를 관리하듯 인체의 흐름을 경제적, 정치적 용의에 맞게 구조화하려는 것에 대한 저 나름의 저항이었고요. 처음부터 이게 작품이란 걸 알았다면, 제 감상이 이렇게 강렬하지는 못했을 것 같아요.

 
흔히 예술작품에는 아름답다는 형용사가 따라붙지만, 사실 보기에 아름답지 않은 현대미술 작품들도 많습니다. 저는 예술가란 세상을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따라서 예술 감상이란, 아름다운 것들을 보거나 듣고 즐거움을 느끼는 체험에만 한정되지 않고,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것들을 낯설게 보기’, ‘다시 보기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사람 많은 곳에 종종 설치돼 익숙했던 바리케이드가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지요. 그냥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안에서 이동하며 몸으로 느끼는 체험이 되었네요. 현대미술 감상은 이렇게 낯설지만 흥미롭습니다.

부산비엔날레는 을숙도에 새로 개관한 부산현대미술관 외에 옛 한국은행 부산본부에서 함께 열립니다. 옛 한국은행 부산본부는 한국전쟁 기간 동안 수도 역할을 했던 부산의 역사를 담고 있는 곳으로 부산광역시 문화재 70호이기도 합니다. 이 곳의 전시도 놓치지 말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부산 비엔날레는 11 11일까지 계속되니 부산에 사시는 분들, 혹은 부산을 방문하시는 분들은 한 번 들러보셔도 좋겠네요. 저는 옛 한국은행 부산본부에서 열리는 전시는 못 보고 와서, 기회가 되면 꼭 다시 가볼 생각입니다. 그 때는 작품 안내판을 놓치지 않고 잘 봐야겠어요.

*SBS 뉴스 웹사이트 취재파일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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